나는 내 안에 있던 변호인의 외침과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은 '여기서 여기까지, 혹은 그의 과오만큼'이라며 선을 긋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얼마큼이나 미워할 수 있는 건지, 실컷 미워한들 그가 사라지기는 하는지, 그가 사라진 뒤에는 미움도 사그라들 것인지, 그에게 붙어있던 나 자신마저도 나의 일부마저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문득 겁이 났다.
그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너까지 미워하지 말라던 변호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그를 향한 마음의 발길질을 멈추기로 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그렇게 멈춰 서고 그를 향해 돌아선 순간 어린아이가 보였다. 내 발길질을 피해 늘 뒤에 자리하며 따라다니던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 그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조그마한 아이를.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과연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를 싫어하는 유난한 마음을 쓰면서 중심을 들여다보기 원했다. 쓰는 동안 그 마음이 옅어지길 바랐다. 극단적으로는 혹시나 이 연재가 끝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른 마쳐야 할 숙제처럼 연재일을 무리하게 설정해두기도 했다. 기존 브런치북의 연재일까지 포함하면 거의 매일 쓴 셈이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대부분 그를 쓰고 나를 읽었다.
마침내 그에게서 나를 꺼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쓸 것이 없다.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쓸 만한 마음이 바닥났다. 미워하는 마음도 이젠 그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비록 나의 어마무시한 초자아가 그로부터 시작되었을지라도, 이것은 내 안에서 내가 키운 괴물일 뿐이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그 거대한 초자아에서 나를 건지는 일이다.
혹시 그는 나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자신을 닮은 나를 보며 더 답답한 마음을 느꼈던 걸까. 그렇다 해도 이건 그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이것은 주의력이 결핍된 아들을 보며 내가 몰래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나와 닮은 아들은 자신을 사랑해야만 자신이 닮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닮은 아들을 용납해야 하고, 그전에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나의 부족한 모습들까지도. 대처하고 고쳐가는 것마저 감추듯 서두르지 않고 감싸듯 사랑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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