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들을 보면 대부분 글쓰기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 루틴, 기준 같은 것들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을 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온라인에서나마 작가로 불리는, 일명 브런치 작가인 나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나만의 글을 쓰는 동안 플랫폼의 특성에 적응해 가고, 이것들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하나씩 세워가는 중이다. 협찬을 받기 위해 블로그나 인스타의 계정을 키워갈 때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글만 쓰리라고 다짐했지만 브런치에서도 아주 활발하게 놀고 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이곳에서도 와이낫?을 외치고 있다. 글쓰기라는 메인 활동을 중심으로 소통이라 불리는 행위들이 있는데,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감당할만한 선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 있다. 나는 이것을 사랑을 심는 행위 혹은 사랑에 보답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러나 라이킷 빌런, 답방, 품앗이, 친목질 등등.. 소통을 시도하는 행위들을 비하하는 이런 단어들의 배경에는 진정성이 없는 태도에 대한 서운함이 서려 있다. 바꿔 말해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것이 없는 라이킷, 답장 방문 혹은 댓글은 사양하겠다는 뜻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진심이라 그렇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류를 시도하더라도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이들의 서늘한 시선에 경직될 필요는 없다. 그 글을 접한 순간만큼, 그 글을 읽는 순간만큼, 댓글을 남기는 순간만이라도 진심이었다면. 나는 진심을 전했다고 생각한다. 받는 사람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만큼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만큼은 진정성 있는 행위였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달리 갖고 있을 기준에 맞추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인사를 한 번도 나누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몇 번씩이나 마주친 사람에게도 내가 그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간은 공식적인 인사는 건네지 않는다. 분명한 존재감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섣불리 어떤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이 없어서라기보단 관계에 대한 책임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서 오는 피곤함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 온라인 활동의 품앗이에 회의적인 사람은 그만큼 허투루 전하고 싶지 않은 진심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이 공간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일? 댓글을 남겨주는 일? 내 글에 달린 그것들의 각각의 무게를 반드시 재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글이 그들에게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그 글을 끝까지 제대로 읽어준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기적인 셈이다.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가 넘치는 온라인 세상 속에서,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나의 글을, 어떤 정보도 취급하지 않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그것도 차라리 외면하기 쉬운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어쩌면 나의 부모마저도 외면한 이야기를 생면부지인 누군가가 공감해 준다면 그는 인류애가 충만한 심성을 가졌거나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리라.
십 년 지기 죽마고우마저도 인생의 어느 때를 지나고 있느냐에 따라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인생의 가치와 깊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관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에 피로가 만연한 세상이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관계에 대한 우리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볍기 원한다. 이것은 관계의 가벼움을 의미한다기보단 기대의 무게에 가깝다.
이 공간에 자기 이야기를 써내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는 일이라는 의미로 라이킷, 연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성실함에 라이킷, 양질의 정보를 가공하느라 고생했겠다고 라이킷, 소설이나 시를 짓는 작품활동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라이킷. 글 쓰는 행위로써 자신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려는 그 의지에 라이킷. 그러다 정말 공감하는 내용이나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행운일 터. 그가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이야기에 내 마음의 끝자락이라도 닿았다면 이는 실로 엄청난 일이다. 품앗이를 하려고 클릭한 글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가서 흔적을 남긴다. 이것은 인생으로 엮어진 운명공동체로서 느끼는 교감의 반응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겐 진정성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진정성이란 반드시 무거운 마음만은 아니다. 거짓이라고 해서 다 가벼운 것은 아니고, 묵직한 거짓일수록 죄는 더 무거워지듯 종잇장처럼 가벼워도 진실일 수 있다.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일 수 있다. 그저 들여다보려는 마음으로 가볍게 클릭. 나와는 다른 삶도 한 줄 읽어본다. 다음에는 두 줄도 읽어본다. 그다음엔 어라, 이런 글도 쓰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각도 있구나. 이런 마음을 느꼈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와 너무 닮은, 혹은 닮지 않은 글 속에서도 나를 만난다. 새로운 삶과 시각과 마음을 소중히 주워 담고 있는 나를. 그러다 묵직한 마음을 놓고 가기도 한다.
정말로 까놓고 말해서, 내가 라이킷을 눌렀으니 당신도 눌러주라는, 기브 앤 테이크의 개념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해도, 와이낫? 그게 뭐가 나쁜가? 내가 공들여 쓴 어떤 글이 혹시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글을 발행했는데 한 번 읽어보실래요?라는 꽤 신사적인 메시지로 읽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블로그에서는 홍보업체들이 노골적으로 그런 멘트를 남기기도 하는데, 브런치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댓글을 본 적은 없다. 속마음이 그렇다 해도 그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유저로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무관심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어쩌면 고마운 일일지 모른다. 때론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무거우면 들고 가기도 전에 주저하게 된다. 품앗이를 위해 방문한 밭에서, 내가 먹지 않던 작물을 만져보고 먹어본다.
아무에게도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글쓰기였다. 막연하게 바랐던 나의 변화마저도 지켜봐 주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글 쓰는 맛, 글 쓰는 힘이 났다. 내용에 대해, 나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그저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응원이면 충분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수단 중 우리는 글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글로써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그 동기는 각자 다를지라도 우리의 선택은 현명했다. 돌잡이에서 펜이라는 물건을 잡은 아이처럼, 브런치를 집어든 우리는 서로에게 박수를 쳐줄 수도 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너 그것으로 성공하길 바라, 그저 해맑은 아이에게 보내는 무해한 바람으로.
출판업계가 불황인 이유는 쓰는 사람은 많아지고 읽는 사람은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쓰기의 힘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읽는 사람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생기는 문제다. 우스갯소리로 출판계에서 가장 고마워하는 독자는 책을 잘 읽진 않지만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 또한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라도 출판계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댓글을 남겨주시는 작가님들께서 '브런치 마을'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브런치 마을에서 마음의 씨앗을 뿌리며 글을 짓는 동안 오며 가며 라이킷으로, 댓글로 나눈 인사들이 쌓인다. 나름 전해본 진심에 제때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품앗이에 응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탓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밭을 기경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마저 기껏 마음 열고 상처받고 외면하기보다는 그저 누구라도 들랑날랑하도록 열어두는 틈이 있길 바란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글을 짓다가 또다시 그 길을 지나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유가 있길. 각자가 지나고 있는 인생의 시기가 다르기에, 내가 슬픔을 적을 때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나의 문장 위에서 한숨 쉬었다 가길. 내가 기쁨을 적을 때는 춤추는 사람이 글자 위로 가볍게 미끄러져 가길. 한기가 들지 않고 환기가 될 만큼만 마음의 창을 열어둔다면, 비록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
점점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고 고립과 은둔이 확산되는 사회 속에서 온라인 훈풍이라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익명을 앞세워 비방하기 바쁜 온라인 뒷골목을 지나, 메인 스트릿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우리에겐 글로 스치는 사이마저도 소중하다. 글자와 문장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기에.
지나가다 한 번씩 던져준 한마디의 말, 작은 시선에도 식물은 잘도 자라듯 우리의 마음밭에 심긴 씨앗들이 자라난다. 꼭꼭 담아두었던 마음들이 글자들로 풀어진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글 짓는 행위를 응원하고, 공감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 정겨운 풍경인 것은 분명하다. 브런치 마을에는 이렇게 서로의 글 짓는 냄새를 맡으며 숨을 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내가 미처 당신의 글을 읽지 못해도, 나의 글을 당신이 소화하지 못해도, 글 짓는 냄새는 언제나 구수하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