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면 끝이 난다. 내 인생 최대의 난제였던 연재가. 살다 보면충동적인 선택도 하고,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추진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그중에서도 불현듯 찾아온 과제였다. 마음속 엉킨 실타래를 꽤 오랫동안 풀어볼 시도를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는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75세 김수미 님의 부고를 듣고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어디까지 쓸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브런치북을 발행했다. 게다가 연재일도 월/수/금/일, 무려 4일로 설정했다. 이미 화/목 연재를 하고 있는 브런치북이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를 빼고는 계속 글을 발행한 셈이다. 무작정 시작한 브런치북이었지만 첫 글을 발행하는 순간부터 나는 작정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쏟아내리라, 그리고 반드시 알아내리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것을. 그것의 실체를.
76세아버지가 75세 김수미 님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내가 미워하던 실체는 내 안에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내내 나의 미움을 받고 살던 아버지도, 그 실체를 찾지 못하고 껍데기만 노려보던 나 자신도. 수사드라마 같은 데서, 용의자가 가장 큰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맞지만 알고 보니 그가 진짜 범인은 아니었더라 하는 식의 결말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맞을지언정 매 순간 나를 죽이고 있는 건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쓰는 동안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기억나는 에피소드와 고여있는 감정들을 위주로 썼다. 쓰다 보면 너무 길어져서 단편적인 구성을 하고 마무리를 짓곤 했다. 이건 다음에 정리해서 써야겠다, 이런 식으로. 한편, 한편 마무리 지을 때마다 나를 알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나를 알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글에 달리는 댓글들에도 깊은 위로를 받았다.이 글을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건네준 위로, 나눠준 슬픔. 펼쳐 보인 순간 우리의 고통은 아주 조금이라도 휘발되었음을 믿는다.
그리고 감히 고백하건대 나는 연재를 통해 펼쳐 보인 만큼 자유로워졌다. 연재를 하는 동안 발견한 존재가 있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라는 단어가 생각날 만큼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아니 특별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가 보내온 사진 속 어린아이. 바로 나였다. 사람들이 내면아이라고도 하는 존재. 별로 관심두지 않았던 심리학적 개념이다. 그런데 그 존재를 이번 연재를 하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그 존재를 맞이하게 된 순간은, 이야기의 주체가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주인공이 바뀌었으니 마무리지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그 존재를 발견한 순간부터일까. 신기하게도 이젠 그에 대해 쓸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 쓸 마음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미움이라는 마음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그러하다. 이렇게이번 브런치북의 연재 마감일이 정해졌다. 이 글의 발행시점을 기준으로 바로 다음날이다. 처음부터 오래 끌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기약하지 않았던 연재기간은 딱 한 달이 되었다.11월의 첫 금요일에 시작해서 마지막 금요일에 마치게 된 것이다. 결코 의도한 게 아닌데도 이 글을 쓰며 어림하고 세어보니 그렇다.
여러 가지로 이번 브런치북 연재를 통해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 쓰는 동안 아프고 힘들었지만 또한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연락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와 내내 동행하며 한 문장, 한 문단, 쓰고 싶은 마음이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대신 브런치 앱을 켜고 아버지를 썼다. 그를 쓰는 동안 또한 나를 썼다. 밤마다 남편 품에 얼굴을 묻는 대신 핸드폰불빛을 켜두고 글자를 마주했다. 인생 과제라 말하는 내게 남편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제 내일로써 연재를 마치면 남편의 품에서 한동안 쉬고 싶다.글을 쓰는 것과 마음을 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고 묻는다면, 마음을 글로 쓰는 것. 바로 이것이라 답하고 싶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브런치북 연재의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리하게 설정한 연재일을 어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라이킷과 댓글로 힘을 더해준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마음 써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