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늘어났다가 줄어들면 마치 손절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글로 맺어진 관계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이라고 해놓고선 쓸데없이 진지하게 성찰하는 부분이다.
숫자에 불과하다고 보는 관점을 구독자 수에 적용하기엔 너무 가볍다. 구독자 수가 조회수와 다른 점은 의지가 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글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의지. 그러니까 기대가 들어있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글로 인해,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의 기대를 받는다는 건 글 쓰는 사람으로선 더없는 영광이 아닐까.
그러나 영광스러운 기분만큼이나 상실감도 큰 법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구독자가 내 글에 기대하고 실망한 간극보다는 좀 더 크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구독을 아주 천천히 하고 웬만해선 취소하지 않는다. 1로 더해지는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순간보다 상실감이 더 크게 남지 않길 바라며. 책을 낸 작가의 삶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독자의 존재와 의미는 그만큼 크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다만 눈으로 보일 리 없는 독자의 수를 떡하니 보게 된다는 게 온라인 작가의 숙명이겠지 싶다. 브런치 작가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구독자의 형태로 드러나는 독자 수가 줄어들면 순간적으로 의문이 든다.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로 따지자면 내게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그리고 무엇에 실망했는지도 모른 채 사람을 떠나보내는 입장이다. 온라인 구독자는 숫자로 나타나는 뚜렷한 존재감에 비해,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묻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떠나가는 구독자의 특성상 확인도 어려워서, 떠나간 사랑의 미니홈피를 들여다보듯 구질구질한 애도의 시간도 가질 수 없다.
특히 브런치에서는 '아니 이런 것까지' 내보이는 내면의 글을 위주로 쓰다 보니 읽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을까 싶은 생각에 내 마음까지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무엇을 봐서 손절한다기보단 무엇이 보이지 않아서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글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것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쓴 글에서 반짝이는 것을 잠시 보았고, 그것으로 인해 무엇을 기대했을지라도 그 실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정을 함께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는 내가 쓴 글을 많이 읽는다. 퇴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받기 위해서. 매 순간 진심을 담아 진솔하게 쓴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다. 그 시절 내 생각이 미처 자라지 않아서 그것밖에 쓰지 못했더라도, 그때의 내가 최선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나의 세계였으니.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나를 이해하는 동시에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 쓰면서 나를 이해하고, 읽으면서 또 이해한다. 나는 이 과정이 참 좋다. 내가 내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느낌.
어쩌면 이 과정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히 나 한 명뿐이지 않을까. 구독자는 내 글을 읽으며 자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끝까지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비록 구독자가 구구독자가 되어 떠나갔다 해도, 한 순간이라도 그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 시절이라도 내게 머물길 선택하여 거기서 거기까지, 거기서 여기까지라도 동행해 준 구독자에게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정말 글로 만났다면 언젠간 다시 글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 만난 사이는 먹만큼이나 진할 테니까. 비록 먹이 아닌 핸드폰으로 토독토독 쓰는 글이고, 잉크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발행하는 글이지만. 우리는 브런치에서 만난 사이니까.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