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늘이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이래. 감기 조심하고. 우리 어릴 때 살던 집마다 정말 추웠지. 그런데 지금은 언니나 나나 따뜻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참 감사하다. 우리 아이들 집에서 마음껏 놀 수 있고, 이불 밖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롭잖아. 가장 추운 하루지만 이거 하나만으로도 참 감사한 하루다."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 언니가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 감사의 고백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면 배가 되는 것 같다.
볼일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섰는데 빨간색 입간판이 보인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극동방송 건물에서 크리스마스카드 나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이벤트 종료 하루 전날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발견하게 되었으니 어찌나 감사한지!
버스가 오기까지는 8분이 남아서 슬쩍 들어가 보았다. 몇 장 가져가도 되는지 여쭤봤더니 흔쾌히 가져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버스를 기다리다 들어왔냐고도 물어봐주셨다.
카드를 세 장 고르고 봉투도 세 개 꺼내는 동안 직원분은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 서성거리며 밖을 바라보셨다. 극동방송 직원분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실 속으로 이미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지만 살펴주는 마음이 고마워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치된 포스트잇에 짧은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벽에 붙여두었다. 세 장을 가져온 건, 남편과 아이들에게 쓰기 위해서였다. 어떤 메시지를 쓸까 하다가,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청유 작가님의 글이 떠올라 연말 시상식 카드로 꾸며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도 나의 언어와 나의 감성으로 구구절절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아이에게 맞는 언어로, 아이의 특정 행동을 정확히 짚어내 칭찬해 주시는 작가님의 메시지를 읽고 나서는 머리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어서 무릎을 탁 쳤다. 어쩜 이렇게 기발할까 싶으면서도 받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배려한 문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아재개그와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청유 작가님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편지는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