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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06. 2024

잠자는 잠재력을 깨우는 방법


인간은 누구나 성장을 원한다. 변화를 갈망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혹은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원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00으로 월 천만 원 번 사람, 1억 번 사람, 10억 번 사람, 100억 자산가, 1000억 자산가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열광한다. 나도 삶의 동기부여를 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자라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였는데, 내겐 돈보다도 자신감이 더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삶이 가난하기 전에 정신이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했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그 근거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내가 해봤더니'라고 말할 수 있는, 도전에서 비롯된 실패의 경험마저도 나는 없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왜 저들처럼 내게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을까? 나도 내 인생에서는 주인공인데, 왜 저들만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조명이 꺼진 무대 밑에서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어야 할까?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는 그들과 달리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저 세바시 강연 무대 위에 나를 올려준다고 해도, 하나의 핀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다고 해도 나는 청중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아니, 나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독백 대사조차도 나오질 않았다.


수고했어.라는 말을 건넨다 해도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버티느라 수고했어, 육아하느라 수고했어라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분명 내 삶을 힘겹게 감당하고는 있는데, 그것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짊어지는 수고로움이었다. 동기, 열정, 어떤 가능성이라도 좋으니 내 안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펌프질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느라고, 많이 두렵고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었다.


도전이 없었다면 성공과 실패 둘 다 없어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실패감은 늘 가득했다.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않는 동안 나는 이미 실패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저 포도는 신 맛이 나는 포도일 거야.' 여우와 같이 합리화를 한다. 그러나  꾀가 많은 여우도 몇 번은 뛰어보았다.    


결승선에만 끈이 있는 게 아니다. 출발선에도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 어쩌면 내 앞의 출발선을 끊어내는 일은 결승선의 끈을 먼저 끊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각자의 출발선을 쉽게 끊고 힘차게 달려 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출발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너무 두렵다. 나는 끝까지 달릴만한 꿈과 열정도 없고, 애써 시작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해도 된다. 중간에 포기할까 봐 두려워서 출발선을 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한 구간이라도 뛰어본 것, 땀을 흘려본 것, 숨이 차는 느낌을 아는 것, 넘어져본 것, 발에 물집이 잡혀본 것...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맛보기 경험은 ‘내가 해봤더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근거가 있다면 당신은 마이크를 잡을 자격이 있다. ‘실패할 수 있다’는 말은 ‘성공할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다. 그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앞엔 하나의 트랙만 있지 않다. 내가 출발선을 끊고 달리기 시작한 이 길은 생각보다 짧은 구간일 수도 있다. 이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또 다른 출발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지난한 마라톤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들로 가득한 흥미로운 릴레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뻗쳤고, 그 두려움이 나를 출발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너무 오랫동안 출발선 앞에 세워뒀다. 어떻게 해야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도 잊어버린 채 오랫동안 주저앉아있었다.   

  

블로그에 ‘전체공개’로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던 날, 나는 내 앞의 출발선을 끊어냈다. 애드포스트 승인이라는 작은 심사에 신청하던 날, 나는 또 다른 출발선을 끊어냈다. 처음으로 대가성 포스팅을 발행하던 날, 나는 그 대가에 상응하는 가치를 글로써 입증하기 위해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렇게 열심히 작성했는데도 상위노출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또다시 체험단에 신청했다. 단 한 개가 선정되더라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여러 번 신청했다. 다녀와서 후기를 쓰는 시간은 역시 길고 길었지만,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마감기한 내 글을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계속 도전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출발선을 하나씩 넘고 있었다.     


이후 포스팅을 할 때마다 그것이 반복되었다. 처음보다 노하우가 생겼고, 스킬이 늘었고, 포스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나는 이제 줄넘기를 하는 심정으로 포스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블로그는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이기에 줄넘기를 멈추진 않을 것이다.   

  

매일 새로운 출발선을 끊는 자세로 나아가고, 줄넘기를 하는 심정으로 단련한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출발해 볼 것이고, 걸려서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팔을 휘두르고 발을 점프할 것이다. 그로 인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나와 만날 것이다. 여전히 삶의 짐은 무겁지만, 펌핑(pumping)과 디깅(digging)에 쏟을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가능성, 잠재력에 대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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