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다리
“콩나물이 왜 이래!” 친구들 단톡방에 구원 글이 올라왔다. “그저께 고향 친구가 소백산 자락에서 농사지은 콩을 보내왔다. 그것으로 콩나물 재배를 시작했는데, 오늘 보니 콩나물 대가리 색깔이 푸른빛이 나네. 빛을 차단하기 위해 뚜껑 위에 흰 수건을 덮어두고 있는데도…. 좋은 처방이 있으면 의견 주길 바라네.”라며 콩나물 기르기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직접 커다란 김치통에 구멍을 내어 만든 ‘시루’에 싹 틔운 콩을 넣어 기르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도움 요청에 나는 재빨리 응답했다. “걱정되겠네! 고향 어머니가 방안에서 기를 때, 내가 손 청결 유지하면서 물을 준 경험이 있다. ‘완전한 어둠 유지’가 필수일 것 같다. 아마 덮어둔 천이 빛을 차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은 천이나 두꺼운 덮개를 사용하여 완전히 어둡게 만들어줘 봐요. 곧 콩나물이 밥상에 오르도록 좋은 결실을 기대할게요.”
서울 사는 한 친구도 Y자형 모양 소품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이거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께서 쓰시던 유품인데, 내 연구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퇴직하면서 집으로 가지고 왔지. 어른들 생각나면 가끔 꺼내 보는데 오늘 자네들이 콩나물 이야기를 나누니 추억이 더 새롭다.”라고 했다. 뒤이어 콩나물 기르는 주인은 '쳇다리' 용어와 그 도구에 얽힌 얘기를 차근차근 풀어 써줬다. “쳇다리는 체로 밭거나 거를 때 그릇 따위에 걸쳐 그 위에 체를 올려놓는 데 쓰는 기구야. 우리 집 마당의 자두나무 가지를 잘라 만든 것과 비슷하네. 내가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이 사용하던 쳇다리는 지금 어느 골동품 가게로 흘러갔는지?”라며 임하댐 수몰민들의 애환을 같이 떠올렸다.
코흘리개 시절, 어머니의 하루는 해가 뜨기도 전에 시작되곤 했다. 방 한쪽, 살짝 열린 시루 검정 천 사이로 콩나물 머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은 마치 어머니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 같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표주박’이 들려 있었고, 그것은 부지런한 하루의 징표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 곁에 앉아 콩나물이 자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콩나물은 물이 생명이야. 문지방 들며 날며 자주자주 물을 줘야 튼튼히 자란단다.” 어린 마음에 콩나물이 자라는 이유는 물 때문이라기보다 어머니의 손길 때문이라고 믿었다. 쳇다리는 나무로 만든 도구였지만 그것이 어머니 손에 들어가면 놀랍도록 생명력을 띠었다. 나무 그 자체가 삶과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쳇다리 위의 콩나물시루를 위로 빼꼼히 들고, 수조의 물을 표주박으로 떠 정성껏 시루에 졸졸 붓곤 하셨다. 시루 구멍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집 안을 잔잔히 적셨다. 그것은 생명이 자라는 소리였고, 어머니의 사랑이 흐르는 자애의 소리였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손길이 배어 있는 시루와 쳇다리는 어머님과 함께 작별했다. 잊힌 줄 알았던 쳇다리 이야기는 나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게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어머니가 물을 붓던 모습을 떠올렸다. 잔잔한 미소와 분주한 손놀림,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졌던 따스함이 나를 감쌌다.
지금은 아내가 콩나물을 키운다. 영 마뜩잖아도 나무 쳇다리 대신 현대적인 도구들이 들어와 있지만, 콩나물에 물을 줄 때면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떠올라 마음속으로 말을 건넨다. “어머니, 며느리도 잘하고 있지요?”
이슬 맺힌 눈을 닦으면서 남쪽 하늘을 올려다보니, 20여 년 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일이 문득 생각났다. 놀랠 틈조차 없이 그곳으로 이민 간 친구 집에 항공권만 끊어 찾아갔다. 친구 부부가 초창기에 힘들게 일했던 녹용 공장과 라벤더 농장을 견학시킨 후, 우리 일행을 시내 맛집에 데리고 갔다. 먹기 편하도록 미리 잘게 자른 ‘로스트 치킨’에 따뜻하게 먹을 ‘그레이비소스’가 가득 있었다.
식사 후 친구가 여흥으로 ‘위시본(Wishbone) 게임’을 소개했다. “고대 로마 시대 사람들은 새의 뼈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위시본은 닭의 가슴뼈 중에서 쇄골(clavicle)에 해당하는 작은 Y자 모양의 뼈를 말한다. 두 사람이 그 뼈의 양쪽 끝을 잡고 동시에 당긴다. 뼈가 부러질 때 더 큰 조각을 가진 사람이 소원을 빌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고 한다. 이 전통은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추수감사절 같은 특별한 식사 자리에서 자주 행해진다.” 닭 뼈를 아내와 서로 잡아당겼는데 내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무엇을 빌지 망설이다가 친구 부부 ‘마티니와 리즈’의 건강과 행복을 원했건만, 친구는 삼 년 전 하얀 목련이 질 때쯤 나이테 만들기를 멈추고 그곳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쳇다리가 전해 준 울림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자식들이 콩나물처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영원한 쳇다리가 되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