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깃 돌

by 가원

공 깃 돌


창가를 넘어 들어온 따스한 햇살이 거실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던 오후였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돋보기를 낀 채 손주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리 와 앉아봐라.” 거칠어져 나무껍질 같은 손가락이 공깃돌을 가리키며 조용히 옛 기억을 꺼내놓는다.

“너희들 요즘 공기놀이하니? 우리 어릴 땐 이거 하나로도 하루가 훌쩍 갔단다.”

손주들은 눈을 반짝이며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 돌멩이를 쥐고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모든 판을 진행할 때, 공중에 띄운 돌을 놓치거나 잡으려는 돌 이외의 돌을 건드리는 등 실수를 하게 되면 실격이다. 공기를 던져 손등으로 받았다가 재빠르게 채어 잡는 ‘꺾기’는 공기놀이의 꽃이다. 여기엔 ‘아리랑 쓰리랑’이라는 기술이 빠지지 않는다. 손끝으로 돌을 채어 올리는 동작이 마치 아리랑 고개를 넘는 듯 흥겨웠다.

“돌이 튕겼을 때 먼저 ‘콩콩’하고 외치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요게 아주 묘미지.” 할아버지가 웃으며 설명하자, 손주들은 서로 먼저 외치려 바닥을 두 번 두드린다. 과연 누가 먼저일까?

뿐만 아니라 아파트 생활에 맞춰 조심조심 내려놓는 ‘도장 찍기’ 규칙도 있다. “쿵 놓으면 안 되고, 살짝 내려놔야지 살아.” 할아버지의 시범에 손주들은 조심스럽게 따라 하며 놀이에 점점 빠져들었다.

치열한 승부 끝에 손주가 목표 점수를 먼저 달성하자, 할아버지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아이고, 이젠 너희들이 더 잘하는구나! 완전히 졌다.” 거실 가득 웃음소리가 퍼진다. 단순한 놀이였지만 그 속엔 긴장감과 몰입, 그리고 세대 간의 온기가 녹아 있었다. 손주들은 초콜릿과 주사위를 손에 쥐고 새로운 공기놀이를 창조해냈다. 그 작은 손끝에서 펼쳐진 놀이는 시간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고, 재치와 창의력이 반짝였다. 시대가 흘러도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와 웃음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어느 날, 장난감 가게 앞. “공깃돌 사줄까?” 할아버지의 말에 손주들의 얼굴엔 시큰둥한 표정이 역력하다. “플라스틱은 잘 튕기지도 않고 재미없어요!”

툭 내뱉고 돌아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제야 두 어른은 깨달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단지 공깃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짜 추억이 깃든 돌이었다.


그날부터였다. 냇가든 바닷가든 돌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눈길이 갔다.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 밀물이 차오르기 전 해안 탐방로 끝자락에서 불그스레한 점이 박힌 조약돌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그 돌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등 위에서 튀어 오르던 공깃돌 같았다. 그 돌이 손주들 손에 쥐어질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손주가 넷이니까 서른 개쯤 모으면 싸울 일은 없겠지.” 라는 마음 하나로 바닷가를 헤매며 돌을 주웠다. 돌을 줍는 일은 묘한 일이다. 손에 든 돌이 가장 예뻐 보이다가도, 저만치서 더 마음에 드는 돌이 반짝이면 주저 없이 바꾸게 된다.

그러는 사이 발목이 젖고, 할머니의 치맛자락도 어느새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밀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지만, 주머니 속의 돌들은 반짝반짝 빛났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냐.”라며 투덜거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손길. 남들은 모를 그 작은 고집. 그것이 바로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며칠 전에는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찾았다. 잔잔한 파도에 부딪히는 몽돌들이 ‘자르르’ 내는 소리는 마치 거문고를 뜯는 소리처럼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일행들은 물수제비를 뜨며 추억에 젖었고, 나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돌을 골랐다.

“얘들아, 이게 할아버지 어릴 적 놀잇감이란다.” 문득 작은 돌 하나가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 희망 하나로 허리를 굽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돌아 나오는 길, ‘몽돌 반출 금지’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이 돌은 바다의 것이었다. 오랜 시간, 바다가 품고 다듬은 귀한 보물이었다. 내 추억 하나에 기대어 가져가려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바다는 말없이 출렁였지만, 그 침묵은 마치 나를 꾸짖는 듯했다. 조심스레 주머니를 뒤집었다. 매끈한 돌들이 바다 품으로 조르르 돌아갔다. 돌려보내는 그 짧은 순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래, 돌은 이곳에 있어야지.” 혼잣말로 스스로를 달래봤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작은 것 몇 개쯤은 괜찮지 않을까. 아무도 보지 않았는데.’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마음은 흔들렸다. 정말 손주들에게 그 돌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 내 추억을 억지로 전하고 싶었던 아집은 아니었을까.

돌과 함께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도 내려놓았다. 바다 위엔 여전히 윤슬이 춤췄고, 바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안도감 속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

“얘들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너희 손에 꼭 맞는 공깃돌을 만들어 줄게.”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경쾌하게 튀어 오르며, 백두산처럼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딱!’ 하고 내려앉는 그 순간. 너희의 눈빛이 반짝이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공기 놀이하는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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