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맞을 밤을 피하고자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벌써 한 달이 지났나 싶어 조금 놀라다가 지난달 정기진료날에는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본다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그냥 홀로 강원도 속초로 갔었다 속초에 한 게스트하우스의 포트락 파티를 예약했다 쏘카에서 폴스타2를 예약하고 근처 와인 판매점에 들러 샴페인 두 병을 그리고 좋아하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무화과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샀다 네 번째 방문이기 때문에 큰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속초 포트락파티는 뭔가 다른 설렘이 있다 거기에 마지막 방문 이후 일 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더 커지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 약 네 시간의 장시간 운전을 해서 도착한 속초 이미 어둠이 자욱했지만 청초호 주변의 건물들과 가로등 여러 불빛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고 포트락 파티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금토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2차에만 참석하는 건 처음이라 얼마만큼의 사람이 있을지는 상상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신분증 검사를 한 뒤 파티가 한창인 곳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열기와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다 자리가 빈 듯한 공간이 보여 얼른 의자를 끌어 앉고는 샴페인과 케이크를 풀었다 샴페인과 케이크 가격을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말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그리고는 다 같이 소원 빌어요라며 우리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다들 이미 취기 얼큰한 상태였고 모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촛불을 끄고는 다른 테이블에도 케이크 조각을 나누고 드디어 나는 첫 잔을 목 뒤로 넘길 수 있었다 1차에서 2차로 넘어가며 자리를 바꾸어서 다들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돌아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제외하고 말이다 모두가 한 바퀴 돌아가며 소개하고는 근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명이 나이 맞추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하여 돌아가며 나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의 경험을 기준으로 일부러 모두의 나이를 내가 느낀 것보다 3,4살은 아래로 이야기하였다 특히 여자분들은 8살 정도 낮게 이야기하였다 우리 테이블의 9명 중 여자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이었고 여자 두 분은 함께 온 분이라고 하였다 두 분 중 더 어려 보이는 분이 먼저 나이를 공개하고 25살이라고 하였다 그 옆에 분을 나는 26살이라고 하였고 다들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이라고 추측하였다 사실 나는 나와 동갑 혹은 언니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예상해 보았다 그녀는 86년생이라고 하여 모두 놀랐을뿐더러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와중에 그 옆에 남자분 또한 86년 생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외에 우리 테이블은 모두 95년생에서 02년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지막 내 차례 물론 나는 내 나이를 오픈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90년 생이라 할까 95년생이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00년부터 94년까지 다양하게 말해주었다 누군가는 샴페인과 케이크 가격을 기억하며 우스갯소리로 그 정도 재력이라면 무조건 30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 말에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반전을 주고 싶었다 나는 반은 정답이면서 반은 틀렸습니다 라며 저는 95년 돼지띠인데요라고 파워당당하게 말했다 다들 너무 동안이라며 기분 좋게 대답해 주었다 샴페인의 힘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86년 남자분이 고개를 갸우둥거리며 아닌 것 같은데라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약간 화끈거렸지만 뭐 분위기 자체가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넘겼다 샴페인 한 병이 다 고갈되고 남은 한 병을 들고 나는 다른 테이블로 넘어갔다 자연스레 오늘의 컨셉답게 95년 생이라고 소개했다 그 테이블에는 네 명이 함께 놀러 온 친구 무리가 있었다 다들 초중고를 함께 한 친구라고 했다 서로를 무심한 듯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 좋았다 그중 한 친구는 본인입으로 내향적이라고 말하고는 연신 사람들에게 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뭔가 언행불일치라 생각했지만 그가 친구들의 구박 속에 1차와 2차 사이에 찹쌀꽈배기를 사 왔고 그 꽈배기 못난이처럼 생긴 찹살꽈배기 샴페인과 먹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내가 그를 쳐다보며 최고의 선택이라며 치켜세우자 그는 꽤나 만족하는 눈치였다 내 옆자리의 그의 친구가 말하길 고등학교 때까지 내성적이던 그는 대학 입학 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갑자기 연영과를 선택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는 항상 MC처럼 나서서 분위기를 이끈다고 했다 다만 평소엔 여전히 내성적이면서 말이다 나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와 그의 친구를 바라봐주었고 그의 친구는 나에게 MBTI를 물어보았다 나는 원래의 MBTI와는 반대로 ESFJ에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아 그래서 샴페인이랑 사오셨군요 계획적이시네요라며 본인도 J인데 나머지 세 친구가 모두 P성향이어서 본인이 항상 가자고 계획을 짜고 끌고 다녀야 한다고 가끔은 지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나도 그렇다며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나서 다들 여자친구 없냐고 물어보니 네명 모두 그렇다고 했다 그 중 한 명이 나에게도 물어봐서 나는 헤어진 지 3주째라고 이야기하였다 갑자기 질문자는 친구들의 이목을 끌더니 이분 오늘 이별 3주째시래라며 술 한잔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주도해 주었다 다들 그때가 가장 힘들지 않냐며 잘 왔다고 그럴 땐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도움이 된다며 나에게 많은 공감과 응원을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나에게는 분절된 감정들을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사람들 사는 시시닥거리들을 이야기하고 서로 맞장구쳐주고 하다 보니 2차가 끝나는 시간이 되었다 게하에서 쫓겨난 모두가 게하 입구 근처에서 어색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누군가가 주도해서 3차 자리를 만들 것임을 알기에 그냥 가만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첫 테이블에서 86년이라고 밝힌 사람이었다 모두가 트레이너라고 예상했던 그의 직업은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말수가 적었고 사람들을 조금 유심히 쳐다보는 행동이 많아서 나는 그를 기피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95년 생에 말괄량이 아가씨로 철저한 컨셉을 유지해야 하는데 약간의 갈색이 도는 그의 동공이 나를 쳐다볼 때마다 흠칫하는 게 있었다 지금 또한 그러했다 건물 옆의 편의점의 밝은 조명에 그의 동공이 더 갈색으로 보였고 나는 어색하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렇지 않은 척 시크한 척 그를 빤히 아무 사심 없이 바라보다 그나마 친근해진 사람들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같이 3차 갈래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입술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들릴 듯 말 듯 나이도 솔직하게 말하고요라고 덧붙였다 화들짝 놀라며 그의 팔꿈치를 잡고 청초호 방향으로 이끌었다 한참 그의 팔소매를 잡고 움직이다가 그가 갑자기 웃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의 팔소매를 놓고 뾰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행동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에요, 재밌는 분 맞네요,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그럼요 연기도 잘하시고요, 연기라뇨, 연기 맞잖아요? 나는 주변을 빠르게 살피고는 뿔소라찜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죠라고 대답했다 게하 근처에 새벽 2시까지 여는 포장마차 스타일의 노포로 나는 그를 이끌었다 이미 가본 적 있는 곳이라 나는 막힘없이 앞서 걸었다 다행히 게하에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6,70대 정도로 보이는 아버님들 일행과 젊은 커플만 보였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처음처럼 한 병과 뿔소라찜을 주문했다 이모님은 소주와 당근과 오이 그리고 마늘종을 먼저 주셨다 소주를 한잔 주고받으며 제가 연기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물었다 그가 내 왼쪽 어깨를 가리켰다 그거요 작지만 BCG주사 자국이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84년 생까지만 있을걸요 늦여름 답지 않은 더위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나의 완패였다 나도 모르게 소주를 다시 기울였다 그는 소주병을 잡으며 그렇게 자작하면 내가 6개월간 솔로로 지내야 하는 거 모르세요라며 농아닌 농을 쳤다 군인이 아는 게 많으시네요라는 나의 빈정 어린 말투를 받아치며 그는 저도 거짓말한 것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군인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그것도 형사라고 말해주었다 와 너무 하시네요라는 나의 말에 그는 경찰이 곁에 있으면 모두가 위축되잖아요 그리고 저도 경찰인 저로 참여한 건 아니고요 그렇지만 말투나 평소 행동들을 숨기기는 어려워서 군인이라고 한 것뿐이에요 강원도에는 부대들이 많으니까요, 아하 대단히 전략적이시네요 나는 비아냥 2연타를 연이어 들어부었다 그는 내 대답을 스리슬쩍 피하기 위해 근데 뿔소라가 참 안 나오네요라며 그가 주방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의 뒤통수에 대고 그래서 원하는 파티를 자알 즐기셨나요 형사님이라고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물론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할 필요는 없지만 같이 거짓말을 한 전우라면 전우인데 나만 뭔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앞에서 뭐랄까 한동안 잊어서 내 안에 있는지도 몰았던 찡찡이를 꺼내고 싶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내 빈 잔과 자신의 빈 잔을 채워 넣으며 그럼요 오늘 매우 즐거운데요라고 말했다 아하 형사님은 즐거우셨구나라고 내가 한자한자 또박또박 말하자 그는 그는 다시 나를 빤하게 보며 그럼요 내 앞에 계신 분을 만났잖아요라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뿔소라찜나왔어요라는 이모님의 우렁찬 소리에 묻히지 않으려고 애를 쓰듯 말이다 나는 이모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인사하며 그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웃으며 아까 게하에서의 그분 어디 가셨어요 분명 아깐 이런 텐션 아니지 않았어요 아 그것도 연기인가라고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말하며 잘 삶아진 소라를 젓가락으로 잡아서 소주 한잔과 함께 넘기며 말했다 그래 그건 말괄량이 아가씨 컨셉이니까라고 나는 입 밖으로 나올 말을 소주와 함께 삼켰다 그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에게 그래서 나이가 어떻게 되어요 직업은요 어디 살아요라며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 게하 파티가 너무 시끄러워서 사실 잘 안 들렸어요 물어보고 싶은데 님은 이미 샴페인 병을 들고 다른 테이블로 떠났고요 3차 안 가면 어쩌지 은근 걱정했다고요, 알았어요 알았으니 천천히 하나하나 이야기해요, 근데 여기 진짜 맛있네요, 그는 연신 소라를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갑옷을 벗은 나는 내 모든 인적 사항을 말했다 아니 취조당하듯 불었고 그는 연신 웃었다 그런데 그의 웃음이 웃을 때 찡긋거려지는 볼이 좋았다 취기 때문인지 점점 그 분위기에 그곳의 냄새 분위기 온도 모든 것이 좋아졌다 우리는 그렇게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지만 시기콜콜하게 뭔가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모님의 강한 무언의 압박에 가게 앞으로 나와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하는 그에게 나는 나를 따라오라고 했고 청초호 앞을 걸었다 걷기 좋은 온도 청초호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그 건너의 바다가 그리고 달빛이 모두 좋았다 나도 모르게 그의 팔짱을 끼었다 그와 큰 이야기 없이 걸었다 꽤 오랜 시각을 그리고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해가 뜨는 걸 바라보았다 잠을 자지 못해 지친 심신의 심신 미약 때문인지 아니면 그 상황의 로맨틱함 때문인지 나는 그의 어깨에 내 고개를 잠시 얹었다 해가 뜰 듯 뜨지 않는 시간이 꽤나 오래된다고 느껴졌다 조금씩 올라오는 해를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모든 긴장이 풀림을 느꼈다 해가 다 올라 그 강렬한 붉음이 온 세상의 밝음으로 바뀌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나에게 헤어지기 전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인연이면 또 보겠죠라고 말했다 맞다 그랬다 정말 인연이면 또 보게 되더라 말도 안 되게 말이다 6살이나 차이에 마산과 수원 우린 너무 멀었다 마음이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거기에 그는 돌싱에 아이가 있다고 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그였다 그만큼 그가 진심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조금만 나쁜 마음 아니지 조금만 스스로에게 유리하려고 했다면 그는 그런 이야기 모두 안 할 수 있는 짧은 만남이었다 내가 거짓을 고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와의 시간 미래의 순간들을 즐길 준비가 안된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서웠을지도 그 짧은 순간 나는 생존본능을 느꼈다 그러나 간만의 설렘 게하에서 그런 만남이 있을줄 전혀 상상도 못했다 사람사는 이야기만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레 찾아온 아쉬움에 나는 이번주 주말 친구들에게 청담 라운지바에서 테이블이나 잡자고 한다 주말 저녁 집에 있으면 어떤 청승을 부릴지 모르는 밤이 되리란 걸 너무 잘 알기에 술로 정신없음으로 달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