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가 던진 유효타
나의 주변에서 가장 나다운 아니 그저 온전한 나 그 나라는 자아 그 관점 논점 그러니까 나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진 거의 100% 일치에 가까운 부합하는 사람이 Y라는 사실을 그녀를 안 지 6년 만에 알아챘다니 뭔가 손바닥만 한 나방을 본 것처럼 징글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나의 모든 못난 자아 내가 버리고 싶은 모난 점들 그 모든 것을 모나지 않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나를 재해석해서 살아가던 그 시간들 꽤 오랜 기간 나에게 너무도 동일하게 역설적이지만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게 비정상이 아님을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녀였다니 그걸 털어놓는 그 과정이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니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도 급작스레 빠르게 스파크가 튀어 불이 붙듯 급작스레 발화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그녀에게만 그렇게 끌렸나 생각보다 무딘 나의 생각의 관철점과 예민성에 나는 불이야와 같은 정도로 정말 정말 뜨악하고 놀랐지만 그녀는 오히려 별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소주를 한 잔 넘기고는 손절 잘하시잖아요,라고 대담한 말을 그냥 지나가는 행인에게 던지듯 나에게 던졌다 일그러진 복잡한 내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번 소주를 한 잔 더 마시고는 처음 만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덧붙히곤 커다란 눈망울을 - 그녀는 망아지 같이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 더 번뜩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니라는 말을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만 작게 달착여졌다 어떤 단어도 목구멍을 통해 발화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짠해요 짠,이라며 자연스레 상황을 반전시켰다 그리고는 다시금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별거 아닌 직장 이야기 연애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유튜브 이야기 그저 이야기 이야기들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야기 사실 우리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들을 다시금 채워나갔다 촌철살인이 이런 것일까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며칠 밤을 잠을 뒤척이고 있다 계속 그 순간이 Y가 소주잔을 들이키고 손절 잘하시잖아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repeat 모드가 걸린 노래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다 혼자 고뇌하며 내 자아를 첨예하게 다시 쌓아가던 그 시간들 꽤 오래 지나 이제는 나는 명확하게 단순화해졌을뿐더러 안정적 단단함이 생겼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으나 Y의 한 마디에 다시금 나는 빙그르르 끼익끼익 어릴 적 자주 놀던 놀이터의 빙글빙글 위에 올라탄 것처럼 돌려졌다 오빠들의 짓궂음에 토할 것 같이 머리가 아파와도 내리지 못했던 어릴 적 그 시절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엔 이불을 정말 박차며 이불킥을 하며 일어나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녀의 회사 앞으로 찾아가고 싶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데 왜 그리도 화들짝 놀랐는지 모르겠다 정곡을 찍혀서였을까 아니면 그도 아니면 내가 조용히 헤어진 인연들이 결국은 내 스스로는 그걸 합리적 방어를 위한 무탈한 작별이라 생각하던 그 관계의 단절이 결국 손절이라는 단어로 꼬집혀져 그 꼬집힘이 아파서 내가 그렇게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쌍절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진 듯한 기분 그게 그날의 기분이었다는 사실을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알아채다니 예민해져서 주변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던 폐악질을 하던 나는 그제서야 잠잠해졌다 불필요한 포장을 나에게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혼자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는 술기운에 취해 3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처음으로 사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오픈해서 꼴꼴 꼴꼴꼴 잔에 따라 마셔본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아몬드 몇 알과 마카다미아 몇 알을 꺼내서 그릇에 놓고는 한 잔 더 따른 뒤 침대 옆 협탁에 올린다 와인 한 모금을 혀 위에 굴리면서 다시금 생각을 해본다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 심지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자 평생 나를 괴롭힐 것 같던 대상포진이 사라지던 사람 그냥 내가 을이 되도록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서 버려둔 관계 나는 그들을 그냥 하나의 카테고리로 나랑 결이 안 맞는 사람이라는 편안한 쉬운 방식으로 닫아버렸다 하지만 Y는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평가하는 말들 그 말들에 스스로가 상처가 받음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손에 칼자루가 들렸다고 별생각 없이 이곳저곳을 찌르고 다니면서 튀어나오는 핏방울이 얼굴에 묻어도 별생각 없이 스윽 닦아내는 그 무지에서 등장한 순박한 잔인함을 보면 마음속에 열불이 천불이 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만나고 싶지도 아니 그런 상황 자체를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에게 대상포진을 안긴 그 사람은 항상 본인이 본 콘텐츠 평가하고 주변인을 평가하고 스스럼 없는 평가를 항상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잘난 사람으로 포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럴 만한 - 포장을 잘하는 -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묘하게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 안전하게 스스로에 대해서는 인정받으려는 그런 이야기가 숨겨있었다 난 괜찮고 다른 사람은 별로야 물론 그래도 된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항상 매우 나를 존중해 주는 듯 대하는 그 태도에 더 기분이 이상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왜 기분이 상했을까 그가 소위 깐 사람들을 내가 괜히 대표해서? 아님 본인을 기준으로 두지않고 하는 그 평가들이 어처구니 없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그런 저급한 이야기를 내 두 귀를 통해 생생하게 들어서? 사실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 사람을 만나는 기회 자체를 없애버리니 내 병은 나았다 그런데 Y는 이미 알고 있었다니 소름이 끼쳤다 이래서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건가 마치 개복치가 까무러쳐서 죽듯이 나의 생각이 고대로 읽히는 그 과정이 너무도 싫어서 그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Y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고보니 이상하게 우리가 만나서 맞아맞아,라고 서로 맞장구 쳐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마치 펜싱 경기 같았다 다만 우리는 에페 스타일은 아니었다 우선 공격권이라던지 타격 범위에 우리만의 룰이 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은근한 다변형성을 좋아하기에 결국 우리는 사브르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가끔 서로의 공격에 아프지만 Touché를 크게 외친 적은 없다 그저 Merci를 외쳤다 그게 우리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길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누군가가 스스로의 관점을 공유하면 그걸 단 한 번에 그냥 받아들이는 적이 없었다 우린 계속 논쟁을 버렸다 그런 관계가 6년이 지속되었는데 그날 날카롭게 내 팔뚝을 그녀의 칼이 베고 지나갔고 내가 결국 Good Touch를 인정해 버렸다 그게 자존심 상했나 그럴지도 나는 스쳐 지나갔기에 유효타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말은 손절 잘 하시잖아요,는 확실한 유효타였다 거기에 더해 나 또한 내가 손절해 온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난 괜찮고 너넨 안 괜찮아라는 권법을 전방위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마치 나는 안 그런 것처럼 암막커튼으로 잘 가려두고 있었지만 그 커튼 뒤에서 나는 우습도록 사납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기가 찰 정도로 열심히 말이다 그리하여 나를 손절한 사람들을 생각지 못하고 내가 손절한 사람이 나에게 끼친 피해만을 주먹구구식으로 열심히 세어서 돌려주려고 하고 있었다 큭큭 웃음이 더 진하게 나온다 거울을 바라보듯 바라보던 Y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휴대폰을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내 왼쪽 어깨가 시리면서 감정 하나가 등장한다 개쪽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