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 떨림
손이 부들거린다 커피를 마시려고 해도 떨리는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이럴 때 누가 곁에 있다면 나을까 아니면 밖으로 나가 서성거리는 게 날까 그냥 알콜을 위장에 가득 채워서 잊어버리는 게 나을까 이도저도 아니다 모르겠다 그저 춥고 무섭다 떨리는 손끝을 간신히 다른 손으로 잡아서 멈추려고 다시 시도해 본다 하지만 그 떨림은 그곳에서 멈추지 못하고 더 깊이 더 깊숙이 사라져 결국 심장까지 다가간다 쿵쾡 쿵쾅을 넘어서 떨어지는 낙폭이 큰 폭포처럼 심장이 덜커덩거린다 녹색 띠가 파도에서 향유고래를 잡는 배 그림 아래에 널직하게 자리 잡은 그 책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어렵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데 무언가를 해야 할지 어렵다 마음이 어지럽다 아니 머리가 어지럽다 몸은 내 통제 범위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휴대폰을 들고 연락처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선뜩 연락하기 망설여진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결국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두 패널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분명 말, 그래 말,을 하고 있지만 마치 서로를 겨누고 선 유도 선수들처럼 서로의 옷깃을 양손으로 잡아끌면서 싸우고 있다, 진영논리 그래 그럴지도 서로의 대척점 안에 그 어떤 합의점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의 이야기가 오간다 결국 진행자가 중재에 나서려고 하지만 그 또한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 속에 간약한 진실성이 진리란 이름으로 대체되기까지 그들은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프로그램 종료 시간인가 보다 프로그램 엔딩곡이 나오며 진행자가 다급하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진행자의 목소리 뒤에 계속 되는 두 패널의 논쟁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냐,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잠시 진정된 내 가슴이 다시금 두근거리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30여 년 전인가 나는 엄마 대신 아버지의 회사에 찾아갈 일이 있었다 시골의 작은 공장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나를 귀여워해주셨던 분들이 아버지의 동료들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찾자 뭔가 석연찮은 표정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의 서툴은 거짓말이 그들의 입을 통해 나왔고 결국 나는 공장 뒤편에서 어떤 아주머니와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사근거리는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뒤통수만 보였던 그날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탕하나 훔쳐본 적 없던 나는 그날 얼굴이 화끈거리며 숨겨야 할 무언가를 소매주머니에 넣은 것처럼 팔뚝을 부여잡고는 조심히 공장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 뒤 마티 누가 쫓아오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버스정류장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막차를 타고 서울에 자취방으로 올라왔다 급하게 과제할 게 있다고 둘러대고 올라탄 막차였다 몇 시간 전 저녁 태연한 아버지의 얼굴을 집에서 보자 먹었던 모든 것이 올라올 것 같이 느껴져 나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체했는데 뭐 그리 급하게 가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기실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가 없었다 여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나는 그저 그날의 그 장면을 내 가슴속에 꽁꽁 묶어두었다 그리고 잊으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삶은 또 하루하루 지나가고 그 장면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 삶을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의 일상은 항상 똑같았으며 큰 변화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여름, 나는 사수에게 매일 혼나며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보고서의 띄어쓰기 하나로 가정 교육까지 들먹여지곤 했다, 왜 그런 실수 하나 확인하지 못하고 매일 혼나나 내 스스로를 더욱더 초라하게 바라보던 시기였다 정말 그랬다 내 눈에는 안 보이는 오탈자가 왜 그리 사수한테는 잘 보이는지 나는 내가 밉고 밉고 또 미워서 매일 저녁을 소주로 이어가고 있었다 매일의 힘듦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던 그때 여름휴가 기간이 다가왔다 제조업인 당시 회사는 공장이 쉬는 주간에 본사 직원들도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일에 치여 결국 내 실수에 치여 정신없이 헤매던 때라 나는 부모님에게도 방문을 알리지 못했다 정말 그냥 내려갔다 그럼에도 집에서 모락모락 연기 나는 뜨끈한 쌀밥을 먹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분 좋음을 느끼며 내려갔다 대문을 열고 엄마아아아, 크게 외치려는 순간, 큰 까마귀가 집에 있나 싶을 정도의 새된 소리가 집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한달음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쇼파 앞에 엄마는 자지러져 울면서 소리를 치고 있고 아버지는 평소의 묵묵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소리치며 들어가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저 세상에 있다가 이 세상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며 별거 아니다,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계속 눈물을 쏟으며 아이고 못살아 못살지,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냉수 한 사발을 가져다 놓고 엄마 등을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미의 눈물에 동조된 것일까 아니면 내 감정 그동안 막아두었던 내 감정의 둑이 터져서 그런가 한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엄마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는 꺼이꺼이 울었더랬다 서로 아마 다른 이유에서 그리 울었고 정말 슬펐겠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기억은 따뜻함이다 그날의 당혹스러움도 아니고 그저 오랜만에 느낀 엄마의 온기 눈물의 짠기 그것만이 남아 있다 그렇게 십여분을 울고 울다 지친 엄마와 나는 거실 쇼파를 등에 대고 바닥에 앉아 냉수 한 사발을 나누어 마셨다 엄마는 괜찮다며 너는 몰라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몇 년 전 공장에서 봤던 그 장면이 정말 오래전이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장면 아버지의 웃고 있는 뒤통수가 생각나며 터질게 터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말을 어여쁘게 하는 살곰한 스타일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을 다 해내고 결국 기울어졌던 가세를 다잡게 해 준 것은 엄마였다 매일 공장일로 바쁘다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우리 삼남매를 키우고 작은 봉급으로도 살뜰하게 모자란 것 없이 키워준 것이 엄마였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다 주중에도 주말에도 아버지는 항상 출근을 한다며 바쁘셨다 한 번도 아버지의 출근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몇 년 전 사건 이후에도 나는 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출근에 대한 의구심은 엄마에게 있었더랬다 이 또한 이로부터 한참 후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이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이혼을 하고 그 다사다난한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는 남편 간수를 어떻게 하였으면 외도를 했겠냐며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조상 볼 낯이 없다며 엉엉 울면서 갓난쟁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나는, 입밖으로 아무 말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목구멍에 무언가가 터억하고 막힌 느낌이었다 그저 챙피했다 실패한 인생이 되어서 그래서 부모님 앞에 앉아 있는 나의 삶이 너무도 죄스러워 나는 그저 울고 또 울었다 죽어도 그 집에 가서 그 집 귀신이 되라며 아버지는 나와 아이를 집밖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이 집에서 나갈 사람은 당신인데 왜 내 딸이 나가, 조근하게 시작한 엄마의 목소리가 나가,부분에서 벼락이 치듯 커지며 갈라졌다 동네방네 다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평소 말수가 적던 엄마는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집밖으로 나가 싸릿대로 만든 오래된 빗자루를 가져와서 아버지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네가 나가 네가,라는 말을 도돌이처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빗자루짓은 엉성해서 아버지는 손쉽게 후루룩 정말 칼국수 면발이 대문을 넘어가듯 후루룩 도망가 버렸다 손을 빗자루를 양손으로 잡았음에도 양손을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엄마는 나에게 와 너는 잘못한 것 없어 다 엄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더니 그 긴 세월의 이야기를 나에게 하였다 내가 공장에서 보았던 그 장면은 엄마가 쏟아내는 이야기에선 별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출근은 곧 여자를 만나러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몇 년 전 엄마와 내가 부둥켜 울던 그날은 심지어 그 전날 다른 여자를 집에까지 데리고 온 날이었다 정말 우스운 것은 결국 그 여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빚만 져온 아버지를 다시 받아주고 그 빚을 다 갚은 게 엄마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당당했다 언제나 자신이 밖으로 도는 것은 엄마의 잘못이라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의 일기장은 눈물 자국으로 두꺼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 친정에도 말하지 못하고 그 서러움을 일기장에 몰래 남겨둔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다며 그렇게 사는 것 밖에 없었다며 결국 자신의 아둔함이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넘어가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며 미안하다며 엄마가 미안하다며 연신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러며 네 아버지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어릴 적 집안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그랬다면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괜찮았을거라며 나에게 아버지를 연민의 시선으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화목한 가정에 살고 있다고 남들보다 평범한 삶 속에 있다고 자부했던 나의 삶이 나의 이혼을 계기로 무너져버렸다 당시 나는 엄마도 아버지도 모두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너무너무 미워서 아버지에 대한 독기로 가득 차서 나는 목이 조여 오고 명치가 찌를 듯이 아팠다 거기에 끝까지 이혼은 안 해준다는 남편,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 더 돌아버릴 것 같은데 미쳐버릴 것 같은데 숨이 안 쉬어지는데 나는 살 수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얼빠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회사 앞 8차선 대로의 횡단보도를 빨간불인데도 건넜다 차들의 크락션 소리가 들리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 나 살고 싶어 살고 싶은데 살면 안 되나, 결국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양육권까지 빼앗기고 합의 이혼을 했다 양육권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네가 다 피해자인데 왜 그리 다 뺏겼냐며 소송을 더 했다면 분명 위자료도 양육권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동생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모두가 합심한 듯 말했다 하지만 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최대한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자 정말 숨이 쉬어졌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가끔 엄마와의 안부전화가 다였다 사실 그 마저도 어색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잘 있지, 응 그래, 엄마는 아픈데 없지, 응 괜찮아, 홍삼 사서 보냈으니까 매일 먹어, 응 그래, 나 회의 가야 해서 끊을게, 최대한 빠르게 끊고자 나는 근무 시간 사이에 여유가 생겼을 때 전화를 걸었다 변명하기 좋으니까 말이다 부모님과의 거리 두기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었다 아이와의 교섭권은 나를 더욱 피 말리게 하였다 전 남편이라는 놈은 항상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전화도 안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아이의 새엄마가 생겨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도 나를 만나기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지옥의 시간이었다 거기에 그 당시의 나는 순진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내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꼴에 아빠라는 게 부모 노릇을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내 삶을 생각하며 합리적 결정이라고 다독였다 그게 나의 아이에게도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가슴에 그렇게 품었다 아니 숨겼다 회사사람들이 육아 휴직 복귀 후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창립기념일에 가족들이 다 같이 와서 사진을 찍고 누군가의 평범한 삶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음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그저 일에 몰두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했다 주말에도 일했다 남은 시간에는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8년을 매일을 매일처럼 보내고 나자 다행히 나를 알아봐 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의 도움으로 글로벌 빅테크 회사의 한국 지사 초창기 멤버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커리어는 나의 삶과는 반대로 점점 더 좋아졌다 마치 그 아픔이 슬픔이 자양분이 되어 내 삶의 플러스 요인이 된 것과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기가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제 그 지난 어려움 또한 희석될 대로 희석된 상태였다 나는 그랬다 지금을 그저 열심히 살기로 했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 삶에 그늘 따위가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아니 그런 그늘 따위에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성공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한국 여성임원이라는 이미지로만 나를 생각했다 나 또한 그런 삶이 싫지 않았다 그랬다 나 또한 뻔뻔해졌다 그래서 그런 가면을 쓰고 살았다 바쁘게 정말 바쁘게 24시간이 모자르도록 달렸다 그 바쁨이 쉼이 없는 그 달림의 보상이 내 삶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아무런 일정이 없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커피 한 잔 하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으려고 했던 여유로울 뻔했던 오늘, 모르는 번호의 전화, 내가 받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고개를 휘젓는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소름이 온몸에 돋아 올랐다 전 남편이었다 그는 잘 지내냐며 웃음끼 비치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아이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뻔뻔한 목소리 여든이 넘어서도 아직도 여자 문제로 엄마의 눈물을 마르지 못하게하는 아버지의 뻔뻔한 목소리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갈라진 그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