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문득 생각난 그것
기차 시간보다 20여분 남짓이나 빠르게 기차역에 와본 적은 오늘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플랫폼에 도착한 것은 처음이었다 역사 내 가득 찬 사람들을 뒤로하고 플랫폼으로 이동해 보았다 항상 가장 늦게까지 최대한 미루고 미루어 역사에 있다가 열차가 들어오는 시점에 거의 맞추어 플랫폼에 도달하던 나는 웬일인지 오늘은 그냥 빨리 가고 싶었다 열차의 낭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 도시의 향이 달큰하게 섞여서 바람 사이로 느껴진다 살랑거리며 울리는 바람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풍경을 쓰다듬어 어여쁜 오후의 한적함을 더 풍성하고 영롱하게 해주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부푼다 웬일인지 대단한 일 없지만 기분이 좋다 참새의 지저귐이 중간중간 느껴져 아침 같은 기분까지 든다 이미 아침이 지나간 지는 꽤 되어 이제 다음 아침이 더 가까운 시간이 되어가는데 말이다 텅 비어진 플랫폼을 두리번거리다가 열차문이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 앞에 일등으로 섰다 곧 사람들이 삼삼오오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뒤에도 올곧은 줄이 만들어진다 줄이라 줄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줄을 서라고 누군가가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눈치껏 줄을 만들어 나간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말이다 물론 그 와중에 눈치코치도 없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줄을 만들어 나가고 반듯하게 선다 사회화 과정의 일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식 아마 그런 것 중 하나겠지 그러고 보면 줄 그 줄 중에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줄은 그것은 줄을 서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아침 8시 여의도역 역사 안에 있었다 꼬리물기 게임을 수백 명이 한 번에 하던 그 모습은 마치 공산주의 국가의 매스게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아가 사라진 듯한 아닌가 지워지듯한 멍한 표정으로 앞의 사람을 그 앞의 사람을 그 앞의 앞의 앞의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꽤나 신선하고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한국의 자본주의의 중심부로 여기는 공간 속에 그들은 마치 커다란 뱀 그래 아나콘다의 일부가 된 듯 행렬을 몇 번이나 굽이진 행렬을 만들며 역사 안에서 밖으로 스르륵스르륵 진정한 뱀처럼 그치 그들은 뱀이었으니 그게 맞긴 하지만 여하튼 그들은 그렇게 바닥과 차가운 비늘이 마주치는 소리를 내듯이 움직여 나가고 있었다 그 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떨어진 나는 몇십 년 만에 깨어난 냉동인간처럼 이것이 동시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멍하니 덩그러니 놓여진 존재였다 노란 조끼를 입은 군기반장 격 질서 관리자에게 거의 머리채를 잡히듯 이끌려 그들과 합체되었다 거대한 또아리를 움직이는 뱀이 되어 여의도 역사를 휘젓다가 올라 나왔다 꿈을 꾼듯한 이상한 경험이었다 고등교육의 결정체이자 고액연봉의 군집에 포함된 그런 사람들이 무개성의 개체가 되어 집단화를 이루고 하나의 형상이자 객체를 이루었다는 게 대단히 흥미로웠다 공감과는 또 다른, 자본주의 사이에 끼어있는 사회주의 그 어떤 집행자의 권한 없이 이루어지는 개별 개체의 주체적 의사에 따른 행위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그렇게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효율성이라는 잣대 질서라는 것의 비호를 위해 자발적이자 꽤나 자의적으로 기실은 인간적으로 비인간화를 선택했다는 것이 너무도 신선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시간에 여의도를 올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매일 출퇴근을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너무 학을 떼는 나를 보며 나의 천진함이 오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체험 한 번에 죽음에 대해 다 이해했다는 듯이 떠들고 다니는 사이비 오컬트 교주처럼 내가 그런 혐오에 가까운 행위 혹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흠칫스러우며 더욱 매스꺼워졌었다 그냥 모두에게는 일상인 그 경험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난인가 그런가 말이다 그저 그곳에 그런 것이 존재했을 뿐이고 지금 현재를 지나 다가오는 내일의 아침에도 모레도 그것은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아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