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위기에 처해있다면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라. 첫째,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것, 둘째, 쓸데없는 움직임은 줄이되 계속 움직일 것, 셋째, 고통스러워도 살아남을 것.주짓수를 수련하면서 알게 된 생존전략이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하지 말아라. 단 계속 움직여라. 고통스러워도 살아남아라
어떻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브먼트(movement, 움직임)에 대한 기본 전략을 따르면 된다. 단, 3가지 생존 전략은 위기상황에만 해당한다. 평상시의 움직임과 위기 상황의 움직임은 달라야 한다. 건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상황에 적절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주짓수를 하면서 알게 된 생존전략을 인생의 고비에서 요긴하게 쓴다. 좀 더 일찍 터득했다면 좋았을 이 전략을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문제 좀 풀어라. 성적 올리고 싶으면 문제 좀 풀어라."였다 토할 때까지 풀다 보면 성적은 올라간다는 말도 들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12년 동안 풀어댄 문제집. 백병전에서 맨손으로 적에게 돌격하는 전투 대원처럼, 문제집에 머리를 처박고 문제를 풀다 보면 성적이 올라가기는 했다. 토할 것 같을 때까지 문제를 푸는, 그 절박함과 치열함에 비추어 공격 전략이라 할만한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고3 어느 날부터, 문제집만 펼치면 배가 아팠다. 보고 있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꾀병이 아니었다. 복통이 잦아 수업 중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를 반복했다. 문제집을 풀라는 말이 듣기 싫었지만, 그 와중에도 난 문제집을 놓지 않았다. 다른 것을 할 줄 몰라서였다.
대학 입시에 대한 압박감으로, 마음이 병들고 급기야 몸이병드는 신체화 증상이 시작되었다. 아랫배를 움켜잡고 버티던 수험기간은 나에게 위기상황이었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법이었다. 생존전략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난 공격전략밖에는 알지 못했다. 무작정 참고 버티며 수험생활을 보냈다.
요즘 말로 나는 '존버'를 실현 중이었다. 대학에입학은 했지만, 한동안 적응을 못 했다. 상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시간이 지나자 차츰 회복되었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 젊음과 생기가 가득하던 그때는 비교적 회복이 수월했다.
그 이후로도 '돌격 앞으로'를 외치듯 용을 쓰며 살았다. 시간을 쪼개서 자기 계발을 하고,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만 가려 만났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만 사용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늘 효과가 있지 않았다.위기의 순간에는 이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체인이 끊어진 자전거 바퀴는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힘을 쓰면 쓸수록 기운만 빠지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무너지고, 영혼은 빛을 잃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무너지고, 영혼은 빛을 잃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껏 써왔던 방법으로는 더는 삶을 꾸려나갈 수 없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버티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힘을 아끼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깨달음이 필요했다.
사진: Paul Kee Jean
머리로는 답을 알고 있었다. 힘을 내기보다는 힘을 빼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는 걱정하지 말기, 욕심을 내려놓고 현재에 충실하기.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심리학을 배우면서 찾은 답이 있었지만 가끔은 의심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될지 확신이 없었다.
학문에서 얻지 못한 확신을 매트 위에서 얻었다. 매트 위에서는 삶이 응축되어 재현된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이기에, 누군가와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매트 위에서는 온갖 갈등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이 생생하다. 움직임을 주고받고 호흡이 가빠질수록, 막연하게 짐작하던 갈등과 희미하게 느껴지던 감정이 뚜렷해졌다.
매트에서는 삶이 응축되어 재현된다.
주짓수는 압박하기를 공격 기술로 쓴다. 체중이 많이 나가고 기술을 잘 쓰는 상대가 압박하면 가슴 위에 아기 코끼리가 올라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밀어도 상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땀은 솟구치고, 숨은 쉬어지지 않는다.
꼼짝달싹할 수 없이 짓눌리는 압박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겁이 나니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팔다리는 버둥거린다. 힘은 점점 빠지고, 허우적거리다 결국 상대에게 팔다리를 잡혀 항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위기의 순간에는 힘을 아껴야 한다. 그렇다고 겨울잠 자듯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된다. 멈추어 있으면 상황은 더 불리해진다. 몸통이 깔리면 팔다리를 써서, 팔다리까지 깔렸다면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이라도 꼼지락거려본다.
성공하기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다. 호흡이 가빠져 얼굴이 터질 것 같아도 항복하지 않는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돌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돌더미가 드리우는 그림자만 봐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럴 때는 돌더미를 향해 달려가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손 놓고 있지도 않다. 상하지 않을 만큼 움직인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본다.
그 작은 움직임은 돌산에 틈을 낸다.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듯 단단한 돌산에 틈을 내어, 그 사이에 손 끝과 발 끝을 걸고 기어올라간다. 한 걸음씩 올라가다 보면 돌더미가 드리우는 그림자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위기에서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