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문을 열면 파란 매트가 펼쳐진다. 신발을 벗고 매트를 밟는다. 벗어놓은 신발 무게만큼 몸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긴장이 풀린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함께한 동료들 얼굴이 보인다. 언제나처럼 자리를 지켜주시는 사범님, 뒷모습만 봐도 오늘 기분이 어떠신지 알 것 같다. 사범님도 마찬가지신가 보다.내 얼굴을 흘긋 보시더니 한 마디 하신다.
"어! 오늘 컨디션 좋은 가봐. "
추임새를 더하고 덜하기는 하셔도 없는 말은 안 하신다. 사범님과 동료들의 웅성임으로 체육관 공기가 따뜻해진다. 깔깔거리는 소리, 투덜대는 소리, 서로들 반갑게 나누는 눈인사로 파란 매트가반짝이는 것 같다.
처음 이 매트를 밟던 날을 기억한다. 매트 위에 양말 벗은 맨발을 드러내고 걸음을 디뎠던 날,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내놓은 열 발가락이 쑥스러웠지만또 그만큼 가볍고 설레었던 것을.
체육관 등록을 했을 무렵, 걱정과 고민이 가득해서 그랬을까? 파란색 매트가 마법의 양탄자도 아닌데, 매트만 밟으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이기에 아무에게도 말은 못 했지만, 나는 그런 꿈을 갖고 주짓수 체육관에 등록했다.
이태리 시칠리아 섬에 간 적이 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깊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그만큼 넓고 깊어지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그 자리에 서 있노라면 마음속에 어두운 것들이 힘을 잃고 가장 밝고 맑은 것들이 힘을 얻는 기분, 특별하고 영험한 감동이있었다.
시칠리아 지중해, 아름답기로는 최고지만 아득하게 멀리에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제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비슷한 감동을 주는 곳이 나에게는 체육관 매트다.
이태리 시칠리아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체육관 매트 위에서 사람들은 움직임을 배운다.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수백 번, 수천번 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들이 넘어져서 무릎에 멍이 들고, 아프다고 울면서도 자꾸 일어나 걷는 것처럼, 매트 위 사람들은 온몸에 멍이 들고, 부상으로 절뚝거리면서도 다시 돌아와 또 매트를 밟는다. 부상이 나을 때까지 구경이라도 하겠다면서 매트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매트 위에는 관심과 열정이 태어나고 자란다.
땀이 뿌려지면 닦아내고, 더러워지면 치워내고, 수많은 걸음과 시선이 오고 가기에 생기는 흔적을 덜어내고 지우면서 매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다가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것을 지키는 공간이 되어주듯,
움직임을 배우겠다는 마음을 지켜주는 인큐베이터가 되어주는 사람들, 체육관 사범님들이다.
포세이돈이 바다를 지키려고삼지창을 드는 것처럼, 틈만 나면 대걸레를 들고 매트 위를 가르는 바쁜 손과 발, 하나라도 더 알려주겠다며 지친 몸을 이끌고 매트 위를 구르고 또 구르고. 그 움직임 덕에 낯선 무술에 대한 관심이 자라 열정이 되고, 매트 위를 채운 열정은 감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