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지인이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주짓수 하는 여자'라는 제목의 영상은 일본에서 만든 영상이었는데, 19금 영상에나 나올만한 반라의 여성 둘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진흙으로 된 매트에서 깔깔거리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지인은 키득대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다는 게 이런 거야?"
한다는 게 이런 거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래갈래 갈라지듯, 주짓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구나. "그런 거 아니야." 라 하고입을 닫았다. 나에게 가볍지 않은 것을 가볍게 말하니 마음이 상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이지'라며 속으로는 나도 그를 깎아내렸다.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솔직히 드러내어 소통하는 거라 한다. 말이 쉽지. 품을 들여 설명하기가 참으로 번거롭다. 사람들은 자신의 틀로 세상을 재단하기 익숙해서 낯선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틀리다 한다.
주짓수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양한 시선을 보냈다. 열심히 운동하는 게 보기 좋다며 응원하는 시선에서부터, 왜 그렇게 가학적인 운동을 하냐는 날카로운 시선,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네가 그 운동을 하는 것은 비밀로 해주겠다는 조심스러운 시선까지. 시선의 온도차는컸다.
체육관에 나가는 것이 나를 돌보는 의식이라는 것을 설명하자니 번거로웠다.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내 몸을 알아가고 또 단련시키는 훈련이라고 일일이 붙잡고 말하려니 너무 비장한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그 시선들을 견뎠다. 그렇게 견디다보면 나도 그들을 견디고 있음을 언젠가 알아 주리라 믿었다.
하루는 기술 공부를 하려고 유튜브 주짓수 영상을훑어보는데 낯선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젊은 여성 유튜버의 파안대소를 하는 얼굴 옆에이런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브라를 안 하고 주짓수 체육관에서 스파링 한 이야기" 제목을 이렇게 써놓으면 낚시인 줄 알면서도 낚이게 된다.
실수로 속옷을 갖춰 입지 못한 채 스파링을 하다가 파트너를 당황시켰다며 깔깔거리는 유튜버는 개선장군 같기까지 했다. 예전에 친구가 보내준 반라의 여성이 나오는 19금 영상이 떠올랐다. 선정성이나 자극성의 수위를 따져봤을 때, 해당 유튜브 동영상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조회수는 높았고, 댓글에는 '파트너가 부럽다.' '그 체육관이 어디냐'는 내용들이 달렸다.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유튜버의 전략은 효과가 있어 보였다.
영상을 보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수련 파트너를 존중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는 바 없는 것 같은 유튜버의 태도는 신체 접촉이 많다는 이유로 주짓수를 폄하하는 편협한 시각을 부채질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댓글 중간중간 유튜버를 비아냥거리는 내용들이 보였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남을 존중하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존중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급기야 파트너뿐 아니라 자신을 가르치는 사범님까지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목에서는 나도 멈칫해졌다.
기분이 상했다. 당신이 틀렸다고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잠시 심호흡을 고르고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주짓수에 대한 이해의 부족, 지식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알려준다면, 더 이상 틀리지 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은 이해가 필요하며, 틀린 것은 바로잡기가 필요하다.
다른 것은 이해가 필요하며, 틀린 것은 바로잡기가 필요하다.
댓글을 달았다. 주짓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으며, 지금 이 영상은 가르쳐준 사범님께 실례가 될 수 있겠다고. 그래서 걱정이 된다고. 며칠 후, 유튜버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답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