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모르는 '바보같지만 착한친구'에게
출근을 하지 않는 아침이 이렇게 피곤할 줄은 몰랐다.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는데도 눈이 먼저 떠졌다.
침대 맡 창문으로 푸르게 번지는 여명이 스며든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그렇게 몇 번을 다짐했는데도 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익숙한 리듬으로 움직인다.
핸드폰을 열어 시계를 확인하고,
습관처럼 브런치에 올라온 글 몇 편을 넘겨보다가 문득 멈춘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지.
머리는 무겁고, 어깨는 결린다.
이상하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피곤하다.
달력에 큼지막하게 써두었던
'쉼표'라는 글자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회사가 없는 하루.
누구도 나에게 기획안을 요구하지 않고,
광고 성과표를 묻지도 않으며,
컨펌 요청도 오지 않는 완벽한 휴식.
그런데 나는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단백질 쉐이크를 챙겨 마셨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라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어느새 익숙한 루틴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잠시 앉아 한참을 허공을 바라봤다. 아무 소리도,
아무 감정도 없이.
그냥 멍하니.
내가 왜 멍하니 앉아 있는 건지 생각하려 했지만,
그조차 피곤해서 미뤘다.
이게 쉬는 건가?
아니, 쉬는 게 뭐였더라?
퇴사한 지 며칠 안 된 지금.
나는 여전히 내가 쉬는 법을 모른다.
오전 8시 50분, 휴대폰이 울린다.
미쳐 삭제하지 못했던 핸드폰 속
제일 첫번째 루틴을 시작하는 알람.
"출근찍자 오늘도 화이팅❤️"
회사 프로그램에 출근버튼을 누르라는 메세지였다.
- 알람삭제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정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멈춘 기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무게 있는 운동복과 스쿼트 벨트를
가방에 넣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거울 앞에서 스쿼트를 하며 나는 또 생각한다.
‘지금 이게 쉬는 걸까?’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챙겨 먹는다.
그리고 또다시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며 노트북을 연다. 글을 쓰다 말고, 노션 정리를 시작한다.
정리하다 보니 지난달 업무 백업 폴더를 열고,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내가 만든 기획서를 다시 확인한다.
퇴사자가 아니고,
잠시 출장 온 사람처럼,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 멈춰
나에게 오늘 하루를 지켜본 두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한 명은, 엄마일 것이다.
"그렇게는 쉬는 게 아니야.
넌 아직도 계속 뭔가 하려고 하잖아.
넌 쉴 때도 일해."
엄마라면, 내 마음의 불안과 초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그리고 무심한 듯, 따뜻하게 말해줬겠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이야.
진짜로, 그래도 괜찮은 날이야.”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내 50-60대일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때 너, 잘 견뎠다.
그때 너, 그만큼 달렸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고마워."
그 시절을 지나온 나 자신이,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기를.
쉼을 서툴러 했던 나에게도,
언젠가 고마워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걸.
그것은 다만, 멈추지 못한 마음이
잠시 걸어 나오는 시간이라는 걸.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고했어.
오늘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해낸 거야.”
저녁 7시.
다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창밖의 노을이 내 방 안까지 들어왔다.
눈을 감으니 온몸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일기를 썼다.
훗날, 이 글을 읽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아무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매일 너는 애쓰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충분히 피곤한 하루,
그건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라는걸.
오늘 네가 해낸 그것,
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너의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는 또 한 사람이,
너의 내일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잘 견뎌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너가 나라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