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한 '속도' vs 내가 정한 '방향'
“대리님, 로고랑 슬로건 하나 제작해주세요.
음,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다음 주 월요일까지요.”
로고? 슬로건?
회사 얼굴인데?
그걸 이틀 안에?
그 말은,
“네가 얼마나 고민하든,
보는 사람은 2초 만에 지나칠 거니까
적당히 예쁘게 대충 해와.”
이런 의미로 들렸다.
이제는 알고 있다.
로고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로고제작, 슬로건 타이핑 제작하는 내 시간을
돈으로 계산해야 된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손바닥 뒤집듯
다른사람 손에 바꿔버릴거라는 것을.
그 순간이 내 디자인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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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꿈은 화가였다.
크레파스로 낙서를 하다가 혼나도,
벽에 물감을 묻혀 혼자 놀다가도,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하지만 어릴 적 꿈이 그대로 자라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냥,
엄마가 시키는 학원에 다녔고,
엄마가 고르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고,
엄마가 원한 방식대로 공부하고 살았다.
그렇게 살던 내가,
처음으로 '싫다'고 말했던 순간이 고등학교 자퇴서였다.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의 브레이크를 잡았던 순간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고.
그리고 20대,
비로소 내가 선택한 대학에서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배웠다.
내가 그린 생각들이
제품이 되고,
사람들에게 쓰이고,
실제로 팔린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아, 이게 내가 꿈꾸던 세상이구나.”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꿈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점점 '일'로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아무리 해도,
시장성이 없으면 '쓸모없다'고 했고,
남들이 이해 못 하면 '감성 낭비'라고 불렸다.
나는 점점,
‘잘 팔릴 만한 디자인’을 고민하게 됐다.
고객의 취향을 파악해야했지만,
윗 상사의 눈치를 보고,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예측하고 만드는 사람이 됐다.
‘나는 디자이너인가, 예언자인가?’
내 손끝에서 나온 건 ‘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눈치와 개인기준에 맞춘 ‘상품’이었다.
그때부터 디자인이 두려워졌다.
내가 좋아하던 게,
이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아, 나는 '속도'에 중독돼 있었구나.
누구보다 빠르게 결과를 내고,
트렌드를 캐치하고,
다음 시즌을 예측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 감정, 내 욕망, 내 생각은 늘 뒤에 밀려났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속도를 '내 속도'인 줄 착각하며 달려왔던 것 같다.
회사에서, 팀 안에서,
“누가 먼저 아이디어 냈어?”
“누가 더 빨리 끝냈어?”
이런 질문에 답하려 애쓰던 나는,
‘방향’보다 ‘속도’에 민감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멈췄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아니었을까?
남들보다 빠르다고 해서,
꼭 옳은 길인 건 아니잖아.
시속 120km로 달리고 있어도
잘못된 방향이라면
그건 ‘실패를 향해 가속 중’일 수 있으니까.
어릴 적,
그림을 그리던 나.
물감이 손에 묻어도 신났던 나.
그 순수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나는 아직 그 방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물론,
지금은 화가가 아니다.
내 그림을 팔지도 않고,
예술가라는 타이틀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는 걸.
그리고 지금은
그 마음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 마음을 그려나아가기로,
속도를 줄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남들보다 늦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다른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간이
그렇게 따뜻하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성장’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내 속도에 맞는 성장’이다.
이제는 안다.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가 향하고 싶은 곳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향이라면,
걸로 충분하다는 걸.
오늘의 일기
나는 한때
'속도'가 나를 증명해줄 거라 믿었다.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인정받고,
빠르게 다음 계단을 오르면
내 존재가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나를 증명해줬다.
조금 느려도,
조금 돌아가도,
나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잘 가고 있는 거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조금씩 내 방향으로 걷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그게 바로
‘닥치고, 스프레짜투라’ —
묵묵히, 그러나 끝까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개를 들고 말한다.
"내 속도로도,
인생은 충분히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