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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29. 2021

나일론 믿음으로

나는 할머니의 신앙이 나일론인 거 다 알고 있어


우리 집은 원래

가족들의 생일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다


언젠가 내 생일날 아침, 식탁에 미역국이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내심 감동했지만, 괜히 떠보는 말로 “할머니, 오늘 미역국 끓였네. 소고기도 완전 많고. 무슨 날이야?”하고 (의뭉스럽게) 물었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대답. “그냥 어제부터 미역국이 먹고 싶더라고. 그래서 끓였지.”그저 할머니가 먹고 싶어서 식탁에 오르게 된 그날의 미역국. 의자에 앉으며 할머니에게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호들갑을 떨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생일날 미역국은 맛있게 먹은 셈이니까.     


그런 우리 가족이 해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게 바로 할머니의 생일이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 기억해야 하는 날짜가 매번 바뀌지만 할머니 생일 한 달 전쯤부터 엄마가 온 가족에게 미리 알림을 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엄마가 자신의 생일도 잊지 않고 챙기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걸까. 아, 난 그걸 인제야 알았네.     


지난달 할머니의 생일이라 본가에 다녀왔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미리 주문한 케이크를 손에 들고 걷는 시간이 보람차고 뿌듯했다. 자취방에서 본가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지하철은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조금 더 오래 걸려도 나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지하철의 장점인 정시성을 좋아하면서도, 가족을 보러 가는 길에는 왠지 버스를 타고 싶어진다.(운이 좋으면 버스가 지하철보다 빠를 때도 있다.) 아직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늦겨울이라 버스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고 있었고, 그 포근한 온기와 적당한 덜컹거림에 취해 나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니 어느새 우리 동네. 집에 도착한 나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케이크의 생크림이 녹아 과일로 장식한 예쁜 데커레이션이 망가져 있었다. 버스에는 히터와는 별개로 열기가 후끈하게 올라오는 바닥 부분이 있는데(주로 바퀴 근처가 그렇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를 그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구들장 위에 누운 것처럼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건 다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역시 빨간 버스는 내 집처럼 참 편안하구나, 생각을 했다.    

 

살짝 망가진 케이크를 꺼내놓고 초를 꽂는데,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허탈한 웃음이 났다. 만약 어떤 모임에서 내가 케이크를 담당해서 가져오다가 이 사달(?)이 났으면, 모임의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 것과 별개로 실수한 스스로가 참 바보 같고 속상했을 텐데. 아무래도 할머니의 생일 케이크여서 그런 것 같다. 모양이야 어찌 되었든 이 케이크가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라는 걸 내가 알고 있으니까 괜찮고, 할머니는 그런 나의 말을 의심 없이 믿어주니까 괜찮고, ‘아이고, 이 사고뭉치야’라고 면박을 주는 엄마의 말투에도 자기 엄마를 그대로 닮은 딸의 애정이 묻어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괜찮았다. 더구나 우리 할머니는 인스타그램도 카카오톡도 하지 않으니까. 이 케이크를 볼 사람도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식구들뿐이니까.     



식탁에서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나이만큼

초를 꽂으며

미리 기도를 했다


할머니를 위한 기도. 왠지 하나님이 무리 없이 이루어줄 수 있을 정도의 소원.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는 더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손자의 시건방진 소원이었다.     


초에 불을 붙이고서는 온 가족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엄마, 장모님의 생일 축하합니다.” 내 이름을 떠나 나를 부르는 수 가지의 역할이 생겨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겠지.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보다, 이름 뒤에 어떤 호칭을 붙이는 사람이 더 늘어날 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하며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다음 날 아침,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아직 이른 오전이어서 그런지 방문 밖은 조용했다. 늦잠을 자는 가족들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 내 방문이 빼꼼 열렸다. 할머니가 손에 사과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다.

“밥은 이따 먹을 거지? 그럼 먼저 사과 좀 먹어.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사과래. 너 일어나는 거 보고 가라니까 글쎄, 네 엄마는 꼭두새벽부터 교회에 갔어.”



할머니는 침대 옆에 놓인 조그만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책을 쥐고 있는 내 팔뚝에 한쪽 손을 얹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책상 끝을 붙잡으며 말했다.

“얼른 기도 좀 해야겠어.”

“기도? 할머니, 어제 소원 안 빌었어?”

“아니, 빌었지. 근데 네 기도를 못 빌었지.”

어젯밤 생일 케이크 초를 불 때, 시간이 너무 짧아서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위한 기도를 미처 다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

생일 초 불 때는

남의 기도는 안 해도 돼.

자기 소원만 빌면 돼.


“할미 소원이 뭐 별거 있나. 네 기도가 곧 소원인 거라.”


그 말을 하고서 할머니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줬다.     

   

기도가 끝나고 내가 물었다.

“할머니. 근데 할머니는 오늘 교회 안 가?”


시계를 보니 이미 오전 10시가 지나있었다.

   

할머니가 대답했다.

“오늘은 바빠서 교회 못 간다.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어찌 가나. 이따 아침 차려 먹이고, 또 좀 지나면 점심 차려 먹여야지.”

    

원래 오랜 시간 동안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 절에 가는 걸 좋아했던 할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꼭 신앙생활의 기간이 믿음의 깊이를 증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도 나는 할머니가 나일론 신자라는 것을 안다. 걸핏하면 교회를 빼먹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약주를 한 잔씩 걸치는 우리 할머니.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사실도 알고 있다. 할머니의 기도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건강할 거라는 걸. 방황하고 상심하는 선택을 많이 하겠지만, 그 선택들을 후회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걸. 뻔뻔한 말이지만 손자의 머리에 피가 마를 때까지 할머니가 오래오래 나를 위한 기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생일 초를 불 때마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존경스러운 시절들이 하나하나 케이크 위에 숫자를 더할 때마다.


(코로나 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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