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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Sep 22. 2021

그 사람이 생각나는 물건 100g

100g의 추억을 일상에서 걷어내기는 너무 힘듭니다


한 편의 영화를 봤어요. 멈춰버린 회중시계를 버리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 다니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였죠. 회중시계라니, 정말 쓸데없지 않아요? 쓸모없어진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 다니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 엄청 소중한 사람이 준 엄청 소중한 물건이 아닐까 싶었어요. 한 장의 사진도 아니고, 편지도 아니고, 명함 같은 것도 아니고. 묵직하게 잡히는 회중시계라니 말이에요. 사실 나도 그런 물건이 하나 있었어요. 한동안 가방에 잘 넣어 다니다가 그 쓸모가 다해서 더 이상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당신은 알죠? 내가 한번 외출하려고 하면 챙겨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요. 혹시나 읽을까 해서 책도 한 권, 시간이 남으면 일기도 써야 하니까 빈 노트도 한 권, 중요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랩톱도, 우연히 햇빛이 잘 드는 예쁜 장소에 갈지도 모르니까 평소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작은 물건들도 챙겨야 하니까요. 워낙에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 넣어 다니는 사람인데, 어느 날 집을 나서기 전 둘러멘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그만 침대에 털썩 앉아버렸어요. 가방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 침대 위에 흩뿌려놓고 한참을 바라봤죠. 그러다 결국 빼놓고 가기로 한 건 참 민망하게도 선물로 받은 볼펜 한 자루와 자전거 키를 달아놓은 열쇠고리 하나.     



일상 속에서 함께 하는 물건들은 참 강해요. 거짓말을 살짝 보태서,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니까요. 누군가는 미워서, 누군가는 내가 너무 미안해서. 누군가는 또 무척 보고 싶어서. 그날 내가 가방에서 거둔 볼펜 한 자루와 열쇠고리는 고작 100그램이나 될까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 100그램의 추억들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걷어내는 일이 참 어려운걸요.     


주인공은 회중시계를 여전히 가지고 다녀요. 그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 준비가 안 된 거겠죠. 하지만 그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오직 그 사람이어야 하는 순간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오직 그 사람이어야 했던, 그런 사람이 준 것들을 쉽게 모른 체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너무 오래 마음에 품고 있으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상처를 주게 되는 것 같아요.     


100그램의 물건들을 내 하루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웠지만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죠. 가끔씩은, 여전히, 그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리움이 희망의 그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괜찮아요. 100그램의 물건을 덜어내는 건 쉽지 않았지만, 쉽지 않지만, 쉽지 않겠지만, 다른 무엇을 덜어내는 것보다 분명 더 가벼워질 테니까. 그리고 그곳엔 새로운 마음이 내려앉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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