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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Feb 14. 2022

식탁 위의 가난

가난은 식탁에서 보인다고 생각해


가난의 습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식탁이다. 음식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형편이 어느 정도는 보인다. 나는 마트에서 혼자 장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가격표를 유심히 보는 것을, 100그램 당 가격을 골똘히 비교하는 것을 내가 아는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퇴근길에 마트에 갈 때면, 가끔은 진열대 앞에서 내가 너무 오래 서 있는 건 아닌가 눈치를 본다. 제품과 가격표를 매칭하고, 대강의 양과 상태를 눈대중으로 살피는 것은 아직까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특히 가성비를 가장 많이 따지는 분야는 음식인 것 같다. 한번 쓰면 사라져버리는 것들에게 큰 돈을 지불하는 건 여전히 잘 안 된다. 회사 점심 값,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지불할 수 있는 비용, 테이크아웃 커피 값으로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내가 예상한 그 금액을 넘어가면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진다. ‘맛’이나 ‘분위기’라는 효용보다 그 불편함이 깎아내는 수치가 훨씬 크다.


“가격은 신경쓰지 말고, 먹고 싶은 걸로 골라”라는 말 앞에서는 어찌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언제나 음식값보다 ‘먹고 싶은 마음’이 우선한 적이 없었다. 내 기호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작동하게 길들여진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비싼 걸 척척 사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금액이 어느정도 애정의 크기인 것은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늘 마음이 불편했다. 설령 애인이라고 해도.


나는 군것질을 좋아하지만, 내가 군것질을 하는 건 1+1이 있을 때뿐이었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할인폭이 큰 제품들만 골라 장바구니를 채우는 나를 보고 애인이 말했다. “넌 행사상품을 참 좋아해.” 악의없이 한 말이라는 걸 아는데 순간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아마 모를 거야.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한다는 것. 그 뜻을 너무 일찍 알게 되는 아이들이 있다.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왜 그렇게 망설여?"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럼 그냥 둘 다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때는 미운 마음을 품었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 부러워서였겠지. 그 말에 무시나 비난이 없다는 걸, 나는 어른이 되고 더 다양한 형편의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자기가 먹고 싶어서 온 거니까 자기가 살 거라고, 나를 좋은 식당에 데려오는 애인이 고맙지만,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 돈으로 할(살) 수 있는 다른 것들의 목록이 계속 떠올랐다. 만 오천 원짜리 점심을 먹으면, 일주일 중 하루는 오천 원짜리 햄버거를 먹어 금액을 맞춰야만 하는 삶도 있다. 혼자 사는 내 저녁 식탁을 누군가가 볼까봐 두려웠던 적이 있다. 가난이 식탁에서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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