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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Mar 21. 2022

왜 반찬통이 두 개야?

엄마가 싸준 보따리를 풀었더니 반찬통이 두 개다

내 가방 속엔

반찬통이 왜 두 개지?


엄마가 전등 좀 갈아달라고 불러서 엄마 집에 갔다가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아직 6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전등을 가느라 낑낑대며 서있었더니 얼굴 위로, 등 뒤로 땀이 주룩 흘렀다. 엄마 집은 창문을 열어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만큼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엄마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이삿집을 구할 때면 에어컨이 없는 집은 아예 논외로 두고 쳐다보지도 않는데, 엄마 집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더워지는 여름.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날이 더우니 몸조심하고 잘 챙겨 먹어"라고 할 때마다, 그게 으레 안부인사인 줄 알았지, 엄마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서,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에어컨을 주문했다. 돈이 없어서 비싼 건 못하고, 안방에 달 수 있는 조그만 벽걸이 에어컨. 그 작은 것도 일시불은 부담스러워서 몇 개월 할부로 끊었다.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에어컨 설치 기사님은 예약이 꽉 차서 엄마는 한 달을 더 찜통 속에서 버텨야 했다.




7월 말. 에어컨을 설치하는 날이라 다시 엄마 집에 갔다. 에어컨을 다 설치하고 찬바람을 쌩쌩 맞으며 시원하게 밥을 먹었다. 날이 더워서 맨날 찬물에 밥을 말아먹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듣다가 이내 민망해져서 딴 얘기를 꺼냈다. "엄마, 이 젓갈 맛있다"라고 했더니(나는 젓갈을 많이 좋아하는 편)  엄마는 "그럼 좀 싸줄까?" 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내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이에 이미 엄마는 반찬통(사진에서 빨간 뚜껑)에 젓갈을 담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인가. 오래 방치해둔 김치에서 곰팡이가 핀 전적이 있는 나는) 너무 많이 싸주면 어차피 남아서 버려야 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젓갈은 오래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다고 기어코 한 통을 다 채웠다.




원래 덜어주는 거면

내가 많이 가지고

일부를 상대에게 나눠주는 게 아닌가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었더니 엄마가 싸준 보따리 안에 반찬통이 두 개다. 엄마가 주는 대로 받아서 봉지째 가방에 넣었는데, 집에 와보니 봉지가 하나 더 들어있는 거다. 전화를 해보니, 엄마가 모르고, 나한테 덜어주고 남은 반찬통까지 내 가방에 넣어버린 것이다. 아이고, 이렇게 정신이 없다면서. 근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원래 덜어주는 거면 내가 많이 가지고, 일부를 상대에게 나눠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엄마가 주는 반찬들은 늘 내 반찬통이 더 크고 엄마 집에 남는 반찬통이 더 작은 거지. 7월 한 달 동안은 퇴근하면 딴 데로 안 빠지고 집에 와서 꼬박꼬박 저녁을 먹어야지. 밥 지어서 냉장고에 많이 얼려두어야지. 상해서 버리게 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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