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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Sep 27. 2020

자칭꼰대교수와 특'별난' 제자들의 이야기 다섯.

"오늘은 네가 나 살렸다."

살다 보면 삶이 나한테 장난치는 것 같은 날 있잖아요. 안 좋은 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날. 하루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긴 상황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당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가고 있는데 집에서 약속 장소까지 가는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여자 친구와도 카카오톡으로 싸우게 되어 약속도 취소해버린 날이었죠.
 
저녁 시간에 갑자기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저는 마침 근처에 있던 PC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PC방에서 여자 친구와의 싸움을 이어서 하고 있었죠.
 
음, 돌이켜 보면 그냥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고, 당시 여자 친구와 다툰 것뿐이었는데 그 날은 개인적으로 꽤나 힘들게 느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제가 여자 친구의 말에 반박하는 걸 멈췄습니다. 수용하는 게 아니라 포기한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하면 안 되지만 "아, 살기 싫다."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저 말을 나지막하게 소리로 뱉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순간에 눈치 없게도 한 제자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교수님! 저 ㅇㅇ헤어 지원할 자소서 좀 봐주세욧!"하고 말이죠. 아니, 사실 눈치 없다는 말은 그 친구한테 너무 억울할 거예요. 강의 시간에 저는 "나를 이렇게 저렇게 최대한 많이 이용해요!"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자기는 자소서 좀 첨삭해달라고 한 건데. 그때 제가 그런 안 좋은 상황에 있었을 줄 그 친구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잘난 척이지만, 멀티 태스킹을 꽤나 잘하는 편인 저는 카카오톡으로 여자 친구와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줬습니다. 그 와중에 자소서 첨삭이라니...지금 돌이켜 봐도 스스로가 아주 조금은 대단한 것 같네요. 그렇게 자소서를 첨삭해서 보내주고 나니 제자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피드백 빨리 주셔서 감사합니당ㅎㅎ 교수님 같은 분 처음이에요ㅠㅠ 존경합니당"
 
제자의 메시지를 보고 저는 "존경이라는 거창한 단어 들을 사람은 아니고! 잘 되면 나중에 내 머리 예쁘게 한 번 해줘요ㅎㅎ!"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근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요. 제자의 그 메시지 하나를 보자마자 힘들었던 마음이 모두 녹아내리는 거 있죠? 그래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또 한 번 나지막이 소리를 내어 말했습니다.
"오늘은, 네가 나 살렸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에게 '존경한다'는 한 마디가 살고 싶게끔, 그것도 존경받을 수 있도록 '잘' 살고 싶게끔 만들어주니까요. 그런 좋은 말, 예쁜 말, 격려와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은 모두 누군가를 살릴 정도의 힘을 갖고 계신 겁니다.


그 엄청난 힘을 한 번 누군가에게 써봄으로써 오늘 하루 슈퍼히어로가 되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진심이 담긴 메시지 하나면 충분합니다. 다크나이트의 명대사처럼 'A hero can be anyone'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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