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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Nov 25. 2020

강의 시간에 바지 단추가 떨어지다...

자칭꼰대교수와 특'별난' 제자들의 이야기 여섯

"교수님, 죄송해요...단추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단추가 너무 강력해서 다른 기억을 다 쓸어가버렸어요..."
 
강의가 다 끝나고 제자들에게 "혹시 배웠던 내용 중에 가장 생각나는 게 뭐야?"라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게 배운 것 중에 어떤 내용들이 제자들 머리에 많이 남아있을지 기대하며 물었는데 대부분의 답이 '단추' 이야기라 김이 조금 새면서도 또 한 번 웃어버렸었네요.
 
때는 면접을 가르치던 날이었습니다. 면접장에 들어가서 어떤 자세로 앉아서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죠. 의자까지 하나 갖다 놓고 직접 앉았다 일어났다까지 하면서요.  
 
그렇게 강의를 하다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조용한 강의실에 '툭!'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밑을 봤더니 단추가 하나 떨어져 있었죠. "셔츠에서 떨어졌나?"하고 팔 소매를 보고, 상의 단추를 다 봤는데 모든 단추들이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한 친구가 슬그머니 손을 들더라고요.  
"교수님, 혹시 바지 단추는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혹시나 하고 밑에를 봤고 정말로 제 바지에는 단추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더라고요. 동시에 느슨해진 저의 아랫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제가 밑을 보는 순간 학생들의 고개도 다 같이 내려갔을까요...
 
하필 당시에는 남자들이 면바지에 벨트를 하지 않는 게 유행을 하고 있었기에 벨트로 그 상황을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바지를 핏하게 입는 편이기에 바지가 내려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죠. 쉬는 시간을 갖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괜찮은 척 이어서 수업을 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불안해해 주던(?!) 제자들의 시선을 느끼고 결국에는 바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움직이는 게 좀 걸렸지만 다행히 화장실이 제 강의실 바로 앞에 있었고 바지 안에 밑단을 넣어 입었던 셔츠를 꺼내보니 단추가 있던 부분을 충분히 가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태연하게 강의실에 들어갔죠.  
 
"교수님! 저 벨트 필요 없는데 드릴까요?!"
"야! 네 바지 벨트를 드리려고 하면 어떡해. 제 트렌치코트 벨트 드릴까요?!"
...등등, 제가 강의실에 돌아가자마자 제자들의 따듯한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요. 사실 강의시간에 강의하던 교수의 바지 단추가 툭 떨어져 버린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저는 별로 민망하지 않았습니다. 6주 정도 진행됐던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이 많이 편해졌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저를 여전히 좋아해 주고 따를 거라는 깊은 신뢰가 있었거든요.  
 
목욕을 같이 하면 친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그 이유는 상대의 벗은 모습, 즉 상대의 전부를 내가 봤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벗은 모습, 나의 전부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해요. 저의 단추가 떨어졌고, 그렇게 저는 더 이상 멋진 척할 수 없는 바지가 터져버린 교수가 되었지만요. 그런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 이후에 제가 학생들을 '제자들'이라 부르게 될 정도로,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따스하게 저를 찾아주는 친구들이 많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키는, 관계를 여는 열쇠는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나를 열어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멋지게 마무리해보고 싶지만 결국 제가 학생들 앞에서 바지 단추가 터져버린, 그리고 그 이후로 '단추 교수님'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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