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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Mar 12. 2022

"수고하세요" 한 마디의 힘.

 

“형, 나는 손님이 나가면서 ‘수고하세요.’라고 해주면 그 긴 야간 알바 시간 내내 되게 행복하다?”     


이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L에게서 나왔다는 게 너무나 의외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L은 가끔은 어둡다고 느낄 정도로 시크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까. 100kg이 넘는 거구인 L이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손님이 큰 의미 없이 던졌을 “수고하세요”라는 한 마디에 행복까지 느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하겠나.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도, 그 후에도 사실 나는 L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따듯하고 힘 나는 말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수고하세요’ 한 마디에 행복할 수 있는지. 물론 진심을 담아 그 말을 건네는 손님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습관적인 인사말을 건네는 것일 텐데. ‘마음이 짙게 담겨 있지 않은 말에 도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편의점을 갈 때마다 문득문득 들었다.      


그런데 비대면으로 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요즘, L의 마음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죠. 우리 다음 주에 봐요.”라고 강의를 마무리하면 줌 채팅창에 학생들이 쓰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어떤 친구들은 굳이 음소거를 해제한 후에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쳐주기도 한다.

      


그 인사말들에 정말 강의를 잘해준 나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는지, 그저 강의가 끝났다는 신남이든지, 그냥 끄기가 민망해서 괜스레 한 마디라도 남기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아니, 학생들의 마음이 무엇이었든 간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가득 찬 채팅창을 나는 한참을 응시한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그 순간을 누린다.      


별것 아닌 인사말이라고 생각한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에 내 노고가 싹 녹는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 또한 느끼며 다음 수업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다. 저 한 마디가 뭐라고 나에게 힘을 가득 채워 넣는다. 아니, 흘러넘치게까지 만든다.   

   

큰 마음이 안 담겨 있어도 괜찮다. 그저 가벼운 인사말이어도 된다. 우리가 살포시 건네는 “수고하세요.” 혹은 “수고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의 말들 자체가 누군가의 삶을 위로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고 더 잘 살 수 있게까지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쉽지 않은 이 삶들을 살아내고 있는 모두에게 나부터 건네본다. 


오늘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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