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운서 Aug 28. 2020

0. 들어가며


서른 살에 "교수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은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사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라는 하나의 꿈만을 품고 달려왔던 사람이에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방송학과 학생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신방과의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수업들을 훨씬 더 열심히 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또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제목에 '스피치'라는 세 글자만 들어 있어도 무조건 지갑을 열었습니다. 대학연합 스피치 학회 활동도 열심히 했고요. 뿐만 아니라 TV를 보다가도 누군가가 멋진 말, 센스 있는 말을 하면 바로 메모를 하는 습관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윗 두 문단은 열심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정독해주셨다면 물론 더욱 감사합니다.) 그저 저의 말솜씨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알아 달라는 작은 투정이니까요.
 
그 노력의 결과로 저는 결국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뤘습니다. 지역사 아나운서였지만 당당하게 한국아나운서연합회에 소속된 아나운서였고 요즘 세상에 되기 정말 힘들다는 정규직 아나운서였죠.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꿈꿔온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를 말하려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분량이 나올 것 같기에 여기에서는 그냥 '안광훈'이라는 사람이 아나운서를 꿈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고만 알아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딱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 저에게 국어를 배웠던 한 제자의 말이 컸습니다. "쌤, 방송도 잘하시지만 가르치시는 게 워낙 천부적이시잖아요." 결국 그 제자의 말처럼 가르치는 일이 저에게는 더 잘할 수 있는, 그리고 더 잘 맞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피치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제가 평생을 배우고 익혀온 노하우들을 나누는 삶을 선택한 것이죠. 적지 않은 공기관과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던 중 한 대학교에서 스피치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한 학기 동안 가르쳐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글의 첫 문단에 썼듯이 만 나이 서른에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듣게 된 거죠. '교수님'이라는 호칭 자체의 적정성이나, 저의 지위가 교수인가에 대한 적절성을 모두 떠나서 쉰 명이 넘는 학생들이 저를 '교수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져보고 싶기는 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구 가사처럼 "언젠가 먼 훗날에" 말이죠. 제가 사회에서 어느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중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때까지의 저의 삶과 경험, 지식들을 나누려고 했었습니다. 근데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어리다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버리다니요.  
 
 대학 강단에 서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은 제가 열 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게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최소한 그들의 비싼 등록금이 제 수업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까워지면 안 되니까요.  
 
‘스피치’ 과목이기에 당연히 말 잘하는 법을 알려줘야겠죠. 발표 불안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떤 스피치가 좋은 스피치인지, 내용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어떻게 좋은 목소리를 내고, 시선을 처리하고, 제스처를 쓸지.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나 토론, 면접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등을 말이죠. 이건 정말 잘 가르쳐줄 자신이 충분한 걸 넘어 넘치도록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만난 학생들은 전문대를 다니는 친구들이기에, 단지 고등학교 때 공부와 맞지 않았을 뿐이지만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는 그들을 다시 일으켜주고 싶었어요. 고작 십 년 정도밖에 더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청년의 시간을 먼저 보낸 선배로서 쉽지 않은 청춘이라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는 생각해 보니 결과론적 이야기인 것 같네요. 학생들이 수업 내내, 그리고 수업이 끝난 지금까지도 저에게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주기에 제가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걸 계획했다고 스스로도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제가 가졌던 목표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1.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해서 듣는 수업이 아니라 학교에서 시간표에 강제로(?!) 넣은 수업. 그런데 하필 월, 화 오전 1, 2교시에 시작하는 수업인 만큼 듣기에 지루하지 않은! 무조건 재미있는 수업을 하자.  
 
 2. 그래도 한 학기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피치를 배우게 되기에 이 수업이 끝났을 때 학생들이 간단한 발표든, 면접이든, 하다 못해 연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도 말솜씨가 조금이라도 늘게 하자.  
 
 지금 와서 보면 이 두 가지 목표는 감사하게도 잘 이룬 것 같습니다. 강의 만족도 평가에서 5점 만점에 '4.75'라는 점수를 제가 받았다는 것은 제 수업이 학생들이 듣기에 재밌었고, 또 그들의 말솜씨에 분명 도움이 됐다는 증거가 되어 주겠죠.   
 
 하지만 학생들이 제게 준 그 점수에는 단순히 '스피치 강의'와 '재미'에 대한 부분만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까의 결과론적 이야기. 결국 말과 인생은 뗄 수가 없기에 학생들의 말을 책임지게 된 저는 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30대 초반인 스스로에게 '꼰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저보다 나이가 위이신 분들이 보시기에는 어이가 없으시겠지만 저는 열 살 어린 학생들에게 꼰대로서 그들의 삶에 대해, '청년'이라는 이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이 스피치에 대한 가르침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저의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저의 지난 한 학기 동안의 강의가 들어가 있습니다. 더 넓게 봐서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아나운서로 살면서, 그 이후에 말을 가르치면서 제가 배우고 익혀온 '말'에 대한 저의 모든 배움과 익힘이 들어 있습니다.  
 
 단순한 '스피치 스킬'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의 이론부터 그 이론을 우리의 실생활과 각 스피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와 사례들이 기본을 이루고 있고요. 한 학기 동안 있었던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버라이어티했던 저와 특'별난' 제자들과의 에피소드들,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도 학생들이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는 저의 꼰대 같은 말들까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1분 1초도 빠짐없이 교수님 말들 다 잘 듣고 기억하고 싶어요."라던 저의 학생들을 위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말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은 모든 분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청년의 시간을 보내며 자존감까지 낮아져 버린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욕심을 조금 더 내본다면 저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칭 꼰대 교수인 저의 가르침을 통해 여러분들의 말이, 그리고 말과 뗄 수 없는 그 삶이 더욱 반짝반짝 빛나기를,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여러분이 저의 또 다른 제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를 시작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