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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Apr 09. 2024

14. 아버지와 세상 구경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아버지와 처음으로 부산에 갔다. 

농사일로 바쁜 여름에도 아버지는 시간을 찾아 자식에게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 주었다. 아버지는 쌀 두 가마니를 등에 지고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부산행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면서 맡은 자동차 매연 냄새가 그때는 왠지 참 좋았다. 지금도 차 매연이 그리 싫지 않은 것은 그때 그 아버지의 애잔한 삶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 같다.      


광안리에 사셨던 이모부 댁에서 밤늦게까지 아버지 무릎베개를 하고 웅크리고 잤던 기억이 난다. 가난하지만 뭔가 새로운 세상을 자식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눈치와 염치를 잠시 잊기로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나는 ‘동래 금강원’에 동물 구경을 갔다. 책에서만 보았던 코끼리와 호랑이 등 많은 동물을 본 것도 재미있었지만, 처음으로 바나나를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돗자리에 펼쳐진 까맣게 변색한 바나나 반 조각을 사서 아버지와 함께 나눠 먹었다. 

“세~상에 우째 이런 맛있는 과일이 다 있노!”

그 맛이 기가 막혔고 아버지의 그 말씀 영영 잊히지 않는다.      


그날은 조금 늦은 시간에 영도에 사시는 부산 삼촌 댁으로 갔다. 아버지는 온종일 어깨에 묶어 메고 다니셨던 하나 남은 쌀가마니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숙모님 앞에 내려놓았다. 산 중턱에 있는 막내 삼촌 댁은 아침에 2층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수평선과 큰 배들이 있었다. 삼촌의 근무처인 조선소도 이국적이고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 사촌들은 방학만 되면 다투어 막냇삼촌이 사시는 부산 영도에 놀러 가곤 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 당시 숙모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온종일 우리를 태종대 등 부산 구경시키느라고 데리고 다녔던 사촌 동생들에게도 감사할 기회를 찾아야겠다. 이제는 모두 떠난 부산 영도이지만 내게 큰 세상을 보여 준, 오래전 삼촌 사시던 집을 꼭 한번 가봐야겠다.      


2002년 나는 15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했다. 아버지가 내게 보여 준 그 넓은 부산이라는 신세계를 아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이었던 두 아들의 학업을 잠시 중단시켰다. 퇴직금을 받아 장인어른의 평생 꿈이었던 차를 사 드리고, 남은 돈으로 저렴한 숙박을 찾아가며 전체 여행 경비로 충당했다.      


장기 여행을 위한 물품은 각자가 스스로 여행 정보를 공부해서 목록을 작성하고 무게에 따라 배정된 책임량을 배낭에 넣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아이는 양말과 내의 등 가벼운 짐을 키만 한 배낭에 넣었다. 큰아들은 아이가 입맛을 잃거나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으로 몇 상자의 컵라면을 해체하여, 라면과 컵, 스프 등 각각의 묶음으로 부피를 최소로 줄이고 비상약과 세면도구 등으로 짐을 꾸렸다. 나머지 무거운 짐들은 내 배낭에 넣고 아내는 항공권과 현금, 그리고 여행 예약 정보와 필요한 책자 등 현장에서 관광과 교통 정보와 관련된 비교적 간편한 것들로 배분했다.      


출국 당일 새벽, 설렘으로 막상 집을 나섰지만, 택시가 없어 한참을 걸어서 둔촌 아파트를 빠져나와 동북고등학교 앞에서 기다렸다.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아 불안했지만, 다행히 잠실사거리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준비하고 대비한 대로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시베리아와 유럽을 가로질러 날았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가 멀어 긴 시간을 후덥지근한 런던의 지하철 ‘튜브’를 타고 그리니치역에 내려 부근 민박집에서 잠을 잤다. 도미토리 2층 침대여서인지 아침에 찬 기운이 느껴져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꼭 감싸 안았다. 햇살이 창문으로 비친다. 문틈으로 살짝 열어 밖을 보니 아이들이 오가며 놀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서로 똘똘 뭉쳐서 마치 다른 행성에 도착한 우주 여행자와 같이 새로운 공기를 함께 느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앞으로 펼쳐질 멋진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 여행은 이런 거구나.”     


그날부터 시작된 여행은 좌충우돌 많은 일이 있었다. 대체로 유럽의 부강한 나라에서는 거지처럼 배낭여행을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꽤 괜찮은 호텔에서 온종일 머무르면서 욕조에서 목욕도 하며 게으른 하루를 보내며 여행 스트레스를 풀었다. 오후에는 근처 재래시장에 들러 맛있는 음식도 사 먹으면서 지내는 방식으로 어린아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뮌헨역에서 호객꾼에게 속아 그 먼 거리에 있는 로젠하임 스키 리조트에서 무더운 여름날의 숙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 중 그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과 우연이 있어 흥미가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비가 쏟아지는 늦은 시간, 어두운 밤거리를 오가며 숙소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여정으로 뉴질랜드 남섬 더니든에서 머물며 우리 가족의 배낭여행은 끝이 났다.      


귀국해서 큰아들은 6학년 진학이 불가하다는 학교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한 나라별 여행 기행문을 작성하고 가족과의 충분한 배움의 시간을 설명하여 다행히 6학년으로 복학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기행문이 또 다른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어 책장에 꽂혀 있다. 아이들은 세계여행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특히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과 글로벌 에티켓도 배우는 등 다양한 세계의 경험을 통해 인생을 멀리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여러 나라의 환경, 역사와 문화를 체험했던 것도 좋았지만 우리 가족이 하루에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24시간 모든 것을 함께했다는 그것이 가장 좋았다. 

    

“여행의 유익함은 타향에 대한 지식과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브하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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