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HN SIHYO Jul 12. 2016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서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처음이었습니다. 

이토록 따뜻하고 뭉클한 맛은




2015년 가을의 어느 토요일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고백하고 

인천에 있는 네스트 호텔 1주년 행사로 상영하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중간부터 봐서 언젠가 다시 봐야겠다 했고

최근에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영화 리뷰입니다.

주의: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스틸 컷은 시네큐브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문제가 생길 시 사진은 지우겠습니다.




팥알 하나하나를 소중히 대하는 자세가 만들어낸 깊은 단맛!

팥이 만들어 주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좋은 영화입니다.

팥, 저는 단팥빵 하고 단팥이 많이 들어간 아띠제의 팥빙수,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단팥죽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 영화 보는 내내 도라야키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

밤새 불려 색이 배어 나온 팥을 한 번 삶고 체에 걸러 찬물로 헹군다.

제대로 씻지 않으면 떫은맛이 난다.

물에 불린 팥을 김이 날 때까지 끓여 뜸을 들인다.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밭에서 힘들게 와준 팥들을 극진히 모신다.

연자줏빛으로 익은 팥들을 으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떫은 물을 흘려보내는 일도 천천히 흐르는 물에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팥에 설탕을 넣고 나서는 2시간 동안 기다린다.

팥이 당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과 친해진 팥이 또 한소끔 끓기 시작하면 

이제부터는 불을 조절해가며 뭉근히 달이는 느낌으로 주걱을 꼿꼿이 세우고 저어야 한다.

이렇게 탄생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소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



일본의 전통 간식인 도라야키는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듭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시중에 팔고 있는 팥으로 만든 도라야키를 파는 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작은 가게의 주인 센타로에게 50년 넘게 팥을 만들어왔다는 할머니가 구인 광고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계속 거절하던 센타로가 우연히 도쿠에 할머니가 직 담은 팥소를 먹어보고 반해서 할머니에게 일을 하라고 합니다.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단팥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는 도쿠에,

'마음을 담는다'는 도쿠에의 팥소에 반한 손님들 덕분에 가게는 계속 인기를 얻게 되죠.


도쿠에 할머니를 받아준 센타로와

매일 도라야키 가게에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와카나는 조금씩 도쿠에 할머니와 가까워졌어요.


도쿠에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영화 속에서도 그리고 보고 있는 제게도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갖게 만들어 줍니다.


도쿠에의 단팥을 바라보는 깊은 눈빛, 그리고 나이가 만들어주는 포근함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음식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할머니.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단팥을 만들면서 팥에 귀를 기울이고

"수고했다.", "힘내라"고 팥에게 말을 걸어요.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우리 할머니께서는 요리를 할 때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며 보니까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사람은 세상을 보고, 들으려고 태어났어. 사람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조용했고 힘들어서 궂은 인상이던 센타로는 팥소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도쿠에 할머니와 가까워지고 주변을 바라보게 되면서 느릿느릿했던 삶의 속도를 다시 찾게 되고 밝아지게 돼요. 


하지만 단골 소녀인 와카나가 실수로 도쿠에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고,

손님들이 줄어들게 되죠.

생각하지 못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게 돼요.



순간의 실수로 감옥에 가야 했던 센타로,

자기는 원치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세상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도쿠에,

외롭고 가난하다는 것을 껴안고 사는 와카나,

이 세 사람의 사연은 도라야키를 가운데 두고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조금 부족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팔기 어려운 도라야키와 닮았죠.


도쿠에를 연기한 분은 오래전에 유방암을 투병을 했다고 해요.

한센병을 앓고 있는 도쿠에에게 배우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기 때문에 원치 않게 세상과 분리되면서 꿈을 잃고 있었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도쿠에에 푹 빠지게 만든 것 같아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도라야키라는 소박한 소재를 통해 조금 불편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풀어내는 영화예요.


먹음직스러운 단판을 만드는 과정,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만 곧 예쁜 꽃잎을 흩뿌리면서 지는 벚꽃과 같은 감각적인 영상은 영화를 더 섬세하고 진정성을 갖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감독인 가와세 나오미는 계속 나라현에서 작업을 하다가 처음으로 도쿄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는 많이 보지 못했지만

제 기억에는 우리 주변에서 각자 다른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 마음을 깊게 따뜻하게 바라보는 감독이에요.

흩날리는 벚꽃과 햇빛으로 아름다운 풍경도 담아냈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았다.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매개체이지만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존재하도록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말했더라고요.

"살아가다 보면 후회와 절망이 가득 차 항복하고 싶어 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희망에 의지하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져가야 한다”는 감독 가와세 나오미, 그녀는 단팥처럼 포근한 도쿠에와 그녀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치유의 영화로 불리는 감독이 그동안 만든 영화의 특유함을 이어가는 것 같아요.


'단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도쿠에 대사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도쿠에, 센타로, 와카나가 각자 갖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서로를 통해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이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줍니다.



“팥을 왜 그렇게 유심히 보세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야.”

삶이 조금만 더 달았으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라야키 한 입에 담긴 가슴 뛰는 위로

언젠가 한 번, 꼭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세요.


12.07.2016

작가의 이전글 나를 바라보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