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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Apr 20. 2018

한참 늦은 '82년생 김지영' 독후감

내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나의 멘토 언니에게 페이퍼를 하사받은 기념으로, 그 유명하다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공감과 울분과 흥분의 격한 감정으로, 아이를 재우고 2시간동안 엄청난 에너지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1번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뒷번호 아이들은 늘 밥을 빨리 먹지 못해서 체할듯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밥먹는 시간이 스트레스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자들은 1번부터 순서가 정해지고, 남자들의 순번이 끝나고 나서야 여자 순번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진짜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60명 정도 있던 반에서 44번 정도였던 것 같다.

웃기게도, 그시절 나는 남자애들은1번부터 자리를 꽤차고 여자는 그 다음부터 순번이 시작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아이들에게 순번을 매기는지도 모르겠다. 이름 외우는게 귀찮아서 번호를 부르다니 정말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어쨌든, "여자가..." 라는 말만 나와도 욱해서 소리치는 나도, 누군가가 만든 통제하기 쉬운 편리한 시스템 안에서 그저 그렇게 살아온 것을 인정해야 했다.


요새 나는, '삶의 절실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돌이켜보건데, 나는 거의 32년 동안의 나의 인생을 절실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여러가지 일이 있던, 고작 1년이 될까 말까한 최근에서야 내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것 같다. 


온전히 내것인 인생인데, '절실하게' 산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았던 것 같다. 흘러가는대로 살아도 꽤 괜찮게 살았다. 학창시절동안에는 시험점수를 잘 받으면 된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 달성하면 사실 사는건 쉬웠다. 대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생활을 할 때도, 팀장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됐다. '주어진' 목표를 '열심히' 달성하면 됐다. 물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달성되면 됐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나더러 인생 참 편하게 산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죽기 살기로 살아봤자, 힘만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왜냐면, 나에게는 남편이라는 고정적 수입이 있는 안전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긴 했어도, 내마음 저 구석에서 가장 큰소리로 외치던 마음은, '어짜피 애기 낳을건데, 뭐 이렇게 빡세게 일해. 애기 낳고, 공부좀 하다가 다른거 하지, 뭐.' 였다. 


'여자'로서의 굴레를 씌우는 삶이 가장 무서운 것은, 인생의 주체성이 사라진다는데 있다.

나도 모르게, '엄마'로, '아내'로의 인생을 내 인생의 어떤 종착지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을 끈임없이 부인하던 부류의 사람이었지만, 인생의 절실함이 없었던지라, 비록 그것이 내 일이어도 가슴아프게 힘든일과 어려운 일들은 보통 남에게 맡겼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회사에서는 팀장에게, 결혼하고서는 남편에게. 죽을것처럼 힘든일들은 주로 남에게 패를 던졌다. 나는 쏙 빠졌다. 그게 편했으니까. 내 인생인데,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남이 해냈다.

  

자기 밥벌이를 해내는 것.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내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 나간다는 것. 무슨 일이든지 온전히 '내'일이라고 여기고 부딪혀서 이겨낸다는 것. 나는 그 마음가짐이 절실함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는 '가장의 무게'는 무거운 반면, '내'가정을 지켜낸다는 것, '내새끼' 먹일 것을 챙겨야한다는 그 절실함이 있다. 다, 내가 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안하면 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사회에서 남자로서 살아가는 가장 큰 복은, 인생의 절실함을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끈임없이 학습하며 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딸에게는 꼭 가르쳐주고 싶다.

너는 너의 인생의 가장이 되라고.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고민과 고통, 시련은 누구의 손이 아닌, 꼭 네 힘으로 네 손으로 네 몸으로 감내하고 이겨내라고.


엄마가 그렇게 살아낼테니 끝까지 지켜보라고.

그리고 너도 네 인생을 절실하게 살아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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