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열린 마음의 방

by 아름나무



변화무쌍한 배터시는 뜨는 동네답게 늘 소란스러웠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와 버스들, 유난히 귀를 찌르는 구급차와 경찰차의 소음. 소리에 예민한 나는 길을 걷다가도 그 소리에 놀라 귀를 막곤 했다.


하지만 공원은 달랐다. 입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번에 감각은 편안해졌다. 키가 큰 나무들이 도시 소음을 막아 주고, 사근사근한 새소리는 오히려 예민해진 청각을 어루만져 주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는 어쩜 이리도 거슬리지 않는지. 하-아, 명치에 얹혀있던 숨은 그제야 뱃속까지 내려갔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를 맞는다. 그 일은 어쩌면 지금껏 공들여 쌓아 온 세계가 어느 정도 무너지는 일이어서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늘이 인생을 좀 더 자기 자신답게, 아름답게 살아보라고 건네는 선물이자 시작점이기도 하다.


내게는 서른 즈음에 그 시간이 찾아왔다. 우연히 받게 된 상담이 그 시작이었다. 상담이 끝날 때마다 자꾸만 나던 눈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던 분노. 사과를 받지 못한 마음. 절망과 무너짐. 슬픔. 참는 게 익숙했던 내가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고 나니, 흘려보내지 못한 아픈 감정들이 눈물로, 통증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 상태로 런던에 다시 온 것이었다.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나를 사랑해 보겠다고 다짐을 해봐도 저항은 거셌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곳으로 들어가는 건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마음속 어느 방문을 여는 일과도 같았다. 빛이 열린 문 틈 사이로 들어오면 그동안 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초라한 것들이. 나를 미워하는 마음, 질투,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과한 자의식, 자라지 못한 마음. 지금껏 내 안에서 뾰족한 막대기를 들고 쿡쿡 쑤시며 나를 들들 볶았던 그 여자는 그 방 안에서도 기어코 나를 찔러댔다. 이거 어쩔 셈이야? 뭐가 이렇게 어지럽니?


나는 그 어지러운 방을 그대로 둔 채,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괴로운 채로. 공원은 아무 말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매일 그 보기 싫은 방의 문을 내가 열 수 있도록 손 내밀어주었다.




말 없고 듬직한 나무는 우리가 가진 괴로움을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외로움, 슬픔, 고통으로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중략) 도시는 복닥거리고 우리 정신도 복닥거린다. 하지만 공원에 가면 정신적 공간에 대한 감각이 넓어진다. 그러면 한 발 물러서서 좀 더 명확히 생각하게 되고, 전보다 자유로워진다.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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