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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Sep 17. 2020

우당탕탕 라구 소스 만들기 2

나폴리에 온 것 같아 ~


1.

다음날, 일과를 마치고 동생과 마트에 갔다. 동생과 나는 팀이 되어 식재료 리스트를 한 줄씩 빨리 긋기로 했다. 아 그런데 웬걸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야 샐러리가 어딨지? 샐러리가 안 보여."

"언니 다진 소고기 한우여서 너무 비싼데? 정육점에 수입육이 있겠지? 일단 가봐야겠다."

"아니... 파마산 치즈는 어딨는 거야 왜 없는 거야."



구석에 있는 샐러리는 겨우 찾았고, 고기는 정육점에 가보기로 결정했으며, 파마산 치즈는... 일단 넘겼다.

넓디넓은 식자재층을 돌고 돈 후, 지친 기색으로 마트에 나온 우리 둘. 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을 크게 벌렸군 크게 벌렸어."


다행히 우리나라는 참 편리한 나라 아닌가. 다음날 아침에 배송이 오는 인터넷 주문으로 파마산 치즈도 결국 구입 성공! 집으로 돌아와 구매한 재료들을 다 펼쳐놓고 잠시 한숨 돌렸다.


자 이제 라구 소스를 만들자.



2.

사실 라구 소스 레시피는 간단했다. 번거로운 거라면 필요한 야채들을 다 잘게 썰어서 준비해야 하는 정도? 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준비한 다진 고기와 야채들을 넣고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넣어서 뭉근하게 2시간 이상 끓이면 끝이다. 그런데 왜 힘들었지? 그렇게 힘들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 일단 레드와인 반 잔 넣기 위해서 집에 장식처럼 있던 와인을 따야 했다. 아 그런데 와인따개로 코르크를 꺼내는 건 왜 이렇게 쉽지 않은지. 손이 둔한 내가 끙끙대자 동생은 한숨 한번 쉬고는 자기가 한다며 와인을 가져갔다. 다행히 성공. 그리고 또 하필 정육점 아저씨가 월계수 잎을 깜빡하고 안 주신 게 아닌가. 한숨 한번 더 쉬고 정육점 다시 가서 월계수 잎 다시 가져오기.


어쨌든 우리 자매 결국 라구 소스 만들기 성공.




소스가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지는 동안 나는 뿌듯한 마음에 자꾸만 들여다보고 다시 또 젓기도 하고 그랬다. 다음날 볼로네제 만들어 먹을 생각에 또 신나며.



3.

라구 소스 만든 다음 날. 요즘 우리 가족 점심은 주로 나, 동생,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한다.

"오늘 점심은 파스타입니다."


만들어둔 소스를 다시 뭉근하게 끓이고 냄비에 물을 넣고 소금 넣어 면 넣을 준비를 했다. 동생은 왠지 나보다 더 신나 보였다. 라구 소스 미리 만들어두니 볼로네제 만드는 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소스를 볶다가 면수를 넣고 면을 넣어 버무리듯 비비고 후추와 파마산 치즈 잔~뜩 뿌려주면 끝!



완성된 볼로네제를 그릇에 담아 아버지 먼저 드리고 동생에게 주었다. 만든 파스타는 다행히 맛있었다.


"이게 영국 음식인 거야?"

"아니 이거 이탈리아 음식이야 아빠 ~ "

"아빠 이탈리아 음식 처음 먹어봐."


나는 멈칫했다.


아버지는 맛있게 한 그릇 다 드시고는 이렇게 말하셨다.


"나폴리에 온 것 같아 ~ 딸."



4.

런던에 있을 때, 저렴한 비행기 값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를 옆동네 가듯 여행 가던 게 참 좋았다. 한국에선 유럽을 가는 것 자체가 최소 몇 백만 원으로 생각했는데 런던에서는 다른 이야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가방 하나 메고 잠시 2박 3일 정도 다른 나라를 갈 수 있으니.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었다. 다음 휴가는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구글맵을 열고는 옆 동네 다른 나라의 어느 소도시를 검색해보는 게 취미일 정도였다.


프랑스의 릴을 가볼까.

오스트리아의 첼암제를 가볼까.

아니면 피자 먹으러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가볼까.

아, 볼로네제의 본향이 볼로냐지? 거기를 가볼까.


참 좋은 경험을 했던 것이다. 단순히 볼로네제를 먹으러 볼로냐를 갈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언니 이 소스 이름이 뭐라고?"

"라구 소스. Ragu source."


아버지는 물론 내 동생도 생소한 건 마찬가지였다. 라구 소스며 볼로네제며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이며. (물론 그들은 너무나 한식파라 관심이 없던 것도 있었다.)


"너무 맛있었어~ 딸."

"언니 맛있다 이거."


귀국을 한 후 오랜만에 집에서 가족과 부대끼며 살면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 제일 컸던 건 집밥이었다. 그 어릴 땐 어떻게 먹었나 싶을 정도로 훌쩍 커버린 나는 식습관이 가족과 맞지 않는다. 투덜투덜. 왜 이렇게 짜게 먹는 거야. 왜 야채는 없는 거야. 왜 맨날 빨간 반찬이야. 투덜대는 목소리가 커질 무렵, 나는 단순히 내가 볼로네제가 먹고 싶어서 만든 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두 사람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는 파스타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 번도 제대로 맛보신 적이 없다는 걸, 동생은 그저 언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행복하게 여긴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나 혼자만 좋은 걸 경험했던 게 아닌지. 왜 나의 가족에게는 나누려고 하지 않았는지. 나폴리에 온 것 같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그에게 내가 맛본 맛있는 음식을 가능한 더 해드리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나의 동생에게도 자주 이 행복의 시간을 선물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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