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청춘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루종일 잤어. 어지러웠지. 둔탁한 통증이 머리를 짓누르고. 영원히 잘 수 있을 것 같았어.
영원히 잠든다면 죽음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걸까.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영원히 잠들고 싶어서 꿈에 파고들었어. 세상에서 가장 푹신하고 달콤한… 머리가 찌잉 하고 울렸어. 집은 자꾸 더러워져.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인간은 살면서 주위를 자꾸만 더럽히고 있는 걸까. 사람이 살아가려면 쓰레기를 필수적으로 내어 놓아야 하나 봐. 나는 통 쓰레기만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쓰레기를 만들었으면 쓰레기를 먹고 살아야지. 쓰레기장에서 살면 쓰레기를 먹게 되는 것 아니겠어. 당연한 이치야. 오늘도 살고 싶어서 발버둥쳤는데 딱히 달라진 건 없고 이런 인생이 흔한 건가 싶어.
이십대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지. 누군가 나에게 청춘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울어버릴 거야. 이런 게 청춘이라면 앞으로 남겨진 나의 시간은 얼마나 더 비참할 것인가 묻고 싶어. 지금이 가장 찬란하고 밝은 때라면 그렇다면 가장 높이 올라온 순간이라면, 앞으로 내려갈 일밖에 없는 거라면 그렇다면. 나의 이십대는 청춘이 아니야. 나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이 행복해지고 싶어. 더 이상 청춘은 없다. 아무도 청춘을 살고 있지 않다. 이 비참한 시간들을 추억하면 젊은 날의 고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픔을 딛고 성장하려면 다음 발판이 보여야 하는데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징검다리도 아니고 계단도 아니야. 까마득한 절벽의 외나무다리. 비틀비틀 걷고 있어. 아슬아슬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중이야. 떨어지면 차라리 편할 거야. 떨어지기 직전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어. 언제 떨어질까. 언제 떨어질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 걷는 것도 아니고 기어가고 있어. 저 편이 한없이 멀어. 기어가느라 손이 아프고 무릎이 다 까졌다. 핏방울이 맺혀서 혀로 핥았다. 비리고 쓰다. 까슬한 나무 가시들이 손바닥에 박힌다. 아프다고 말하면 메아리가 친다. 나도, 나도, 나도……. 우린 다 아프지. 그래. 다 아픈데 나만 아픈 게 아닌데. 모두 외나무다리를 비척비척 기어가고 있다.
이런데 어떻게 남을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겠어요? 네 발로 기어가기에도 바쁩니다.
조악한 문장들만 쏟아내는 것은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오래 말하기가 어려워요.
비참함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고 이렇게 슬픈 내용만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눈물이라도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누군가를 안아 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지만 내가 나에게조차 힘이 되지 못하는데 내가 나를 의지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지탱한단 말입니까. 나는 썩은 나무예요.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바사삭 부스러지죠. 다른 사람도 다들 이렇게 살고 있나요? 다른 사람도 다들 이렇게 살고 있겠죠? 서로가 서로를 만져주기가 겁이 나는 세상입니다. 내가 손을 대면 톡 부러질 것 같은 사람들. 우리는 서로를 안아 줄 수가 없어요.
바람이 불면 쉬이 꺾이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종일 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푹신하고 아늑한 이불 속에서… 평생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거든요. 이렇게 누워 있으면… 그런데 왜 저는 자꾸 악몽을 꾸는 걸까요? 잠들면 비참한 꿈들이 나를 괴롭힙니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움켜잡습니다.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이렇게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어요. 그… 짓누르는 두통 말이에요. 과즙기 같은 것에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방으로 둥글게 아프거든요.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정신과? 내과? 신경의학과? 수면 장애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달고 사는 병이지요.
악몽에도 질병의 이름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신경성-정신-불안-환각-어쩌구.
그런 질병에 어울리는 약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어떤 약이 가장 잘 들을까요? 각성제. 수면제. 환각제. 아! 환각제는 안 되겠군요. 더한 악몽을 꿀 거예요. 길 위를 걷는 코끼리를 보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꿈 속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는 게 나을까요? 저는 강력히 전자라고 생각합니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게 낫나요?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게 낫나요? 당연히 전자겠지요. 베란다에서 떨어지면 누군가 구해줄 수도 있고 온전히 죽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외나무다리를 건너가야 해요. 버석버석 썩은 나무통을 밟으면서 균형을 아슬히 잡아야 합니다. 가운데 허리가 뚝 부러지는 거예요.
너무 자면 허리가 아프더라.
그러니까 허리가 아픈 거예요. 부러졌으니까. 썩었으니까. 죽기 위해서는 추락이 필수입니다. 추락하는 연습을 해 두지 않겠어요? 삼, 이, 일. 번지. 허리가 아파서 줄을 매다는 것은 생략했습니다. 내 목에 걸어주세요. 다시. 삼. 이. 일. 내 문장은 허리가 부러졌어요. 완전히 반토막이 났죠. 새빨간 펜으로 수정 표시가 붙어 있어요. 고쳐 주세요. 어떻게 고치시겠어요?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냔 말이에요. 고치면 나아지나요? 나아지긴 하나요? 나아진 다음에는 살 수 있나요? 살고 나면 존재할 수 있나요? 우리는 삶과 존재를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존재는 무엇이고 삶은 무엇이죠? 그저 살아 있기 위해서 꼭 존재해야 할까요? 존재하기 위해서 꼭 살아 있어야 할까요? 알 수 없죠. 알 수 없어요. 저는 살고 싶은데, 존재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니, 반대입니다.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존재하고 싶어요. 저는 존재하는 인간이 되고 싶단 말입니다.
문장으로라도 존재하고 싶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