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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Mar 21. 2017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당신에게

우리가 우리를 돌보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동시에 매우 급한 일인거죠.


얼마 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응급실에 가보신 적 있나요? 아마도 티비에서나 보셨을 테죠.

제가 응급실에 도착한 건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습니다. 늦은 밤의 응급실은 뭐랄까, 싸늘한 분주함이 가득했습니다. 술에 취해 싸웠다는 누군가는 옷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요. 낮빛이 새카맣게 변하신 할아버지는 나이 때문인지, 통증 때문인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셨습니다. 급히 달려온 나이든 자식들이 할아버지 곁에 둘러 앉았죠. 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 분은 갑자기 폐에 이상이 생겼다며 중환자실로 실려갔습니다. 

그사이, 저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검사를 당했(!)습니다. 이 검사가 뭘 위한 건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도 모른 채 말 그대로 '당하기'만 했죠. 생각보다 괴로운 검사들을 예닐곱개 마치고 나니 새벽 세시가 훌쩍 넘었더군요. 제 복통은 장 내에 출혈이 생기면서 일어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입원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고작 4일이긴 했지만요. 갑자기 실려온 터라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저는, 링겔을 주렁주렁 매달고 하염없이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죠. 온갖 생각들이 병실 안 제 침대 위를 들락거렸습니다. 처음에는 자책감이 생겼습니다. 내출혈이 생길 때까지 속이 상해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건강에 안 좋은 짓만 골라 했거든요. 아침에 빈속에 아이스 커피 마시기, 점심은 바쁘니까 건너뛰거나 샌드위치로 때우기, 저녁엔 하루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맥주 혹은 와인 마시기, 주말엔 친구들과 폭음하기, 이유없이 식이조절 다이어트 시도했다 실패하기 등등. 

사실, 따지고 보면 저말고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별 생각없이 반복적으로 해온 일 아닌가요? 현대 사회에 살다보면, 바쁘게 일하다보면 나를 돌보는 일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응급실에 실려와 강제 입원을 하고 나서야 깨닫는 겁니다. '왜 이제까지 나를 돌보지 않았지?'

우리 삶에는 여러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이걸 단순하게 나누자면 두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죠. 첫째, 중요한 일인가. 둘째, 급한 일인가. 우리는 중요하고 급한 일을 항상 우선 순위에 둡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요? 중요하지 않고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중에 뭘 더 우선으로 생각하나요?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무조건 '급한 일'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건강, 스트레스 없는 휴식, 가족과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 이런 것들은 늘 급하지 않다고 미뤄뒀죠. 시간은 많다면서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병실에 누워서 제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옆자리 침대에는 60대 중반쯤 되는 여성 분이 입원해 계셨습니다. 통증이 심하신지 하루 종일, 심지어 새벽녘에도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원래 명민하셨던 분인지, 아픈 와중에도 간호사들이나 옆 자리의 저에게 실수하지 않으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눈물났습니다. 

나의 30년 후가 저 분과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남은 입원 기간 동안 제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를 통과하고 있고, 언젠가는 제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목표들을 영영 손에 쥘 수 없는 날이 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돌보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동시에 매우 급한 일인거죠. 그 목표에 인생 1순위 자리를 내어주세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미온의 행복이 일상에 천천히 들어차는 기분이 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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