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아론 Aug 14. 2018

나는 나 자신도 아끼고 싶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요?


올 여름의 초입에 사나운 비가 며칠이고 이어졌던 때가 있었다. 나는 비를 무척 싫어해서 비가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기분이 엉망이 되는 사람이라, 그 날들이 유난히 버거웠다. 나자신을 버려두지 않겠다고, 잘 돌보겠다고, 밤마다 일기장에 꾹꾹 눌러썼지만 아침이 되면 다 소용없었다. 볕이 들지 않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빗소리로 매일 잠을 깼다. 일어나서 씻어야 된다는 걸 아는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몇시간이고 이불 속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냈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대체 비가 뭐라고, 이 습기가 뭐라고, 이 어둠이 뭐라고. 단지 날씨일 뿐인데. 이깟 사소한 것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나약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 앓으며 보내던 어느날, SNS에서 어떤 문장을 마주쳤다. 

[우울증을 앓는 분들!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비가 오면 몹시 우울해지기 때문에 내일부터 당분간 심하게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모든 증상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날씨 탓이니 잘 버티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여주세요.]


순간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는 것을 참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잘못된 게 아니구나. 안심이 되고 기뻤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을 본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감사하다는 말, 다 같이 힘내보자는 응원의 말, 쉽게 나아질 순 없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믿으며 힘내겠다는 말.... 나만큼이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주위를 돌아보면 내가 ‘비오는 날씨’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계절의 변화(예컨대 봄이나 가을을 타는 사람들)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혹은 잠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남들보다 힘들어하거나, 잠시의 허기에도 마음이 날카로워지는 경우도 보았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유독 괴로운 말, 진저리 처지는 장소, 마음이 자주 망가지는 시간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는 괜찮은데 나에게만 취약한 어떤 지점이 있을 때, 그 부분을 보호해주고 달래주고 응원해주며 조금이라도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히 반대로 행동한다. 자신을 책망하고 구박하고 외면한다. 왜 이렇게 나약한 거야. 아직도 이딴 것에 휘둘리니? 그리고 타인에게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주로 ‘나만’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설명해도 이해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고립되는 건 나 뿐인데도. 


그래서 나는 내 가족, 친구, 주변의 아끼는 사람들에게 “비오는 날이 너무 힘들다”고 노출하기 시작했다. 실은 엄마에게 몇년 전부터 이미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비오는 날마다 내게 전화해 기분이 괜찮은지 물어봐주었다. 그 따뜻한 경험이 나에게 자신감을 줬달까. 물론 무시하거나 나를 ‘까탈스러운 애’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올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다운 되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곤 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 일찍 자, 내일은 날씨가 맑대, 하고 다독여주는 사람. 창문 다 닫고 빗소리가 안 들리게 하고 봐, 하며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는 사람. 대뜸 좋아하는 음악이라며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는 사람. 비오는데, 괜찮아? 하고 물어봐주는 사람....


만약 ‘비오는 날에 유난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사람’이 내 가족이였다면, 친구였다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했던 것처럼 모질게 굴었을까? 아니였겠지. 괜찮은지 물어보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알려주고, 다정한 말로 응원해줬겠지. 그들을 아끼는 만큼 나 자신도 아끼고 싶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만 알고 타인은 모르는 크고 작은 약점들이 계속 생겨날 텐데. 그 때마다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날들 하나 하나가 차곡히 쌓이면, 나는 이 삶을 무사히 버텨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작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h.ro_


일러스트 출처 https://goo.gl/Wi58Dj

Designed by Freepik

이전 10화 ‘미래의 나’에게 보내두는, 셀프 토닥토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