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거닐며 만나는 새 관찰기
우리 동네에는 수명산이라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이 학교를 뒷배(?)로 하고 있는 학교였다. 학교 다니고, 한창 정신없이 일하던 사회 초년생 때까지는 이 작은 숲에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꼭 숲을 가곤 하는데, 나는 숲이냐 바다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언제나 나무가 있는 숲(이나 산)을 고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코 앞에 있는 수명산에 갈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다가 7~8년 전 즈음에 문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추운 겨울에 엄마와 함께 가보았다.
온통 세피아톤의 겨울 숲은 황량하다.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안에 여전히 생명이 있고 느리게 변하는 계절이 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나 조금씩 연두잎으로 차오르는 봄 무렵이 되면 벅차오르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다.
토요일마다 숲에 갔다. 매번 똑같은 코스로 걸었지만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마침내 초록으로 가득 찬 숲을 거닐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량한 새소리를 듣는데 '이 새소리가 무슨 새인지 알고 싶다!'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다양한 새들이 이 숲에 있을 텐데, 내가 구분할 수 있는 새는 까치와 참새 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이 들 무렵, '새덕후'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어 거의 모든 영상을 보았으며 쌍안경을 구매하고 새 도감을 구매했다. 뭐든 책으로 준비해 두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머리맡 책장에 도감을 두고 자기 전 산새 페이지를 가끔씩 읽곤 했다. 관찰빈도가 '흔함' 혹은 '아주 흔함'인 것 위주로 찾아보았다. 우리 동네 작은 숲에 아주 희귀한 새가 살 것 같지는 않으므로 자주 관찰되는 새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했다.
쌍안경을 들고 첫 탐조(라고 부르기 민망한 쪼랩 새 관찰)를 한 날, 쌍안경으로 직박구리를 보고 호들갑을 떨던 기억이 난다. 직박구리는 숲에도, 주택가에도 흔한 새라는 걸 몰랐으니 당연했다. 유튜브 및 도감 독학으로 조금씩 정보를 채우고 숲으로 매주 나가며 새를 보았다.
타고나길 내향형으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크게 즐기진 않는 나지만, 용기 내서 탐조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다. 역시 전문적으로 새를 관찰하는 탐조인들은 장비도, 새에 대한 지식도 너무나 뛰어났다. 그 옆에 쫄래쫄래 쌍안경과 아이폰만 들고 쫓아다니면서 많이 듣고 배웠다.
그분들이 알려준 가장 중요한 새 관찰 방법은 '소리'였다. 소리에 귀 기울여라.
숲을 걷다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 탁탁 나무를 쪼는 것 같은 소리가 작게 들려도 우선 자리에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새가 있다. 새가 놀라서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조용하게 핸드폰을 들어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 처음 보는 새인데 이름을 모르겠다면 새 박사들이 모여있는 네이처링에 물어보면 선생님들이 바로 알려준다. 그렇게 하나하나 새 관찰의 기록과 경험이 쌓인다.
탐조가 왜 좋으냐고 누군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새 관찰의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 원할 때, 맘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새 관찰이 즐겁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면 되는 세상. 정보가 없는 세상에서 새 관찰은 내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하고 귀하고 즐거운 것이 아닌가 싶다. 새가 소리를 내고 모습을 보여줘야 볼 수 있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이 되어야 하는 것. 한치도 기다릴 것 없이 궁금점과 원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정반대의 활동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자연과의 연결감을 잃으면 내가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때, 동물과 식물과 함께 있는 자연 속의 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한다. 키가 아주 큰 나무 곁을 지날 때 내가 작은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되고, 내가 보고 싶다고 새와 다람쥐를 아무 때나 볼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식별하고 이름을 알게 되는 새가 많아지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 내가 되지빠귀와 큰유리새의 이름을 알게 되고, 관찰을 하게 되면 새의 서식지와 이동과 먹이사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철새는 잘 이동했을까, 새가 살아갈 터전은 충분한가, 저 개발로 파괴되는 새의 서식지는 얼마나 되는가, 막을 방법은 없는가.
이름을 알게 되면 지나칠 수 없다.
요즘 숲 속에는 되지빠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올봄에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못 봤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어슬렁 거려도 아직이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큰유리새를 처음 보았다. 청딱따구리는 자주 보기는 했지만 울음소리는 몰랐는데 이제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시시라라솔솔 한 음씩 떨어지는 소리가 청딱따구리 소리인 것을 얼마 전에 배웠다. 아직 갈 길이 먼 초보 탐조러지만, 친구들이 보내오는 새 사진과 영상을 보고 곧잘 새 이름을 알려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조금은 특이한 나의 취미로 인해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도 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즐겁다. 6월에는 교회 같은 조 청년들과 숲에 가서 함께 새를 보기로 했다.
새를 많이 보는 날은 당연히 기쁘다. 그런데 새를 많이 보지 못하는 날에도 새들이 사람을 피해 몸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안심이 된다.
5월에는 안양천에 가서 물새를 조금 더 다양하게 보고 싶다. 꾀꼬리와 노랑눈썹솔새 소리만 듣기만 몇 주째, 이제는 제대로 보고 싶기도 하다. 보고 싶은 새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더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