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go Layer Pancake
"어느덧 겨울바람은 비의 문턱을 넘어 다가왔다. 눈은 언제 오려나..?"
회사일을 마치고 집의 한 귀퉁이 작업실에서 정확히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퇴근, 워라벨을 원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꿈속에 제가 살고 있습니다. 바로 재택근무! 하지만 난 이 재택근무의 장점들을 꼭꼭 보따리에 싸서 깊숙이 장롱에 넣어두곤 한답니다. 왠지 장점들을 풀어헤치는 순간 벽돌장들이 날아올 것 같은 예감을 나의 모공들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라 할까요? 하여 매번 ‘재택근무’라는 네 글자가 나오면 구구절절 재택근무의 ‘고단함’을 나열하여 누군가의 위로가 되려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십상이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리도 장점 감추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첫눈이 온 날.
책상을 세팅하고 아이보리 컬러의 테이블보를 촤라락~ 펼쳐두고 인덕션, 주걱, 볼, 칼, 도마... 를 일렬로 배치합니다. 그리고 삼각대 위에 위태롭게 달린 카메라와 그 위로 보이는 화면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rec’ 버튼을 누릅니다. 녹화 시작. 오늘은 홍콩식 디저트- 망고 팬케이크-를 만드는 날.
홍콩식 디저트 - Mango Layer Pancake 만들기
첫 번째 - [망고 자르기]
1. 도마 위에 망고를 반듯하게 눕혀두고, 감자칼로 껍질을 가지런히 벗겨냅니다 (감자칼로 무언가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은 언제나 쾌감과 희열을 주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나만 그렇다면 제가 화성인이라 그런 것이겠지요. 이런 별난 걸 공감하시는 분이 이 세상 어딘가는 있길 바라며..)
2. 눕여 두었던 망고를 세워서 1/4 지점에 칼을 쓱 꽂고 망고 덩어리를 썰어냅니다. (망고씨가 생각보다 두꺼우니 칼 조심, 손 조심) 그리고는 망고를 큐브로 썰어서 한쪽에 대기모드 on.
두 번째 - [팬케이크 만들기]
1. 계란 2개, 우유 180g, 밀가루 90g, 설탕 20g, 버터 20g을 볼에 넣고 휘저어 줍니다. 최대한 밀가루 덩어리들이 없어지도록 마구마구 저어줍니다.
2. 다른 볼을 준비한 후 그 위에 체를 두고 1번의 팬케이크 반죽을 부으면 체 구멍 사이로 노랑 반죽 방울들이 손잡고 줄지어 내려옵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반죽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3. 뽀송뽀송 부드러운 아기 엉덩이와 같은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프라이팬에 전 부치듯이 둥글게 붙여냅니다 (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면 뒤집어 주시고요) 그렇게 한 장 한 장 팬케이크를 만들어 냅니다.
세 번째 - [대망의 생크림 만들기]
1. 시중에 파는 식물성 생크림(180g)과 설탕 20g을 준비합니다. (꾸덕꾸덕한 생크림을 좋아하면 동물성 생크림을 추천)
2. ** 주의: 미리 냉장고에 넣어둔 두 볼을 꺼내고 한 볼에는 얼음을 놓고, 그 위로 다른 볼을 올린 후, 위에 있는 볼에 생크림과 설탕을 붓습니다(참고로, 전 이날 처음 생크림이라는 녀석을 만들어 봤습니다;; 이 생크림이 눈꽃이 되어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지요.)
3. 휘핑기를 돌려 생크림을 만들어 냅니다.
4. 마지막으로 팬케이크 한 장 깔고 그 위로 생크림 듬뿍, 망고 큐브 콩콩 올리면서, 한층 한층씩 만들어 내면 됩니다.
늘 생소한 것을 접할 때는 실수투성이 따라오고, 훗날 담소의 꽃이 되어버리죠. 이날도 그러합니다.
위이이잉~~~ 드르르륵~~~~ 볼이 너무 작았던 탓에 휘핑기를 돌리자마자 생크림이 좋아서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푸아아~앙~~ 타다닥!! 생크림 방울들이 천장까지 뛰어오르더니 눈꽃이 되어 저의 머리 위, 어깨 위에 살포시 토도독 떨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점점 눈앞이 하얘지고 눈사람이 되어가며 새하얀 눈밭이 되어가고 있는 집안을 멍하니 쳐다보고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저는 휘핑기를 꺼둘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왜 그런 건지 묻는다면 저도 답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답 없이 존재하니까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공간이 흰색으로 정화되는, 휘핑기에서 나오는 규칙적인 소리가 오선보를 내뿜으며 그 위에 콩나물 같은 눈꽃들을 달아두는, 그리고 오선보의 한쪽 끝을 잡아 천장 이쪽저쪽 옮겨가며 빨래걸이를 만드는 과정을 멍 때리며 바라봤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정신 차리고 보니 온 집안은 이미 눈밭이 되어버려 한 시간을 사지로 기어 다니며 닦고 치우고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답니다.
“재택근무 좋네~ 퇴근하고 이런 짓까지 할 수 있고”
그렇게 저는 밤 12시까지 망고 팬케이크를 만들고 촬영하고 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은 건진 ‘작품’이 달랑 몇 장뿐인 이날, 그래서 더 애틋한 첫눈이 온 날입니다. 이 망고 팬케이크를 먹는 누군가의 하루가 달콤하기를, 몽글몽글하기를..
세제 냄새가 빳빳하게 물든 이불을 코끝까지 올리고선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뜻밖의 눈꽃이 되기를 바라면서 ‘꿈’을 꾸어봅니다. 아주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