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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 Sep 26. 2022

오늘부터 1일_1편

옴니버스

(Nar) 밥 대신 알약?...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누구 하는 거지? 난 이 말을 증오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S#1 / 회사

지은: 나랑 밥 먹을래?

지은: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지은: 마라탕 사줄게, 나랑 먹으러 가자.

지은은 퇴근하려는 동료들을 붙잡고 밥 먹자고 조른다.

그런 지은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주훈

회사는 텅텅 비어 있고 주훈만이 구석에 앉아 야근 중이다.

지은: 혹시...

주훈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지은을 바라본다

지은: 밥 먹을래요?

지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훈을 바라본다.


S#2 / 천사김밥집 구석 테이블

조용히 마주 앉아 있는 주훈과 지은

지은은 수저를 놓고 주훈은 물을 따른다.

지은은 멍한 눈으로 수저를 만지작 거리며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고 주훈은 멍 때리는 지은을 바라본다.

라볶이가 따뜻한 김을 펄렁이며 테이블 위에 놓인다. 그리고 김밥 한 줄도 나란히

지은은 라면사리를 집어 든다. 호로로록, 오물오물, 여전히 무표정이다

주훈은 여전히 지은을 바라본다.

떡볶이를 집어 들고 오물오물 거리는 지은, 여전히 주훈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체 맛없게 먹기만 한다.

거의 다 먹어가는 라볶이 한 그릇.

지은: 밥이 란건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주훈: 왜요?

지은: 왜 혼자 먹으면 맛없고 같이 먹으면 먹을만할까요?

주훈: 그러게요

지은: 주훈 씨는 알약이 있었으면 하나요? 밥 대신 먹는 그런 알약

주훈: 음... 네

지은: 왜요?

주훈: 입맛이 없어서요

지은: 지금은요?

주훈: 괜찮은 거 같아요

지은: 저도요

주훈: 왜요?

지은: 그러게요..

주훈: (우걱우걱 김밥을 먹는다)

지은: 나랑 사귈래요?

주훈은 놀라서 입안에 있는 김밥을 뿜을 뻔하다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지은: 왜 그리 놀라요? 자자고 한 것도 아닌데

주훈은 또 놀라서 켁켁 거린다. 황급히 물을 찾는 주훈

지은은 당황하는 주훈을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지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옆에 누군가 나와 밥 먹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언제부터지?..

주훈은 진정하고 물을 마시면서 말한다

주훈: 뭐 그렇죠 뭐. 밥이란 게, 그래서 집밥 집밥 하는 거 아닐까요?

지은: 집밥 맛없는데

주훈: 그럴 수도 있죠

지은:...

주훈: 그럼 내가 매일 밥 사줄게요

지은: 왜요?

주훈: 사귀자면서요

지은: 네?

주훈: 장난이었어요?

지은: 장난은 아니었어요

주훈: 그러면 됐어요. 내가 밥 사 주고 매일 같이 밥 먹어줄게요

지은: 내가 싫다면요?

주훈: 먼저 사귀자고 할 땐 언제고요?

지은: 그러게요. 참, 사람이란 게 원래 이렇게 변덕스러운가 봐요

주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않겠어요? 사귀기 싫으면 나랑 밥만 먹어요 매일, 지은 씨도 혼자 먹는 거 싫다면서요

지은: 제가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주훈: 제가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지은: 불공평한 거 같아요

주훈: 사랑은 원래 불공평하죠

지은: 사랑이 없는데?

주훈: 밥 먹으면 생겨요 뭐든

지은: 뭐든..?

지은: 안 생기면요?

주훈: 안 생기면 어쩔 수 없죠. 정이라도 생기겠죠

지은: 정... 흠

주훈: 정이 사랑보다 무서운 거예요

지은: 알아요

주훈: 아는구나

지은: 그래서 겁나요. 진짜 정들면 어떻게요

주훈: 그럼 계속 같이 있는 거죠

지은: 휴 밥이 뭘까요?

주훈: (라볶이에 남은 어묵들을 보며) 어묵 싫어해요?

지은: 지겹도록 좋아했었죠

주훈: 근데요?

지은: 지겹도록 좋아하다가 진짜 지겨워졌어요. 지금은 보기만 해도 토 나와요

주훈: 토요?

지은: 왜요? (찌그러진 주훈의 미간을 보며) 밥 먹을 때 똥 이런 거 얘기하는 거 못해요?

주훈: 네. 막 상상하게 돼서

지은: 그럼 힘들 텐데

주훈: 뭐가요?

지은: 저랑 밥 먹자면서요 매일

주훈: 그럼 똥 얘기까진 하지맙시다. 최소한 나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내가 밥 사니까. 돈 내는 사람이 나니까

지은: 그래요

주훈: (2초 멈칫하고 지은을 바라보며) 네?

지은: 하 잘 먹었다. 다 드셨죠? 일어날까요?

지은은 티슈로 입을 닦으며 나간다.

주훈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지은 뒤를 따라나선다.


S#3 / 골목길

지은: 원래 고백이 이렇게 평범하고 밋밋하고 재미없나요?

주훈: 하나도 안 평범하고 안 밋밋하고 안 재미없는데요? 너무 특별하잖아요

지은: 이게 왜 특별해요~

주훈: 나 너 좋아해! 손 착!! 키스 빡!! 뭐 그게 더 평범하죠. 다들 드라마나 많이 봐서 다 따라 하니까 하나도 새롭지 않잖아요!

지은:ㅋㅋㅋㅋㅋㅋㅋ 뭐예요 손 착!! 키스 빡!! 뭐 그렇게 많이 해보셨나 봐요? 너무 능숙한데

주훈: 아니에요~...

둘의 대화는 골목을 따라 천천히 사라진다.


(Nar) 나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혼자 밥 먹는 게 지겨워서.

5년을 혼자 밥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똥싸고 하다보기 너무 지겨웠다. 솔직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내가 밥이 맛없어서, 아니 혼자 밥 먹는 게 맛없어서 주훈이를 내 남자 친구로 받아들였다. 우린 지금 5년째 같이 밥을 먹고 똥 싸고 같이 땀냄새 맡으며 끌어안고 잔다. 끈적이건 죽어도 싫다고 했던 내가 그러고 있다. 정이란 게 사랑보다 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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