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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 Sep 09. 2022

바지단과 바느질

사랑은 바느질을 타고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적 재능'을 보호하려 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그 사람이 아직도 그 재능을 누군가에게 적어도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인정받고 있다는 걸 느끼기 원했으니까.


큰엄마는 내 기억 속에 바느질을 정말 잘한다. 그리고 뜨개질도 잘했었다. 동네에서 소문날 만큼 정갈하게 뜨개질을 했었으며 나의 구멍 난 양말도 떨어진 단추도 뚝딱 잘도 꿰매 주고 달아주었다. 그 영향에 오빠도 바느질 하나는 잘했고 나도 인형 옷 만드는 건 거뜬히 혼자 여러 벌을 만들 줄 알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는 어른이 되었고 오빠는 아빠가 되었고 큰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언니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딸아이 하나가 그의 벌어진 인생을 꿰매주었다.  


그 아이는 심술과 고집이 있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예술적 감성을 타고났다. 몸은 산만한 아이가 손가락은 야물딱지게 생겨서 방안 곳곳 그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있다. 서랍 속 줄지어 선 알록달록한 정체모를 테이프들, 박스로 묶어둔 장난감 찰흙들, 가지런히 꽂아둔 포스트잇들, 그리고 check list에 흐트럼없이 쓰인 매일 해야 할 일들, 그 아이는 J임이 틀림없고 F임이 틀림없고 또 I 임이 틀림없다.


이런 아이에게 명절 선물-바지가 들어왔다. 바지허리는 고무줄로 된 탄력 만땅 형태였고, 바지 다리는 굵은 허벅지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쫀쫀한 탄력을 가진 스판 원단이었고, 바지 기장은 너무 길어서 바닥청소를 해도 거뜬한 걸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오빠: 이거 좀 잘라야겠는데?

언니: 지금 문 여는데 어디 있어? 다 닫았지

오빠: 그럼 대충 입어

큰엄마: 이렇게 올리면 되잖아


아이는 멀뚱이 기장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석고상처럼 굳어있다. 왜 아무 말 없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그 누구도 모른다.


나: 큰엄마 바느질 잘하잖아요, 바로 하면 되지


큰엄마는 예전의 젊었던 날렵한 모습이 떠올랐는지 몸을 돌려 옷장 아래칸 수납함에 정리해서 넣은 가위와 바늘과 실을 착-착-착 꺼냈다. 그러더니 앉은자리에서 가위를 아이의 발목에 갖다 대고 바지단을 슥-슥 뚝딱 잘라버렸다. 뭉텅- 원단 한단이 혹처럼 떼어나갔다. 그 자리에서 안경을 코에 걸고 바늘구멍에 실을 넣으려고 실을 입에 빨았다가 바늘구멍에 넣었다가 미간을 좁혔다가 고개를 기웃거렸다가 겨우겨우 실을 구멍에 끼워 넣었다.

한 땀 두 땀 세 땀... 그리고 여섯 땀 열두 땀 열일곱 땀... 바지 밑단은 큰엄마의 바느질에 말려서 하나하나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땀, 마무리!

석고상 같은 아이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고 다리는 더 굳어졌으며 영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빠, 언니 그리고 나의 표정은 마지막 한 땀의 바느질과 함께 멈춰버렸다. 울퉁불퉁하고 뭉퉁그레 말린 바지단은 누가 봐도 못난이 주먹밥같이 생겼다.

큰엄마: 흠..

언니: 괜찮네. 이대로 가자

오빠: 딱 발목까지 와서 편하겠다야

나:... (아무 말 없이 그들의 표정을 번갈아 봤다)

그 어색함 속에는 이상한 행복감과 서로를 지켜주려는 노력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공기는 천천히 흐르고 큰아버지는 힐끗 바지단을 보더니 다시 테레비를 보고 있었고 아이는 이제야 석고상에서 천천히 사람으로 피가 흐르는 동물로 변해갔다. 바지는 어색하게 아이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걸려있었고 현관문으로 걸어 나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번졌다.

사랑이라는 건 말로 표현하는 방법도 있고 석고상이 되어 묵묵부답하는 방법도 있다. 그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했다. 가슴 뜨겁진 않지만 잔잔하게 오래오래 그 사람을, 서로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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