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다듬는 남자
3초 전 떠난 버스 꽁무니를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참 당황스럽고 내 인성을 다시 되묻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 요즘 뭘 잘 못했나?? 하나하나 오늘의 행동부터 어제의, 7일 전의, 한 달 전의 행동까지 다 까뒤집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왜 이런 어이없고, 바늘로 콕 찌르는 듯한 슬픔과 짜증을 나한테 종합 선물세트로 주는가?? 신이시여?? 라고 생각도 잠깐... 이내 발을 돌려 카페를 찾는다. 종합 선물세트라고 해서 꼭 받아야 하는 법은 없지 않는가?
노란색 간판에 새겨진 검은색 이름을 보아 내부 인테리어도 뭔가 그닥 예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그치만 별수 있나. 이곳에 이 카페뿐인데.
삐걱-
한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남잔 하얀 마스크 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조금 어색한 눈빛이 잠깐 스치더니 눈을 피해버린다. 나는 곁눈질로 그의 손에 쥐어진 풀떼기 한 뭉큼, 빨간 장미 몇 송이와 하얀 잎을 가진 꽃을 꼭 묶어 다듬는 걸 본다. 근데 한 다발이 아니었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풀잎들과 이름 모를 꽃들과 그리고 벤치에 이미 묶어둔 꽃다발이 조용히 얹혀있다. 꽃 카페 사장일까? 꽃 카페 알바님이실까? 플로리스트 지망생일까? 그것도 아님 여자 친구가 몇 명 되는 playboy일까?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튼실한 네이비색 책가방엔 뭐가 들었는지 터질 지경이다. 그리고 가방의 옆면 그물망 포켓엔 남은 풀떼기를 꽂아두었다.
이 가방은 곧 주인을 따라 문을 열고 저녁노을을 맞이할 것이며 그 옆 풀떼기는 보라색 노을 아래 아련하게 살랑살랑 흔들거릴 것이다. 그리고 신호등을 건너고 또 건너 버스를 지나고 또 지나 내가 놓여버린 그 버스에 올라탈 것이다. 그럴 것이다. 풀떼기는 아무런 잘 못을 한 게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