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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 Dec 08. 2023

솜이불

20년도 더 된 솜이불을 버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뜩, 이런 충동을 느낄 때 질러 버려야 할 수 있다


버리기 전 이불의 속내를 보고 싶어졌다

껍데기를 가위로 슥삭 잘라서 까뒤집어 보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누런 속살일 줄 알았는데, 참으로 놀랍다

20년 동안 어떻게 하얗게 유지하고 있었을까 싶다


한층, 또 한 겹

잘도 뉘어있었다

다드미질을 꼼꼼히 하셨나 보다


방망이 하나를 들고 퉁 쳐봤다

하얀 속살 위에 하얀 먼지들이 노랗게 빛났다


손으로 먼지 잡기 놀이를 했다

20년 전 그때처럼


 먼지는 못 잡고, 추억만 잡았다

충동 따라 추억도 없어질 것을 예상하면서


속살을 보니 다시 망설여졌다

바늘로 한 땀 한 땀 다시 꿰맸다


보기 흉한 자세로 문지방에 

오늘 마지막 하루만

집 지킴이로 변신했다


11시간 11분 지난 그 시점

대형쓰레기 스티커 붙어 있던 솜이불이 사라졌다

드디어.. 마음 한구석을 데려갔다


휑하다

바늘을 다시 들어 

마음을 꿰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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