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른백산 Jul 22. 2020

지리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잘 모르겠을 땐 지리산을 가라 - 08

솔직히 말하자면 천왕봉을 조금 얕봤다. 힘들었지만 반야봉도 올랐었고, 요 반야봉이 천왕봉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오산이었다. 



두 번째 대피소라고 짐을 푸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벽소령보다 지어진지 오래된 곳인지 개인의 편의는 떨어졌다고 할까. 개인마다 파티션(?)이 나뉘어진 벽소령과 달리 오히려 군대의 구 막사를 닮은 공간이었다. 모포도 군대처럼 머리맡에 두면 딱이었다. 적당히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구경 나갔다. 가벼운 옷차림에는 다소 버거운 추위였지만 풍경이 좋아서 그런대로 있을 만 했다. 마른 아저씨는 대피소의 정면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기가 청학동, 저기가 여수라고 손으로 가리켜줬다. 바다는 아직 한참 멀리 있을텐데, 하늘이 맑구나, 높으니까 멀리도 잘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리산의 마지막 밤. 중학교 다닐 때 갔던 경주 수학여행의 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밤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으로는 아직 일러서 한 숨 자기로 하고 자리로 올라갔다.

까무룩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아저씨들과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일어났다. 간 밤의 뒷풀이에도 끼워준다고 그랬었다. 밤이 되니까 한 겨울처럼 추워져서 옷을 겹겹이 껴 입고 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신발만큼은 꿉꿉하고 무거운 등산화에서 해방되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공기부터가 시렸다. 한 겨울에 위병소 근무를 갈 때 처럼 숨을 쉴 때 마다 콧구멍이 속속 얼어붙는 기분이 났다. 그래서 그 시절, 총은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 기분으로 돌아가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분명히 캄캄한 어둠 속인데도 환한 느낌이 들었다.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더러는 아는 별의 모양도 있었지만 대부분 처음 만나는 녀석들이었다. 콧 속부터 머리 깊은 곳까지 맑은 기분에, 별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저씨들도 취사장에 갓 도착했던 모양이다. 아저씨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어제 벽소령의 급수대에서 만났던 그 형이었다. 아저씨들도 그 형도 나와 만나기 전에 서로 만났었던 모양이었다. 하루의 짧은 인연이지만 산에서 만나는 것은 그런 것일까. 모두와 정답게 인사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내가 가져온 즉석 음식 한 가지를 꺼내고 또 몽땅 얻어 먹었다. 이번에는 지글지글 후라이팬에 볶은 오리 고기까지도. 소주도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무슨 고민이 있어서 지리산에 왔는가. 우리 아들도 진로를 고민하면서 혼자 지리산 종주를 다녀갔었다. 산을 배울 때 좋은 선생님에게 배워야 한다. 산은 함께 나누는 것이니까 부디 오늘 있었던 일을 잊지 말아라.

내가 이들이 없이 장터목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을까? 왔다 하더라도 이토록 지리산을 즐기며 산행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저씨들은 술자리가 끝나고서 나를 따로 불러 손수 약도 발라주고, 먹을 약도 여분을 더 나눠줬다. 감사하다. 장터목까지 오는 여정속에 나와 엎치락 뒤치락 산행을 한 것은 단지 자기 페이스의 산행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내 음식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 다만 산에서 만난 인연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오래토록 기억해야 하겠다.


나의 상태에 천왕봉을 오르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상은 세시 삼삽분. 일어나 보니 대피소는 잠자는 사람들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색색, 까드득, 드르렁.

뚜렷하게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다이소 전등에 기대어 마지막 등산 준비를 했다. 배낭은 그대로 두고 천왕봉에 갔다가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하산 할 계획이었다. 헤드랜턴을 구입했으면 편했을 걸, 다른 것은 다 괜찮았지만 우비, 랜턴에 관해서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랜턴을 손에 쥐기 편하게 스틱을 한개만 챙겼다. 신발끈을 몇 번이고 다시 고쳐 매고 천왕봉 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더 어두울 수 없게 캄캄했다. 누군가 나처럼 일찍 가는 사람이 있을 법도 했는데 통행인이 없어서 내 기억을 의심하다가 마침내 출발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나도 길을 나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왕봉을 조금 얕봤다. 힘들었지만 반야봉도 올랐었고, 요 반야봉이 천왕봉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오산이었다. 계단은 도시의 계단처럼 중간에 긴 턱이 없이 계속 오르기만 했다. 원래도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이건 꽤 겁나는 풍경이었다. 아니 사실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풍경은 아니었다. 끝없이 오르다가 코너를 돌아 다시 올라 갈 즈음에 숨통이 좀 틔였다. 돌을 밟고 오르고 흙바닥으로 내려가고, 나무를 밀어서 만든 길로 가서 다시 돌을 올라갔다. 세 번째 봉우리를 나선으로 다 올라 갔을 때 낮은 경사로 넓게 펼쳐진 평원이 나타났다. 군데군데 타다 만 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뭔가 유명한 곳이라고 표지판도 붙어 있었다. 그러고 나니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쯤 흘러 있었고 주변은 굳이 랜턴이 없이도 분간이 되는 지경이었다. 낮은 경사의 평원을 마저 올라가고 다시 밧줄에 의지해서 돌무더기를 밟고 이십분쯤 올라 갔을 때 홀로 우뚝 서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를 보았다. 잡고 따라가게 되어 있는 밧줄은 바위를 감싸고 옆으로 둘러 쳐 있었는데 나는 혹시나 해 뜨는 것을 못 보게 될까 납짝 엎드려서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올라 갈 만 한 모양이었다. 중간 쯤 오를 땐 내가 왜 편한 길로 안가고 여기로 왔을까 하는 후회도 왔지만 내려 가는건 더 무서운 일이라 계속해서 올랐다. 그리고 천왕봉에 스틱을 딛었다.

해가 뜬 천왕봉의 풍경

천왕봉에 오른 사람들의 사진은 여기 저기에서 많이 봤다. 삼원복사 아저씨의 프로필 사진, 나리의 사진, 또 누구의 사진. 그렇지만 천왕봉을 진정 오르지 않고서 그 사진의 감동을 눈치 채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왕봉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산이 많은 한국의 내륙에서도 지리산의 높이는 독보적이다. 해발 1900미터.  천왕봉에 오르면 이 사전적 정보를 아는게 아니라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한국의 사람들이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장소. 오면서 만났던 비죽비죽한 산들이 모두 천왕봉 발 아래에 경쟁하듯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잔잔하게 엎드려 있다. 해가 뜨고 환하게 세상이 밝아져야만 비로소 아래에 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머물면 이치를 알게 되는 산. 지리산. 아득바득 사는 인간삶이 세상에 비하면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넓다고 할 수 없는 천왕봉 등허리에 사람들이 많이 올라 섰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들어 현장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따뜻한 차를 나누어 마셨다. 점점 해가 떠올랐다. 조악한 스마트폰 카메라로 실시간 촬영하고 있는 나. 이 감동이, 이 순간이 기록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이 순간을 떠올리는 단초가 될 수는 있을터. 돌에 기대어 앉은 지 삽십 분, 마침내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 시작한 산행. 내 인생을 찾았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 한 가지 만큼은 분명했다. 산은 항상 거기에 있다.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이전 08화 독야청청 천왕봉보다 능선따라 세석평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