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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23. 2022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아직도 당신이 정말 제삼자라고 착각하는가?

노여움에 휩싸였을 때 글을 쓰는 것도 나쁜 것까지는 아니나 그 글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것은 이메일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한 때 선생이라 불렸던 이는 이메일을 받아도 즉각적으로 답장을 쓰는 일이 없었다. 늘 시간의 텀을 두고 생각을 정리하고 곱씹은 후에 답장을 썼다.


물론 가까이 지내며 커 보이기만 하던 그에게서, 학자로서 또한 도덕적인 면에서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이 그의 인생이 만들어낸 결이고 나이테였음을 확인한 순간, 더 이상 보고 배우고 따를 수 없어, 선생이라 부를 수 없을 즈음에 나는 그를 떠났다.


브런치에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작가 소개에 밝힌 바 있다. 쓸 게 없어서 적당히 메모나 적은 이들과 달리, 정말 내가 이곳에 글쓰기를 하는 이유를 ‘적시’해두었다.


오늘 나는 여기, 새로운 프로젝트 매거진을 새로 론칭한다. 브런치 글쓰기의 본래 목적을 글쓰기 1000편이 지나면 본격화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드디어 실행하는 것이다.


어제, 내 글을 읽으며 구독자가 된,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락했던 어린 아기의 아빠라는 젊은 법조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에 내가 언급했던 브런치의 작가 입네 하면서 작가 소개에 별 쓸데없는 이력 따위를 잔뜩 늘어놓고 구독자 호객행위를 별의별 짓까지 다해가며 한전에 다니는 40대 아이 아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ahura/589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자랑스럽게 프로필에 적어둔 공기업이라는 한전이 벌이는 어이가 없는 행동에 그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자는 콘셉트까지 잡고 글을 쓰는 그의 양심의 울림을 듣고 싶었다.


결국 그의 밑바닥만 보고 말았다.


물론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와 똑같이 구독자수에 목을 매며 자신의 딸이 그린 그림까지 홍보하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복지부 감사실 소속 직원이었던 이에게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했었다. 매일같이 내 글을 라이킷 도장 찍으며 (지금까지도) 읽고 있는 그에게 메일을 보내 그저 물어볼 것이 있으니 회신을 부탁한다고 연락을 취했더랬다. 그는 뭘 보고 놀란 가슴인지 몰라도 그 연락을 그냥 씹었다.


실망의 연속이었지만, 5,60대도 포함하여, 3.40대의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민초(民草)들의 변화를 통해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글쓰기 목적에 맞게 나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이어졌음에도 그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10년이 넘도록 자기 사무실을 운영하는 40대의 젊은 변호사는 글을 읽다가 자신이 더 화가 난다며 아래 사건에 대한 소송을 직접 진행하기로 하고 소장을 접수하고 진행 중이다.

https://brunch.co.kr/@ahura/11


어제 다시 내게 실망을 한 보따리 안겨준 젊은 법조인 친구는, 개인적으로 연락하게 된 그날, 내가 한전 직원 애아빠의 해프닝을 다룬 글을 읽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었다.


“개탄스럽네요. 공공기관, 법조계 말석에 있는 사람으로 부끄럽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져온 그의 브런치 글을 보더라도, 젊은 사람치고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고 나와 대화 중에도 법조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강하게 공감하며, 브런치를 통해 공감을 가진 법조인을 중심으로 한 공익활동을 하자는 제안에도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아직 어리고 소송 경험이 없는 직장형 법조인인지라 시간적으로도 제한이 있으니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움을 주겠노라며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저는 막연히 생각만 했던 것을 실제로 행동하시려는 것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첫 대화였지만 자신이 어차피 송무를 뛸 수 없으니, 구성 멤버로 언론이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변호사를 찾아보라며 현실을 언급하는 것이 못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저 우려를 전한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처음 소통을 하고 난 뒤, 두 달 여가 지난 어제 연락을 취해 그간 실질적으로 성과도 간략히 설명해주고는 그간 <논어 읽기>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던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도움을 청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구체적으로 뭐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자신은 국회나 언론사에 아무런 지인도 없어서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 포석을 했다. 나는 그런 인맥을 원했다면 내가 인맥 있는 사람들을 찾았을 거라 고쳐주고, 함께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동지(同志)가 필요한 것뿐이라고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전화 한두 통 하고 사건의 사안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법률적 지식만 갖추고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완곡하게 설명하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자신이 회사에 매인 몸이라 어렵다, 자신이 수시로 대응이 어렵다 등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대응은 모두 내게 넘기라고 하자, 못 견디겠던지 기어코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라며 퇴짜를 놓았다. 노여움의 휘발유통에 불을 놓은 것은 그가 하지 말았어야 할 마지막 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짧게나마 사회생활을 해본 결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밝히건대, 내가 지금 그와의 어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성토하거나 비난하자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물론 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왔다. 내가(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발검 스쿨의 반장) 작성한 사건의 정리 문건을 정독하겠다고 해놓고 이미 고소가 되어 있어 입건이 된 사건에 대해 ‘고소를 하시고 싶으신 건가요?’라고 묻는 무성의함에 속상하고 실망스러웠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복지부 감사실에서 수년간 일했다며 버젓이 브런치에 감사 요결이 어쩌구라는 글까지 올리고 마치 세상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에 궁행 실천하는 듯 코스프레했던 사람이나 자신이 키우는 아이들을 제대로 올바르게 키우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라며 아줌마 구독자들에게 호객행위를 했던 한전 직원이나 직장 법조인으로서 소송 한번 안 해보아 경험은 일천하지만 뜻을 보태겠다고 얘기했다가 위와 같은 말까지 꺼낸 어제 직장 법조인에 이르기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지금 우리네의 군상(群像) 임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내가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했던 이유는, 그들이 쓴 글이, 자신의 생각이고 자신의 마음이라고 꺼내놓았던 것들이, 올바른 것을 지향하고 싶다는 내용들이었고, 무엇보다 단순무식 과격한 내 글에, 사회를 바르게 바꿔나가는 것에 자신들도 공감한다는 표현을 음으로 양으로 해왔었기 때문이었다.


아침마다 함께 공부하는 <논어 읽기>에서 수차례 강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좋은 글을 읽고 그것을 인용하며 성인군자를 코스프레하는 것은 먹물 좀 먹어본 이들이라면 ‘척’해보고 싶은 삶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매일같이 부단히 배우고 익히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먹고살기 어렵고 지 밥그릇 챙기기 힘든 사회생활하면서 그 공부에 더해, 그것을 단련하여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도 아니고 쉬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 글을 읽는 구독자들은 다 알고 있지만, 정의구현 코스프레를 하며 글을 오독하는 자들만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내가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함께 사회를 바꿔보자고 교유의 폭을 넓혀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잘 모르는 이들은 내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내가 언론사나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검사 인맥이 없어서 그들에게 연락하는 것이라 오독하는 것이다.


내 글에 비친 내 모습들이 그렇게 허접해 보였나 보다.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 혼자서 그렇게 내 문제만 해결하고 썩은 것들에게 메스를 대며 살아왔더니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급력이 더 큰 글을 통해, 그리고 그 유대를 통해 민초라고 하는 특히 막 정력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3,40대와 이제 은퇴했거나 자신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5,60대들에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당신이 하는 항의 전화 한 통이 당신의 지인을 통해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으려는 이메일 한통이 사회를 바꿔나가고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일이라고, 그것을 해보자고 매번 실망하면서도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의 따뜻한 교유를 추구하고 또 추구한 것이다.


그저 맘 카페에 회원인 전업주부이지만, 사회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강하게 갖고 있는 아이의 엄마에서부터, 브런치를 변호사 사무실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해볼까 시작했지만, 이런 계기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민초들의 움직임을 깨닫게 된 법조인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힘을 모아 해결하는 사안들이 사례를 이루고 모범이 되게 되면 비뚤어진 자들이 눈치를 보고 자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자식 앞에서, 혹은 그 부모와 형제 앞에서 당당하게 고개 들고 다닐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상하고 삐뚤어진 자를 국민의 대표로 뽑은 것은 다 너희 잘못이니까 너희가 감내해라!” 라며 국민의 절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것은 이제 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 중 대다수는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전에 찍어줬던 자와 그의 파란당이 5년간 나라꼴을 이 꼬락서니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반발이 더 컸다는 것을 서로 다 알지 않는가?


물론 자기 이익이 된다고, 그들과 결탁해서 으쌰 으쌰 하는 것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선을 한번 승리하였다고 지금 하는 꼴처럼 그들의 세상이 될 성싶은가?


아니다. 곧 있을 지방선거가 있고, 2년 뒤 총선이 있으며, 투표와 상관없이 국민은 직접 사회 구석구석의 잘못을 짚어내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대의정치를 하라고 뽑아준 여의도에 배지를 단 것들이 자기 구실을 못한다면 국민들이 법안을 만들 수는 없어도 그들의 부정을 적발하고 심판할 수는 있는 것이란 말이다.


머리로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고, 입으로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다며 자신을 포장하면서도 정작 실행해야 할 시점이 오면, 수양이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은 주저하기 마련이다. 이해한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본능이다.


꼭 자기 부와 명예를 눈이 씨벌개지도록 밝혀야만 ‘사욕(私慾)’이 아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뭘 한다고 사회가 바뀌나? 내 일도 아닌데 내가 굳이 내 시간과 정력을 써가며 그런 일을 해야 하나? 프로보노(무료 공익소송)로 대기업과 싸우려는 변호사들이 없다고? 정치판에 뜨고 싶어 하는 변호사들이나 그런 일에 관심을 가져할 것이라고?


왜 자기 얘기를 하다가 자꾸 남 얘기를 하나?

차라리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그리고 사회를 올바르게 하는데 자신이 뭔가 하는 척 코스프레나 하지 마라.

당신이 무엇이 옳은지를 공부하였고 그래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면, 공허한 글 따위에 자기 포장에 치중할 시간에 작은 사안이라도 당신의 능력을 당신의 시간을 들여 잘못을 바꿔보라. 전에 한전 직원 애아빠가 그러더라.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위치가 회사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제가 그런 영향력을 갖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제 이야기를 나눈 직장 법조인도 그렇게 말하더라.


“저 또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많은 변호사 중 하나입니다. 제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형제나 절친도 아닌데 변명의 패턴이나 토씨까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들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나마 조금 배우고 사회에서 나름 자기 몫을 하고 있다는 3,40대의 ‘일반적인’ 지금 당신의 군상이라 보여주는 것이다.


궁금했나? 왜 사회가 계속 좀먹어가고 바뀌지 않는지?


위의 그들의 말로 대답을 대신 하마.


자신들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나는 못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을 하는데...’따위는 없다.


이제까지 바뀌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바꾸려들지 않으면서 누군가 바꿔주는 세상은 없단 말이다.


5년 전에 그따위 썩은 생각으로 표 하나 던져놓고 세상이 바뀌기를 바랐던 당신의 그 안일함은 지금의 썩은 파란당을 키웠고 애초에 썩어있던 빨간당은 국정농단의 구정물에서도 멤버 하나 교체하지 않고 지금 자신들이 다시 여당이 되었다고, 승기를 잡았다고 저 난리를 치는 것이다.


‘내가 뭘 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뀔 리가 없어.’라는 썩어빠진 변명을 ‘작은 것이라도 나부터 실천을 통해 바꿔보겠다’의 마음가짐을 먹고 시도해보란 말이다.

해보지도 않고 꼬리를 마는 개 같은 짓은 이제 그만 좀 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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