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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18. 2021

브런치의 작가라고 하는 이들의 민낯

사회를 좀 먹는 자들이 나와 멀리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에게.

코로나 정국에 대국민 전기세 감면은 고사하고, 전기세를 슬그머니 올리며 지들 성과급은 꼬박꼬박 챙긴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있다.


그 공기업이라는 곳에서 벌인 후안무치한 사건으로 인해 드디어 산자위 소속 모 위원실의 국회의원 보좌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의원실과 소통한 지 무려 1년째 되던 날이었다.


굳이 그들을 테스트하려는 의도에서, 산자위 소속 국회의원실에 공식적으로 모두 연락을 취했더랬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6년 11월, 본격적으로 사건화된 것은 2018년 11월.


한국전력을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산자부 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 2019년 1월.


산자부에서 같잖은 감사를 통해, 한전 측에서 모든 잘못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교수님에게 어떻게 보상해드릴 방법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는 결과 공문을 받은 것이 2020년 3월의 일이었다.

 https://brunch.co.kr/@ahura/249


위 링크조차 읽기 부담스러운 독자들에게 간략히 사안을 정리하자면 대강의 사건개요는 이렇다.


2015년 국회에서 만든 '송주법'이라는 보상법이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한전에서 대형 전신주가 반경 2킬로미터 내에 있는 세대에 보상을 해주라는 법'이다.


보상의 방법은, 보상을 100%로 볼 때, 50%는 직접적으로 세대별 전기세 감면, 나머지 50%는 마을 전체 위원회에 세대수만큼의 금액을 곱해서 일괄 지급하여 위원회에서 결정하여 알아서 분배하거나 마을을 위한 사업에 쓰던 하라는 식의 ‘피해보상’을 위한 '엄연한' 법이다.


그런데, '수가구 세대'라고 하여, 2층 집이 분리된 살림을 할 경우엔. 당연히 별도의 세대로 봐서 따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국민의 고혈을 빼내면, 그 돈이 자신들이 착복할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집단이다. 반대로 위 보상법의 논리에 의거하자면, 자신들이 그렇게 빼앗은 돈을 보상금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어떤 식으로든 지급 범위를 줄이거나, 지급 금액을 줄이려고 꼼수를 편다.


맞다. 그들은 수가구 세대에 대한 안내를 하지 않았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도심권에 대형 전신주가 설치되지 않은 관계로 이 보상 법령의 수혜가구들은 대개 비수도권의 ‘시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많다. 그러니 법령이나 보상절차에 대해 수도권의 사람들보다 당연히 미숙하고 잘 모른다. 그 점을 한전은 놓치지 않고 자세한 안내를 빼먹고, 상시 안내를 통해 시골로 이사 오는 이들이 그 혜택을 누리는 호사(?)를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는 것으로, 책무를 방기하려 했다.


그러던 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내가 정식 항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제대로 된 수가구 세대의 수혜 부분 안내를 소홀히 하였으니 빨리 시정하고 그간 그런 식으로 착복(?)한 부분을 원상회복하라는 취지였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항의를 한전은 계속, 자신이 담당이 아니라는 둥, 담당이 지금 출장을 갔다는 둥하며 무려 11월까지 미루며 끌고 버텼다. 물론 민원당사자가 그 사이 지쳐 나가떨어지길 원했겠으나 한술 더떠 본사까지 푸시를 하는 바람에 결국 전라도에 있는 한전 본사의 송주법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비굴한 웃음을 흘려가며, 그는 별별 헛소리를 해대다가 결국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교수님이시야 그 별장 말고도 서울 강남에 사시면서 집도 많으시니 돈이 없는 것도 아니시고 저희들 잘못이라는 점은 발뺌할 생각이 없으니, 2016년 4월부터 모든 보상을 2018년 말에 3년 치 일괄 소급 보상해드리는 것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이 2년이 지나 나중에 해외출장을 갔다는 둥, 퇴사했다는 둥 하면 내가 그 약속을 어떻게 보장받지요? 서류로 약속이라고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아이, 교수님. 서류로 내어드릴 것 같으면 이렇게 긴밀하게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철밥그릇을 포기할 리도 없고....”


그래서 넌지시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속내가 빤히 보여 다시 물었다.


“본사의 책임 담당자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동의는 하는데, 결국 본사에서 그 보상금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지사에서 지급하는 것이니 경기 지사 책임자가 본사와 이렇게 이야기된 것이 다 맞고, 2년 뒤에 3년 치를 모두 소급 보상하겠다는 약속을 유선으로라도 내가 들어야겠습니다만...”


그는 신나서 그렇게 하겠다고, 다만 경기 지사의 여자 차장이 4월부터 계속된 교수님의 민원으로 잔뜩 쫄아있으니 살살 좀 물어봐달라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어디 당신 마음대로 해보라고, 한전이 그렇게 만만한 회사가 아니라고’ 몇 달 전에 소리 지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던 여자 차장이 여지없는 비굴한 목소리로 전화가 와서 말했다.


“본사 차장님에게 연락받았습니다. 설명 들으신 대로 모두 맞구요. 수가구 세대에 대한 보상 부분 저희가 2년 뒤인 2018년 말경에 연락드리고, 3년 치를 모두 소급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믿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 담당 책임자니까요. 되셨나요?”


그렇게 시간을 훌쩍 지나 2018년 말이 되도록 그들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직접 경기지사에 연락해서 이 사안을 말하자, 여자 차장은 승진해서 성남지사로 갔다며 보상 부분의 ‘ㅂ’도 전달받은 바 없다는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본사 책임자를 찾으니 한참이 지나 본사의 더 높은 부서로 진급했다는 담당 차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수님이 뭔가 오해를 하시나 본데, 제가 세월이 너무 지나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상식적으로 누가 3년치를 소급 적용해줍니까?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 본데, 제가 그런 약속을 한 기억도 없을뿐더러, 그런 약속을 할 수도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당시에 통화 녹취한 게 지금 내 컴퓨터에 있는데, 본사 감사실에 보내고 항의해도 상관없겠네요?”

“네에? 노,노녹취요? 농담이시지요?”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과 농담을 하지요?”

“아니, 그게 저어, 아! 제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요. 혹시 그 녹취라는 게 정말로 있는 건지 저에게만 살짝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확인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어이가 없었다. 정말 역겨웠지만, 이메일로 결정적 녹취 부분을 첨부하여 보내줬다. 바로 전화가 와서는 자신이 최대한 처리해 볼 테니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문자와 카톡메시지를 수차례 보내왔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몇 달이나 끌다가 연락을 피했고, 문제의 여자 차장은 연락을 받지 않겠다고 수화기 너머로 “나 없다고 그래. 자리에 거의 없다고 그래!라며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외쳐댔다.


이런 것들이 공기업이랍시고 한전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중간 관리자급이라는, 그들의 민낯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한전 홍보실에 사실을 알렸더니 홍보실장이라는 자가, 여자 차장이 한 멘트와 행동을 똑같이 하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감사실에 사실을 알렸더니 ‘그것은 한 개인 직원의 일탈이라서 회사 차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전의 감시의무가 있는 산자부 감사실에 민원을 넣자, 무려 1년이 지나 감사관이 경기 지사의 모든 관련자들을 모아 교수님이 참석해주시면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여 직접 찾아갔더랬다. 그들의 논리는 기가 막혔다.


“녹취가 나온 이상,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개인의 일탈 문제로 회사 내부 감사로 마무리되었고, 지금 민원인이신 교수님에게 지급을 해드릴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소송을 통해서 요구를 해주시면 저희는 감사하겠습니다.”


그 회의 도중 화장실에 갔다가 회의실에 참석했던 차장이라는 것들 두 명이 키득거리는 못 들을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야! 지금 보상금액이 500 정도인데, 소송하려고 하면 시간에 비용에 변호사 비용 빼면 실익이 없는데, 명색이 명문대 교수인데 그 정도 계산이 안 되겠냐? 그냥 이렇게 뭉개면 별도리 없이 그냥 포기하는 거지. 킥킥!”


개인의 일탈이라고 궤변을 내놓을 것이 빤히 보여, 경기 지사 여자 차장까지 등장시켰는데, 그들은 그 복잡한 스토리에서 모순을 만드는 여자 차장 역시 똑같은 약속을 했었다는 사실은 은근슬쩍 빼고, 본사의 차장에게 모든 책임을 모는 것으로 끝내고 싶어 했다.

산자부 감사관이라는 어린 녀석은, 한전 차장과 감사실장에게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거들먹거리고 회의를 마친 지 두 달만에, ‘회사가 모든 잘못은 인정하지만, 보상해드릴 방법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덮어주시면 반성의 계기로 삼을 겁니다.’라는 개소리를 버젓이 공문으로 날려왔다.


그래서 이 재미진 사건은 그 시점부터 국회의 산자위 국회의원실로 바통이 넘어간다. 송주법은 국회에서 만든 법이고, 해당 법령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권리와 감시의무가 있다.


국민의 힘을 이용하겠다고만 하던, 부정부패로 얼룩진 빨간색 당에서는 보좌관 선에서 대놓고 태업을 했다. 보좌관이라는 것들이 어깨에 뽕을 넣고 국회의원이 없을 때 국회의원보다 더한 가오를 잡는 것들이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들이니, 당신이 드라마 속에서 이정재를 보며 기대했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대강 한전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임을 강조하며, 그들이 보내준 공문에 의하면 이미 산자부 감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민원 거리가 안된다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지금 정권을 잡은 파란색당은 그들과 달랐냐고?

아니. 그들은 빨간 당의 뻔뻔하고 너무도 당연히 내치는 것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장에서 게임을 하다가 그것도 두 번이나 하나가 걸려놓고서도 버젓이 TV에 나와서 싱글거리며 야당을 공격하는 작자의 의원실 여자 보좌관은 대놓고 ‘의원님께 보고했더니, 굳이 이 건에 대해 저희 의원실에서 해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뭐, 교수님이 의원님과 직접 연락하실 수 있는 위치시면 직접 전화 걸어서 확인해보시던가요.’


판사를 하다가 자신이 굉장히 양심적인 판사로 다른 법비들과 달라,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던 여자 초선 국회의원실에서는 한 술 더 떴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보고 저희가 경악했습니다만, 뭐, 이것이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많은 사건인지 그런 통계자료나 사례를 모두 정리해서 저희에게 주시지 않는 이상 그걸 저희가 파악하고 응대할 시간이 없네요. 저희 의원님이 판사 출신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만약 교수님이 소송을 통해서 당당히 승소하시면, 그때는 저희 의원실에서 특별히 도와드린 모양새로 언론 인터뷰 같은 걸 할 수 있게 연결해주시면 좋구요."


  https://brunch.co.kr/@ahura/249


링크에 소개된 서울 시장 선거에 나와서 마치 굉장히 양심적이고 소탈한 소시민 지식인을 코스프레했던 의원실에서는 보좌관도 아니고, '비서관'이라는 여자가, 자신이 보좌관도 아닌, 비서관이긴 하지만 18년이나 국회에 있었다고 거들먹거리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근 반년 이상을 시간을 끌더니 마지막에는 전화를 피하다가 덜미를 잡히자 그냥 교수님이 알아서 소송하시면 안 될까요?’라며 후안무치하게 발을 빼고는 연락처를 차단해버렸다. 

 

그렇게 묵히고 묵힌 사건이 산자위의 모든 의원실을 돌고 돌아, 마지막 의원실에서 연락이 2021년 12월에 온 것이다. 물론 그 의원실에도 사안을 공유한 지 무려 1년 만에 온 연락이었다.


보좌관은 밑에 일하는 비서들이 제대로 응대를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고 사과하며, 대대적인 사안까지 확전할 필요도 없이, 한전이 잘못된 것이 명확하고, 귀책사유가 그들에게 있으면 개인의 일탈이니 뭐니 개소리 필요 없이 그들이 보상하도록 요구하면 된다며 경기지사의 현 차장과 담판을 지을 테니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자고 미팅을 잡았다.


이게 이렇게 오래 끌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회의는 진행되었다.


화상회의 모니터 화면에 등장한 경기지사 차장은 산자위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에게 소환되어 나왔다는 점에 굽신거리면서도 이제까지 한전의 후안무치한 계보를 잇듯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제가 올해 초에 여기 왔는데요. 저같이 이렇게 뜨내기로 온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만은, 이거 산자부 감사도 그렇고 모든 사안이 종결된 것으로 아는데, 그냥 소송을 통해서 법리를 다투시면 안 될까요? 저희 회사에도 법무팀에 변호사들이 있거든요. 이거 뭐 보상을 해드릴 법적 근거가 없어요.”

내가 언성을 높이기도 전에 보좌관이 언성을 높였다.

“개인의 일탈이니 뭐 이따위 소리나 그쪽에서 어떤 징계를 받았느니 인사권 같은 거 저희는 관심 없습니다. 중요한 건, 국회에서 제정한 법령에 의해 국고에 있는 나랏돈이 원래 가야 할 곳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면 방법이 있네 없네를 말할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드려야 할 분에게 드리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그 방법을 우리가 제시하거나 상의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자 이 능구렁이 같은 차장이 너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아, 제가 그런 결정권을 가진 위치도 아니구요. 일단 뭐 증거가 녹취부터 문건까지 다 있으시다고 하니까 한번 보내주시면 검토해서 답변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좌관은 회의 직전 통화에서 내게 말했었다.


“교수님이 산자위의 꽤 많은 의원실을 통해서 한전을 찔렀던 것에 대해, 한전은 오히려 이렇게 많은 의원실에서 손을 댔었는데, 결국 아무런 흠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방어책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도 국회에 있으면서 이런 짓 하는 것들,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다른 의원실이랑 접속하실 필요 없게, 제 경험칙에 의거해서 다른 거 다 차치하고 ‘잘못한 자가 책임을 져라’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논리로 이 사안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제 경험칙에 의하면, 잘잘못을 따지거나 책임추궁을 하면 이제까지 그 놈들이 한 방법대로 원점일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 해서 일단 이 건을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굳이 이 사건을 몇 차례에 걸쳐, 그리고 엊그제 있었던 화상회의까지 생중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위의 링크에도 나왔지만, 18년이나 국회에 있었다는 50대의 애엄마 비서관은, 비서관 주제에 적당히 ‘보좌관’이라는 용어와 적당히 혼용하며 자신의 지위를 뻗대고 다녔고, 유태인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 출간 작가였다며,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까지 올리고 그것을 인터뷰한 자는 브런치에 그것을 홍보까지 했다.


그녀  브런치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의 후안무치한 언행을 접하고는 참지 못해, ‘당신이 ****이라는 아이디로 브런치를 하는 것을 확인했다. 당신도 아이 엄마이고 버젓이 <보좌관 사관학교>라는 책을 준비합네 어쩌네 나대고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라는 자 아닌가? 아이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일갈했다.


그녀는 창피했는지, 브런치에 올렸던 몇 편 되지도 않던 지문 덩어리들을 모두 내리고 내 일갈에 유구무언으로 응대했다. 정말로 쪽팔리고 창피했던 것인지,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고 전화를 끊기만을 고대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https://brunch.co.kr/@ahura/516


지난달 행안부의 정책을 핑계 대며 직무유기와 업무태만을 하려던 강남구청의 지자체 공무원을 조지면서 하도 답답하여, 브런치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보건복지부 감사실에서 7년이나 근무했다는 이에게 급하게 SOS를 쳤었다. 


씹혔다.


평소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리는 공무원으로 수년 전, 책까지 자신의 작가 소개란에 올리며, 굳이 이전의 글을 재발행까지 해가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그의 글에서 보여주었던 근사한 미사여구들대로라면, 그는 의식이 깨어있는,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 내 착각이었다.

 

브런치를 보면, 작가 소개에 출간 작가라고 한 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대개의 출간작은 자비출판이다. 지돈으로 인쇄하고 찍어내고는 책을 냈다고 하는 자들이 그만큼 많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듣보잡 출판사에서 오탈자도 제대로 수정하지 못하고 표지만 봐도 자비 출판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떡제본 인쇄본을 갓 면한 정도인 책들을 버젓이 소개란에 올리고 출간 작가임을 강조하는 이들도 발에 차인다. 이제껏 100권 조금 되게 책을 출간했으나 그걸 남에게 광고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다고, 숨기는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달쯤 전인가, 우연히 브런치에 자신이 쌍둥이를 키운다며 자녀에 대한 글을 연재하는 마흔을 갓 넘긴 젊은 아빠의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의 수준을 뭐라 지적하기 전에 그의 작가 소개부터 눈에 띄었다. 수필로 ‘등단’을 하였다며, '수필가협회 회원'임을 붙여놓고, 이력서처럼 굉장히 긴 이력을 작가 소개에 우겨 넣은 것이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문제의' 한국전력 직원이라는 것이었다. 궁금해졌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며 기획 연재를 작정하고 올리며, 다른 작가들에게 호응을 얻어 빠른 시간 내에 구독자를 500명도 넘긴 그가 자신이 속한 회사의 뻔한 부정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했다.

 

내 글을 계속 읽어온 독자들은 알겠지만, 내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는 버젓이 작가 소개에 적힌 그대로이다. 하루에 4편씩 매일같이 A4 20매가량의 글을, 본업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써내는 것은 전업작가에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양적으로 승부하니 글의 수준이 그리 낮은 것 아니냐고 하는 구체적이고도 비평적 의견을 내민다면 언제든 글로서 맞짱 떠줄 의향은 있다.)

 

그의 글에 라이킷과 함께 위 링크를 남기며, 현재 한전에 다니고 있고, 심지어 그 회사 홍보 기자단에 계속 일했었다고까지 적었으니 이 사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고 댓글을 남겼다.


피드백은 없었다.


그저 그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며 내 글을 구독하지 않으면서도 라이킷을 통해 읽고 있음을 꾸준히 알려왔다.(제대로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90편까지 연재되고 있는 장편소설을 앞부분부터 읽지도 않고 70여 회부터 라이킷을 누르는 것을 보면...)


마침 한전과의 화상회의가 잡힌 날 생각난 김에 다시 댓글을 달아, 왜 피드백이 없냐고 넌즈시 묻자, 마지못한 듯이 그에게서 대댓글이 달렸다.


“제가 맡은 업무와는 다르고 지역도 다르긴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제가 몸담은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제가 조직 모두를 바꿀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깜냥이 되지 못해서 안타깝네요. 저만이라도 이런 일로 인한 불필요한 피해가 생기지 않게 애를 더 쓰겠습니다.”

 

언뜻 보면 굉장히 사려 깊은 공감의 글처럼 보일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이 내용은 그간 한국전력 본사에서 보여온 언행의 개인 버전에 다름 아닌  답변이다. 즉, 처음 전화 응대를 했던 본사 차장의 개인적인 일탈과 잘못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것은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식의 말투, '내가 담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또한 엊그제 화상회의에서 경기지사 차장이 계속해서 자기는 당시 관계 당사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한 것과똑같이 닮아 있음 알 수 있다.

그는 위의 대댓글을 달고난 이후 작가 소개를 바꿨다. 어디 지부라고까지 당당히 썼던 '한국전력'이라는 이름을 냉큼 지우고, ‘공기업’이라고 고쳤고, 대신 그 밑에, 전에 없던 교육청 관련 '감투직'을 몇 줄이나 더 넣어 보강했다. 내가 지금 그와의 해프닝을 언급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에게 유감이 있다거나 그러한 이유로 그를 저격하고자 함이 아니다.(통상 저격은 이렇게 부드럽고 나이스하게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동네 슈퍼에서도 일하던 직원이 실수로 물건값을 잘못 안내하거나 손님과의 사고로 손해를 입히게 되면, 사장이 나와서 손해를 배상하고 사과하며 잘못을 수습한다. 한전 본사의 감사실장이라는 작자와 통화를 할 때 내가 말했더랬다.


“동네에서 요구르트를 파는 아줌마가 자기네 회사의 정책이 어떻고 하면서 이런 일을 벌였어도 본사에 지적과 민원이 들어가면 본사 차원에서 수습을 할 것이요. 한국전력이 공기업이라는 탈을 쓰고서 송주법 담당 책임자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은 그저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이라며 꼬리를 자릅니까? 그러면 당신네는 무슨 문제에 대해 민원이 들어오면 최종 설명은 늘 당신네 회사 사장과 합니까? 내가 그 차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연락한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루트로 항의를 했고, 본사에서 담당 책임자라고 전화가 와서 정식 응대했으면 그게 회사 차원의 공식 응대요, 개인적인 통화요? 이 정도 까발려졌으면 쪽팔려서라도 회사에서 수습해야하지 않소? 당신네들이 내부적으로 그 사람을 자르던 징계를 하던 그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니요?”


연신 변명을 해대던 감사실장이 3분 넘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땀만 삐질거렸다. 위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이들의 말에 의하면, 본사 감사실장은 잘못을 수정할 권한을 가진 위치에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위의 같은 회사 소속의 사람들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위의 변명을 한 자들이 감사실장의 위치가 되어도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한국전력이, 아니면 내가 받았어야 할 고작 500만 원이? 그게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썩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우리 사회는 골고루 썩어 들어가 있단 말이다. 문제는 그걸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당신의 브런치 이웃은 아닌 것처럼 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 작가 중에는 적지 않은 언론사 기자들이 있다. 내 글을 구독하는 한 기자가, 청와대에 출입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메인 신문의 기자가 아니라서 영 주목받지 못하네 뭐하네 죽는 소리를 쓰는 글을 발행했길래, 이 사건 링크를 보내주며, 네가 정말로 기레기가 아니라면, 사회의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너의 위치에서 책무를 다해 잘못된 공기업에 경종을 울리고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댓글을 달아 의중을 물었다. 또 씹혔다.

 

당신들이 구독을 누르고 라이킷을 누르는, 선량한 아이 아빠나 엄마가, 혹은 자신이 전문직임을 내세우고, 출간 작가라고 내세우며 소소한 일상인 양 혹은 전문가의 의견인 양 기본적인 글 수련도 안되어 비문을 남발하며 구독자를 늘려가는 그들이 이 매거진의 제목에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그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 선한 영향력이 어쩌구 자화자찬하며, 당연히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박근혜 같은 몹쓸 사람이 벌인 일에 분노하여 광화문에 가서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었다고 멋진 사진 한 컷과 함께 글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은 마치 썩은 그들과 다른 사람인 양, 아이디로는 마음을 쓰는지, 가식을 쓰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자, 그들의 구독과 라이킷을 얻기 위해 매번 그리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딱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작가 소개에 자신의 책을 올리거나 자신의 경력을 올리는 것은 물론 그의 자유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왜 그것을 올리나? 그리고 왜 브런치에 글을 쓰나?

그들에게 구독자를 모으는 재미가, 그렇게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주목을 받아 그 허접하고 함량 미달인 글로 인쇄라는 것을 또 해서 출간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조직에 이것 또한 하나의 화려한 경력 한 줄로 포장하여 올리기 위한 물밑작업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내가 궁극적으로 브런치를 쓰는 이유는 늘 말해왔듯 하나이다. 썩은 정치가들에 의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 요원하니, 풀뿌리부터, 우리 주변의 사람들부터 변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자는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어서이다. 그렇게 바른 생각을 하는 이들의 마음을 모으고 싶어서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 유체 이탈하여 그럴싸한 글을 쓰는데 치중하기보다, 잘못된 사회에, 잘못된 행태를 보이는 내가 속한 조직에, 잘못된 내가 보는 이들의 행동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자식을 어떻게 하면 올바로 키우는지 미사여구와 데이터로 포장하면서까지 나열할 필요 없다. 당신이 올바로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그 모습을 통해 정의를 배운다.

일제 강점기 친일을 했던 이들의 글이, 문학이 아무리 달콤하고 수려해 보이더라도 그것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은, 단순히 독립투사의 자식들 마음을 투영해서가 아니다. 글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이의 글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행여 약간의 재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사람들을 꼬이게하는 글을 잠시 흉내낼 수는 있어도, 그가 그렇지 않은 자임을 알게 된 후에 그의 글을 가슴으로 읽어줄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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