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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20. 2021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 그리도 어렵더냐?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대 말이다.

그녀는 구독 해지로 답을 대신해왔다.

토요일에 폭탄 같은 글을 올리자, 네댓 명이 가슴 안쪽의 그 무언가가 쿡 찔렸는지 구독해지를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이었다.

 https://brunch.co.kr/@ahura/589

자칫, 내가 집요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허나, 내가 왜 이 연이은 체인리액션에 주목하는지 행간을 읽는 이들이 구독해지를 하는 이보다 더 많길 바라며 몇 자 적는다.

 

내가 토요일 글을 올리자, 그녀는 늘 그렇듯 빠르게 라이킷을 누르고 두 번째로 댓글을 달았다.(지금은 이 글을 읽고 소위 '쪽팔렸는지' 아이디에 있던 노무사도 쏙 빼고 자기 소개에 '노무사'라는 글도 지워 흔적을 지우려 무던히 노력하더라.) 그 글에서는 바로 앨러지 반응을 보이며 ''를 두둔하는 듯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 실드를 쳤다.

원글에서도 밝혔지만, 그 전 글에 언급되었던 ‘그’도 그렇고 지금 언급하는 ‘그녀’도 그렇고, 나는 지금 젊은 40대의 아이 엄마 아빠를 저격하고자 할 의도로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논어 읽기>에서 굳이 그녀와의 일화를 평론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https://brunch.co.kr/@ahura/595


그런데 그녀는 구독해지와 함께, 그녀가 말했던 소소한 글쓰기인지, 바로 발행한 글 속에 이런 내용으로 자신의 생각을 던져두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마음, 안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공감을 받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른 사람을 통해 증명받고 싶은 마음일 게다.

내 몫의 감정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나는 내 가족과 친구들,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이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하다.


내가 어이가 없어, 어차피 내 소중한 글, 당신에게 읽으라고 제공하고 싶지 않던 차에 구독해지를 해주어 ‘不敢請이 固所願(감히 청하지는 않지만 진실로 그러길 바란다)’이라 무시하고, 그냥 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프닝을 읽은 구독자들이 워낙 많았으니 몇 마디 남기지 않을 수가 없어 펜을 들었다.

 

박근혜에게는 최순실이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었고, 최순실에게는 공부도 못하지만 이름뿐인 명문 여대 졸업장을 주고 싶은 딸이 소중한 사람이었으며,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그녀들을 비난하던,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에게는 공부는 못해도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로 어떻게든 위로 올려주고 싶은 자식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짓을 한 것이었다. 그들을 비난하고 지적하는 것이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노조 출신의 해외 근로자 출신이라는 경력으로 여의도 배지까지 달았던 자가, 자신이 일하던 계열사의 본사인 KT에 능력도, 자격도 안 되는 자기 딸을 버젓이 뒷구녕으로 집어넣으려다가 개망신을 당한 것이,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구?

도대체 이제껏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에 하늘을 우러러 참람되이 그따위 소리를 할 수 있는가?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사람된 도리에 맞는지 맞지 않은지판단하는 것이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대의 그 그릇되고 삐뚤어진 시각을 내 고칠 길이 지만, 최소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반면교사하고자 하는 의도로 몇 자, 남긴다.

 

대댓글에서도 답해주었지만, ‘노무사’라는 직업은 직업이 갖는 특성상, 대개 회사의 이기적인 처사로 고통받는 이들이, 도움을 청하게 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 직업을 자신의 아이디에 버젓이 걸어놓고서 위와 같은 말을 후안무치하게 한다면...(이 글의 파급력이 무서웠던지 자기 아이디에서 노무사를 빼고 자기 소개에도 노무사에서 회사원으로 바꾸었다마는 본질이 바뀌지 않음을 그녀만 모르나보다.)

 

당신이 알던 지인이 회사 사주로 있는 회사의 클라이언트가 당신을 믿고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때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직업과 분리된 공간인데 왜 그러냐고 이전에 ‘그’를 비호하듯이 볼멘소리를 할 것인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브런치 작가 소개에 자랑스레 쭉 나열하여 소개하고, 어딜 가든 명함을 내밀고 뭐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닐 요량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감’ 있는 태도로 살아가라.

 

구독해지와 동시에 쓴 그 글에, 평소 나와 돈독하기 그지없어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브런치에 똘아이들 많으니 자꾸 그들의 양심을 후벼 파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글을 쓰시지 말라.' 걱정해주는 헤드락을 주 무기로 하는 까랑까랑한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는 것을 보고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날카롭게 행간을 읽던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을 텐데... 하고.

 

왜 우리 사회가 썩어가고 있는지 우리 안에 있는 양심에 경종을 울리고, 직접 앞으로 나서지 못했었 지만,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반성하며 고쳐나가야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수많은 브런치의 양심들에게, 우리가 공감대를 이뤄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알려주겠다고 펜을 들었는데, 그저 지날 수 없어 몇 자, 다.

 

그녀가  글에서 쓴 것처럼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공감을 받고 싶은 마음’,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른 사람을 통해 증명받고 싶은 마음’ 그 따위 초보적인 마음은, 자신의 기준이 확고하게 서지 않아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신이 없는 이들이나 갖는 마음이다. 며칠 되지 않았겠지만, 구독을 누르고 내 글을 꼬박꼬박 읽고서도 글쓴이를 그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 가늠했다면, 그건 글쓴이의 문제가 아닐 게다.

잘못된 것을, 잘못 생각했음을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인정하고 반성하고 바꿔나가는 것이 그리도 어렵던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들만이 더 앞으로 나아갔고,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더해왔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 그리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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