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브 와인의 가장 기본 등급은 그냥 ‘그라브’라는 지역명이 붙는 와인으로 소테른 외곽지대인 그라브 남부가 그 생산지이다. 한편 그라브의 최상급 와인 생산지는 페삭 레오냥으로 대개 보르도 인근인 그라브 북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최상급 와인들은 특정 샤토의 이름, 즉 최상급 포도를 생산해내는 특정 포도원의 이름이 와인명이 된다. 이들 와인의 양조에 쓰이는 포도는 대체로 더 좋은 토양과 더 좋은 재배조건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라브의 와인은 샤토 와인이나 지역명 와인 모두 드라이한 것이 특징이다.
A. 소테른-바르삭(Sauternes-Barsac)
그라브 지역의 우측 상단에 위치하였고, 귀부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는 낮에는 더우면서 건조하고, 새벽에는 서늘하면서 습한 기후에서 잘 번식하는데, 소테른 마을은 눈앞의 가론강과 옆구리로 흘러내리는 시론강에 둘러싸여 있으며 늦여름에는 오전에 안개가 끼고 오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그야말로 귀부병(noble rot, 貴腐病)이 발생하기 최적인 곳이다.
이 지역에서는 주로 귀부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에는 AOC등급을 부여할 수 없다. 소테른(Sauternes), 바르삭(Barsac), 봄므(Bommes), 화그르(Faegues), 프리냑(Priegnac) 등의 마을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세미용(Semillion)을 주품종으로 하여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뮈스카델(Muscadelle)을 보조 품종으로 재배하고 있다.
귀부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인 이곳의 AOC는 소테른(Sauternes), 바르삭(Barsac), 세롱(Cérons)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소테른 또는 소테른-바르삭이라고 칭한다. 귀부 와인에만 AOC를 와인 라벨에 명시할 수 있으므로 와인 구매 시 소테른, 바르삭, 세롱 AOC라고 적혀있다면 귀부 와인으로 판단하면 된다. 귀부 와인은 일반적으로 디저트 와인이라는 인상이 있는데, 테이블 와인으로도 손색이 없다. 단, 음식과의 마리아주를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예외적으로 귀부병이 발발하지 않은 포도를 이용하여 드라이 화이트 와인도 만드는데 보통 와이너리의 첫 글자를 따서 Y de Yquem(샤또 디켐), S de Suduiraut(샤또 쉬드로), R de Rieussec(샤또 리외섹)처럼 이름을 짓는다. 소테른에는 드라이 화이트를 위한 AOC가 없어서 보르도 AOC로 발매되지만 와인의 수준은 굉장히 높아서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2. 우안(右岸)
지롱드 강의 상류에 흐르는 도르도뉴 강의 동부 일대에 펼쳐져 있는 생테밀리옹 & 포므롤(포메롤) 지구를 ‘우안(右岸)’이라 부른다. 강 하류 부근으로 석회, 점토, 진흙 토양이 주이며 메를로 품종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토지 환경 때문에 우안 지역에서는 메를로를 많이 생산한다. 또한, 카베르네 프랑 종도 생산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체인 것보다 조숙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혀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특징이다.
(1) 생떼밀리옹(Saint-Emilion)
보르도(Bordeaux)의 북동부에 위치한 곳으로, 가파른 경사지에 있는 마을이다. BC 56년경 로마 제국시대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다. 로마군의 정복 정책으로 인해서 표도 묘목이 생떼밀리옹 지역에 전파가 되었고 4세기경 로마의 집정관이었지만 프랑스 보르도 출신이었던 오소니우스 집정관이 본격적으로 포도를 대량 생산하면서 오늘날 생떼밀리옹 와인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생떼밀리옹 지명의 시작은 8세기 한 수도자가 이곳에 터를 잡고 수도원을 지은 뒤 미사에서 성체성사 때 쓰이는 포도주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후 그리스도교의 순례지인 생 자크로 가는 사람들의 숙박지로 발전해왔고, 중세의 역사와 문화가 잘 간직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와인 생산지는 생떼밀리옹(Saint-Emilion)과 주변의 8개 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생테밀리옹은 와인의 생산량이 메독과 비교해 3분의 2 정도이다.
생테밀리옹은 석회질과 점토질이 많은 ‘고지대’라는 뜻의 코트 구역과 메독과 비슷한 자갈질이 많은 그야말로 ‘자갈’이라는 뜻의 그라브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코트 구역의 특징은 몰라세(Molasse)라는 토양인데, 주로 석회질에 점토질,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 배수가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물에 적응력이 강한 메를로 품종의 작황이 좋기 때문에 메를로(Merlot)를 재배하며 그라브 구역에서는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이 중심인 와인을 만들고 있다.
보르도의 경우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등의 순서로 4가지 품종을 주로 블렌딩을 하지만 생테밀리옹의 토질은 이와 다르기 때문에 70% 이상의 메를로 다음으로 까베르네 프랑, 마지막 10% 내외로 까베르네 소비뇽을 재배한다.
좌안의 경우 대서양에 인접하기 때문에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있다. 따라서 폭우, 서리 등 다양한 기후변화에 취약하지만 생테밀리옹은 보르도(Bordeaux)의 다른 지역보다 바다의 영향이 적어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숙성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1855년 등급은 메독과 소테른 지구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생테밀리옹 지구는 제외되어 있으며 메독 등급보다 100년 늦은 1955년에 생테밀리옹 지구에 별도의 등급제가 도입되었다.
• 와인 장인, 뛰느방(Thunevin)을 아시나요?
뛰느방(Thunevin)의 와인메이커 ‘장 뤽 뛰느방’은 13년 동안 은행원으로 일하다 1989년 쌩떼밀리옹 지역 0.6ha의 빈야드를 인수하여 1991 빈티지 샤또 발랑드로를 출시하며 뛰느방 와이너리의 역사를 시작한다.
보르도의 전통적인 양조방식에서 벗어나, 리(Lees)와 함께 숙성하는 부르고뉴 형식의 양조방식을 접목하는 등, 독창적 형태로 만들어내는 그의 보르도 와인들은 ‘가라지 와인’으로 불리며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또한, ‘관습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성공한 고집스러운 괴짜이자 천재’라는 의미로써 장 뤽 뛰느방을‘배드보이(Bad Boy)’라 칭하며 그의 열정과 능력을 극찬하게 된다.
또한 와인메이커의 역량이 강조되는 ‘가라지 와인’ 카테고리의 선두주자로써, 많은 와이너리들의 컨설턴트도 겸임하고 있는 뛰느방은 현재 그랑크뤼 클라쎄 1등급 B에 선정된 ‘샤또 발랑드로’를 비롯, 대중적 브랜드 ‘배드 보이’, 남프랑스 와인 ‘뛰느방 깔베’ 레인지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선보이고 있다.
(2) 포므롤(Pomerol)
포므롤(Pomerol) 마을은 보르도의 지롱드강 상류인 도르도뉴(Dordogne)강 우측에 위치한 마을로, 약 800헥타르에 걸쳐 포도밭이 분포되어 있다. 로마시대 수도자들의 성지순례길 중간 기착지에 병원을 세우고 포도를 재배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와인 라벨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상징물들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것이다.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의 역사가 깊지만 한동안 세간의 외면을 받아오다가 18세기 말부터 서구세계에서 유행하게 된다.
포므롤은 보르도의 최상급 레드 와인 생산지 중 규모가 가장 작은 지역이다. 포므롤의 와인 생산량은 생테밀리옹 와인 생산량의 15%에 불과하다. 그래서 포므롤 와인은 희귀한 편이며, 어쩌다 눈에 띄더라도 값이 비쌀 것이다. 포므롤의 레드 와인은 메독 와인과 비교해서 보다 부드럽고 과일 풍미가 풍부하며 음용 적기가 더 빠른 편이다.
보르도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비교적 내륙에 위치한 탓에 대륙성 기후로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지하 토양은 철분을 함유한 충적층으로 산화철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며 ‘쇠 찌꺼기’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포므롤 와인만의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만들어 낸다.
또한 자갈이 많은 점질의 토양이라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잘 자라지 못하므로 이곳 토양에 적합한 메를로(Merlot)의 재배비율이 매우 높으며 주 품종으로 하고 있다. 카베르네 프랑을 재배하기도 한다. 포므롤은 소박하지만 타닌이 적게 느껴지고 부드러운 텍스처를 가진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포므롤은 와인 산지로 늦게 소개되어 그랑크뤼 등급과 같은 공식적인 샤토의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메도크(Médoc) 지역에 비하여 소규모로 양조되므로 높은 품질과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단 AOC을 적용하고 있으며 포므롤, 라랑드 포므롤, 네악 등으로 구분하여 품질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백이 부족하여 포므롤에서 잘 알려진 샤토 몇 군데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 샤토 페트뤼스(Château Petrus)
한 병에 400만원가량 한다.
샤토 페트뤼스는 19세기 말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샤토였다. 포므롤 지역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샤토는 면적이 11.4헥타르로 라피트 포도원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샤토 페트뤼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 파리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면서부터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45년부터이다.
1920년 샤토 페트뤼스를 물려받은 프랑스 출신 마담 루바가 1947년 11월 20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식에 샤토 페트뤼스를 내놓게 함으로써 이 와인은 일약 세계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세계적인 명사들이 사랑하는 와인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최근 일화로는 1990년대 런던의 최고급 식당인 고든 램지에서 고위층 은행가 여섯 명이 모여서 하루 저녁에 페트뤼스 와인을 곁들여 회식을 했다. 샤토 페트뤼스를 포함해 13병 정도를 마셨는데 7만 8천721달러가 나왔다고 한다. 이렇듯 페트뤼스는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와인이다.
샤토 페트뤼스를 보르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페트뤼스의 그레이트 빈티지(great vintage)들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1병당 수천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보르도 포므롤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28.4 에이커의 단추 구멍만 한 포도밭에서 연간 4,000 상자, 병으로 환산하면 약 4만 ~ 4만 5천 병 내외를 생산할 정도인 이 와인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와인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메를로 100%’라는 순수함도 페트뤼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샤토 페트뤼스와 같은 ‘앨러캐이션 와인(allocation wine, 나라별로 한정 수량만 할당되는 와인)’들은 국내에 몇 병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한 이들에게 넘겨진다.
샤토 페트뤼스는 교황 페트뤼스 1세(성 베드로)를 레이블에 사용하고 있다. 페트뤼스라는 이름은 예수의 첫 번째 제자인 베드로를 뜻한다. 레이블에는 베드로 사제가 열쇠를 쥐고 있는데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상징한다.
포도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도 유명한데 포도가 높은 기온으로 인해 내부 온도가 상승하게 되면 헬리콥터 동력을 이용하여 뜨거운 열기를 식혀줄 정도로 정성과 노력을 들이는 곳이 바로 페트뤼스 포도원이다. 메를로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양조하고 있으며, 숙성이 빠르지도 않지만, 장기보관에 유리하지도 않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열렸던 전문인 시음회에서 샤토 페트뤼스 1990년 산과 1999년 산 뿌삐유(Poupille)가 최고의 레드 와인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기도 했는데 메를로 100%의 와인을 두고 섬세한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2000, 2009, 2010 빈티지가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외의 빈티지도 대체로 좋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가격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현재 로마네 콩티와 함께 세계 최고의 레드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