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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02. 2022

공자가 말하는 예의 본질을 직접 보여주마.

공자가 궁에 들어가서 어떻게 행동하였는지가 왜 중요한가?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 出, 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沒階, 趨進, 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公門(궁문)에 들어가실 적에 몸을 굽히시어 용납하지 못하는 듯이 하셨다. 서 있을 때에는 문 가운데에 서지 않으시고, 다니실 때에는 閾을 밟지 않으셨다. 〈군주가 계시던〉 자리를 지나실 적에 낯빛을 변하시고 발을 조심하시며, 말씀이 부족한 듯이 하셨다. 옷자락을 잡고 堂에 오르실 적에 몸을 굽히시며 숨을 죽이시어 숨 쉬지 않는 것처럼 하셨다. 나와서 한 층계를 내려서서는 얼굴빛을 펴서 화평하게 하시며, 층계를 다 내려와서는 종종걸음으로 걸으시되 새가 날개를 편 듯이 하시며,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공경하여 편안치 않은 모습이셨다.

이 장에서는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공자가 궁에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궁을 나오는 태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향당편(鄕黨篇)’을 시작할 때부터 설명했지만, 행동을 묘사하는 형용사는 아무리 상세히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것과 똑같이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상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한 그 형용이나 묘사에 사용되는 한자어들이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는 낯선 한자들이 많기 때문에 공부하는 이들이 애를 먹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을 공부하면서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문법적인 부분이나 한자어 공부만이 아니다. 왜 이 이해하기 어려운 묘사를 굳이 이어나가며 논어의 한 편의 한 장으로 구성하였는가 하는 부분이다.


글이란 목적이 있다. <논어>는 예법의 디테일을 설명하고 기록하는 것이 목적인 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상세한 세부묘사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인지에 대해 보이지 않는 행간을 통해 글의 목적과 취지를 읽어내는 것은 오롯이 공부하는 이의 몫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자의 주석을 통해 본문을 좀 더 꼼꼼하게 이해해보기로 하자.


‘鞠躬(국궁)’은 몸을 굽힘이다. 공문이 높고 큰데도 용납하지 못하는 듯이 하신 것은 공경하기를 지극히 하신 것이다.


처음 궁에 들어서서 公門(궁문)을 들어서는데 머리에 뭔가 닿을 듯한 낮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뭔가 있는 것처럼 고개를 공손히 숙이고 삼가는 것은 높고 거대한 궁문이었음에도 공손한 마음을 첫 관문에서부터 다지고 들어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문을 통과한 다음의 중문을 통과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이어진다.


‘中門(중문)’은 문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이다. 棖(정)과 闑(얼)의 사이를 이르니, 군주가 출입하는 곳이다. ‘閾(역)’은 문의 한계이다. 예에 “사대부가 공문을 출입할 적에는 얼의 오른쪽으로 다니고 역을 밟지 않는다.” 하였다.


참고로 대부분이 중문이라고 하면 오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이 순차적으로 세 개가 있어 가운데 문이 중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위 주석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원래는 하나의 큰 문처럼 보이는 문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인데, 대문에서 양쪽 문을 닫을 때 멈추게 하려고 각 문의 중앙 자리에 얼이라는 것을 세우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문이 셋으로 나뉜다. 이 세 부분 중 가운데 영역이 중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위 주석에서 ‘예’라고 지칭한 책의 부분은 <예기(禮記)>의 ‘곡례(曲禮)’를 지칭한다. 주석의 설명처럼 한가운데에 서거나 다니지 않았던 것은 군주가 다니는 길로, 예로서 군주가 다니는 길은 함부로 신하들이 다니지 않는 것인데, 군주가 없다고 하더라도 평상시에 그 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삼감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문지방을 밟지 않았는다는 것은 그것이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그 경계를 밟는다는 것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기에 삼가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어져오면서 양반의 행동 가지를 강조할 때 문지방 위에 서지 말라고 하는 행동가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사씨(謝良佐(사양좌))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설 때에 문 한가운데에 서면 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역을 밟으면 조심스럽지 못한 것이다.”


궁 안에 군주가 다니는 길조차도 삼가니 당연히 군주의 자리를 지날 때의 경우는 말해 무엇하랴마는 그 삼감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位(위)’는 군주의 빈자리인바, 문과 屛(병)의 사이로 인군이 〈조회 볼 때에 신하들을〉 기다리며 서 있는 곳을 이르니, 이른바 ‘宁(저)’라는 것이다. 군주가 계시지 않더라도 지날 때에 반드시 공경함은 감히 빈자리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이다. ‘말씀이 부족한 듯이 한다.’는 것은 감히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의 궁궐도 가보게 되면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아기자기하지 못하고 상당히 휑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중국의 궁궐은 대륙의 사이즈라서 그러한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의 자리가 비어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처음 궁궐 안에 들어올 때와 같은 맥락의 흐름을 감지하게 된다면 초심자는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즉, 궁궐의 문이 낮고 실제로 머리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궁궐 안으로 들어서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앞에 군주가 있는 듯 다잡고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군자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군주가 다니는 길로 다니지 아니하고, 군주가 서 있던 자리에 군주가 이을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부분을 강조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군주가 서 있는 자리라고 표현한 ‘位(위)’는 정식으로 조회를 볼 때 군주가 앉아 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 직전에 임시로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부분에 감을 잡았다면, 이제 그 맥락이 끝까지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군주가 자리에 없을 때 그렇게 행동했던 공자가 정작 조회가 시작되고 군주의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하는 주자의 주석을 살펴보자.


‘攝(섭)’은 걷어잡음이요, ‘齊(자)’는 옷 아래의 꿰맨 곳이다. 예에 “장차 당에 오르려고 할 적에 두 손으로 옷자락을 걷어잡아 땅에서 한 자쯤 떨어지게 한다.” 하였으니, 옷자락을 밟아 몸이 기울고 넘어져서 용모를 잃을까 두려워해서이다. ‘屛(병)’은 감춤이요 ‘息(식)’은 코의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니, 지존을 가까이 함에 숨 쉬는 모양이 엄숙한 것이다.


길게 늘어진 관복을 드는 것이 단순히 예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옷자락을 밟아 실수를 할까 싶어 삼간다는 설명도 설명이지만, 숨 쉬는 것조차 군주의 앞에서는 엄숙하게 유지하였다는 것만으로 공자가 어느 정도 군주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갖춰보였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은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으로 사용된 형용사와 그 행간에 대해서 설명한다.


‘等(등)’은 계단의 등급(층계)이다. ‘逞(령)’은 폄이다. 높이는 곳을 점점 멀리 하니 기운을 펴고 〈긴장되었던〉 얼굴을 펴는 것이다. ‘怡怡(이이)’는 화평하고 기쁜 것이다. ‘沒階(몰계)’는 계단을 다 내려온 것이다. ‘趨(추)’는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자기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공경하여 편안치 않은 모습이셨던 것은 공경이 아직 남은 것이다.


앞에서도 몇 번 나왔지만, 예의를 차리는 것을 표현할 때 ‘편안치 않은 모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조금 생경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 약간 부연하자면,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다는 것은 고대 중국이든 현대이든 내가 편한 것이 위주가 아니다.


물론 내가 불편한 것이 상대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맞춘다는 것이 내가 혼자서 지내거나 내가 신경 쓰지 않는 사람과 있을 때의 행동과 차별성을 두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익숙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평상시 입는 늘어진 옷이 몸에는 가장 편하고 좋지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입어야 하는 정장이 불편한 것은 내 몸이 편한 것이 위주가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격식을 맞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복식이 예법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여지는 것이기 그렇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기본정신에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장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를 뿌려두었는데 하나씩 잘 줍고 따라왔는지 의문이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이 장의 내용은 군주가 있는 곳에 군주를 만나 정사(政事) 논하기 위해 입궐하는 것이다.


군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궁에 들어갈 때부터 군주를 앞에 두고 정사를 논하는 그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는 것은, 예법의 기록이나 강조가 아니다. 이 장은 예법의 실전 편이다. 예를 그렇게 강조했던 성인 공자가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예를 실천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다.


허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하라는 비디오 교본이 아니다. 예라는 것의 본모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형이상학적인 설명으로 와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이 장에서는 예의 실제적인 적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실제적인 적용의 핵심은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정수에 있다. 진정한 예란,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그 존중은 상대가 있건 없건 똑같이 대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그 사람이 앞에 있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풀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하물며 그가 아예 없는 공간에서 마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삼감을 보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존숭 해야 할 군주가 존경에 마지않는 사람이라도 그러할진대 행여 인간적으로 존숭함이 바탕이 되지 않은 말 그대로 군주이기 때문에 삼감을 보이던 보이지 않던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성인 공자는 이 편을 통해, 그리고 이 장을 통해 보여준다. 이것이 예라고 말이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은, 부모님이 훌륭한 위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존경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부모가 강압적으로 존숭을 강조하는 것은 역시 예라고 보기 어렵다. 이 장에서도 보이다시피 군주의 앞에서 예법을 강조하고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군주의 칼과 창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닌 것은 또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만약 강제에 의한 폭압과 겁박에 의한 것이라면 숨 쉬는 것조차 삼가는 태도를 보일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공자가 보이는 호흡조차 불편한 모습을 보이며 삼갔다는 것은 정작 군주를 향한 것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부분이다.


맞다. 공자는 군주가 인간적으로 존숭 해야 할 만한 사람이라서 그런 왕에게는 예법을 깍듯이 갖추고 자신이 허여 하지 않는 군주에게는 적당히 예법을 낮춰가면서 버릇없이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가 군주라는 점에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에 기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그가 도덕적으로 존숭 할 수 없는 군주라면 공자는 그저 떠나버려 그를 상대하지 않을지언정 그를 폄하하거나 그에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함으로 그를 모욕하는 언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가 보이는 가장 큰 상대에 대한 무시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 표현과 그를 보지 않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상종을 하지 않는 ‘무시’로 공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대신했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공자가 허여 한 상대는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만큼 기준이 엄격했고 한번 허여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만고불변의 판단도 아니었다. 즉, 실수가 있거나 잘못이 있으면 그 판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까다롭게 사람을 보았던 공자가 군주에 대해서 자신의 숨소리마저 삼갔다는 것인 예의 본질이라고 위에서 설명하였다. 앞에서 살짝 힌트를 주었다시피, 공자가 이 장을 통해서 그리고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주는 예의 진면모는 상대를 높임이 아니다. 상대의 신분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임을 강조하는 것이 예임을 보여준다.

이 장의 처음에도 설명했지만, 공자가 궁에 입궐하는 것은 군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관리로서 그리고 신하로서의 본분에 해당하는 정사(政事)를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엄격한 예법에서 정하는 위계가 있는 국가조직의 한 부분으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궐하는 순간부터 공자는 스스로의 위치를 다시 한번 자각하고 자신의 본분에 맞는 언행을 궁궐의 첫 문을 통과할 때부터 다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고 군주가 계신 곳에 이르러서도 군주가 아직 나오기 전일지언정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마음가짐과 언행을 보인다. 그것은 이른바 예열(豫熱) 과정에 해당한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왔는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준비해왔던 무엇을 이곳에서 펼치고 아뢰야 하는지를 되뇌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군주가 있기 때문에, 라던가 군주의 앞이라서, 라던가 보이는 예는 예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신다고 떠들고, 담임이 나타났다고 조용해지는 것은 허수아비가 세워져 있으니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참새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주일 뒤에 청와대를 나오는 문대통령이 5년 전에 그러하였듯이 청와대의 주인이 바뀐다고 썩은 공무원 사회가 일소되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대통령이 썩었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가짐이 올곧은 이들이 새삼스럽게 부화뇌동할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자신의 수양이 되어 있는 이는 군주가 누구인지에 따라 자신의 오래된 공부와 수양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이 공자가 보여주는 예의 본질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이가 단 몇 명이라고 있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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