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코가 삐뚤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선천적인 경우를 포함하여 불의의 사고 때문에 코가 삐뚤어진 경우에도 이것은 해당한다. 예컨대 잘못된 성형으로 코가 삐뚤어진 경우에도, 관상학에서는 운명이 바뀐 것으로 본다. 상세히 설명하기는 그런데, 원하는 좋은 관상으로 바꾸려고 성형을 하는 것으로 관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사고로 인한 변형은 운명이 바뀐 계기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이론적 배경에 근거하여 이 유형의 사람들은 40대에 고난과 힘겨움을 밀려와 닥칠 것이라는 점을 충분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운명이 늘 그렇듯이 그저 시련과 고난을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은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단련의 과정으로 환치된다.
특히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코가 삐뚤어진 경우, 운명의 수레바퀴가 당신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이나 변화를 주기 위해 그 사고도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진정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힘겨운 기간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올바로 새겨야 할 것이다.
12. 매끈한 콧등이 아닌 중간에 희미하게 가로지르는 수평선이 있는 경우
중간에 매부리코처럼 꺾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휘어져 있지도 않지만, 묘하게 중간에 수평선처럼 가로지르는 모양이 형성된 코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중간에 있다는 것은 물론 40대 중간에 이 유형의 사람에게 40대 중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꿀만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몇 번이나 강조했던 것처럼 운명이라는 것은 편향적이지 않다. 즉, 이 중간에 보이는 큰 변화의 예시가 무조건 부정적이거나 고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극적인 변화를 40대에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인데, 40대에 가까워올수록 그 변화는 실제로 외견상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그 이전이라도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양의 관상학에서는 이러한 코를 ‘과거와의 결별’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완전히 새로운 경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인연이 아니었던 이와의 이혼을 통한 새 인생의 출발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13. 코 끝에 둥글고 큰 구근 모양이 자리 잡은 경우
뒤에 다룰 콧멍울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코가 끝으로 떨어지면서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코끝이 마치 구근이 들어있는 것처럼 둥글고 큼직하게 마무리된 것을 의미한다. 콧멍울(콧구멍)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코끝의 모양과 사이즈와 관련된 것이니 정확하게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즐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낙천적인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조금 지나친 경우도 적지 않아서 그저 모든 것에 관대하 모습을 보이며 그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어, 자신이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살자는 모습을 보여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거나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관상학적으로 코끝이 둥글다는 것 자체는, 40대의 마지막을 진정한 의미에서 즐길 수 있을만한 외적인 내적인 조건이 갖춰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여러 제반 조건을 고려할 때, 40대 후반의 시기에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운명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14. 코끝이 뾰족한 경우
앞에서 살펴보았던 코끝이 조금 늘어난 것처럼 뾰족한 코와 헷갈릴 수 있는데,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경우는 코끝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끝이 뾰족한 형태를 가진 것으로 구분된다. 이 유형의 코를 가진 사람들은 삶 자체에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 유형의 장점 속에서 피어난 단점이라면, 호기심 많은 성격 때문에 열정이 흘러넘쳐 다른 이들을 험담하는 경향이 툭 튀어나와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 관상학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뾰족한 모양의 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흥분, 열정, 즐거움, 재미와 관련지어 해석한다. 물론 서양의 관상학에서도 그 기본적인 맥락을 크게 달리 해석하지 않고 공통적인 해석 방식을 보인다. 때문에 끝이 뾰족한 코 모양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40대는 이전과는 달리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15. 다이아몬드 모양의 코를 가지고 있는 경우
‘도대체 어떻게 생긴 코가 다이아몬드 모양이란 말인가’라며 황당해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사진을 첨부하는 거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코 끝이 아니라 입술로 이어지는 코의 기둥 자체가 입술 쪽으로 당겨진 듯 삼각형에서다이아몬드 스타일로 변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유형의 코는 마치 고양이상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의외로 그리 드물지 않게 이런 코 모양을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끝은 뭘 의미한다고? 맞다. 40대 후반. 이 유형의 코를 가진 사람들은 경력상의 기회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있어서도 40대 후반이 전반기보다 훨씬 강력한 운명의 힘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다이아몬드 모양의 뾰족한 포인트는 당신이 이전에 보였던 성향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즐기고 싶어 한다는 변형된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에서 당신이 오지랖을 넓혀 다른 사람들의 일에 조금 깊이 참견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니 잘 판단하여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콧구멍(콧멍울)은 코의 관상학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콧구멍은 40대의 운명에 대해 전체적인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당신의 소비 패턴에 대해서 보여준다. 동양의 관상학에서 코를 오행의 중앙으로 보고 그 의미 중에서도 재복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서양의 관상학과 다시 해석면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의 일치를 보여준다.
때문에 돈이 생기는가 안 생기는가 보다 더 중요한,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부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40대, 즉 인생의 기로에서 더 부자로 갈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를 가르는 전환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콧멍울에 대한 사례 세 가지를 구분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6. 앞을 똑바로 볼 때 콧구멍이 보이는 경우
이 유형의 사람들은 상당히 소비성향이 강해서 돈이 들어오는 대로 사용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콧멍울 모양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40대는 물론이고 인생 전반을 통해 돈이 많던 적던간에 상관없이 돈을 잘 쓰고 사고 싶은 것은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을 보인다.
때문에 이 유형의 사람들은 곁에 사기꾼이 꼬이기가 쉽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현혹되어 소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소비패턴과 성향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17. 작고 숨겨진 콧구멍을 가지고 있는 경우
이 경우가 위에서 살펴본 콧구멍이 정면으로 보이는 사람과 정반대일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물론 기본적인 성향에서 콧구멍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들어온 돈을 밖으로 절대 내놓지 않는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명분이 없는 곳에 사용하지 않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만약 정말로 자신이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의외의 큰돈도 지출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들이 많다.
18. 아주 약간 하지만 분명히 콧구멍이 보이는 경우
위의 두 경우를 섞어놓은 중간 정도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항상 자신의 소비패턴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많이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렇게 해놓고서 늘 후회하고 아끼고 절약하고 있다가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해서 행복하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탓하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욕망과 원칙 사이에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논리성의 결여나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 아닌 본래 이 유형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천성이기 때문에 돈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늘 주저하거나 결정해놓고서도 금세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술 이야기>를 중단하고 주말 연재 심리분석 시리즈를 일단(?) 지속하고 있기는 합니다. 정작 자신의 양심을 찌르는 이야기는 외면하며 킬링타임용 글에만 탐닉하는 양심 없는 쾌락자들을 보며 이 시리즈를 접을 때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합니다.
당신이 재미있는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는 것이 비용을 낸다는 착각과 자위로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대단한 참여도 아닌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어려울까요?
아래 글을 자신의 글에 링크한 별도의 글로 올리는 것으로 당신이 정말로 실천을 피하는 비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