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May 10. 2022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인이라 인정받았어도 - 5

자기 이익만을 위해 한평생을 살았던 민낯을 드러내고 말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107


 

그 유명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말은 바로 그의 마지막 은퇴 연설에서 나온 것이다. 연설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말은 그의 오리지널 버전이 아닌 그가 젊었을 때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였다.


원래의 의미는 노련한 고참병은 전투에서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서 무사히 제대하는 것으로 전장에서 사라질 뿐이라는 내용으로 신병만이 전쟁에서 죽는다는 다소 가혹한 현실을 의미하는 가사였다. 어찌 되었든 그 가사처럼 맥아더는 오랜 군생활을 아주 화려하게(?) 잘 마치고 무사히 제대한다고 인용한 것이다.

퇴임 직후 맥아더가 뉴욕에서 벌인 시가행진에 모인 사람의 수는 700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전무후무한 시가행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기록적인 환영 인파에 정치인들은 크게 당황했다. 일설에 따르면, 차기 대권을 노리고 후보 지명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으로 정치적인 새로운 다크호스의 등장에 신경이 날카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정적들의 우려와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맥아더는 대권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초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극히 현실을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정치계에 들어서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여러 부비트랩 같은 요소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가 퇴역 직후 얻은 그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올랐던 인기는 지극히 일시적인 거품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가까운 나라도 아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필리핀, 일본, 한국에서의 활약에 치중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에 대한 인기가 얼마 안 가 식어버린 것이다. 오히려 퇴역 전 현역에 있을 때 정계 진출 운운했던 스스로가 본토에 돌아와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보았을 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게 그의 정계 진출은 시도조차 되지 않는 헤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역시 뒤끝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듯, 그는 전당대회에서 아이젠하워가 아닌 후보 로버트 태프트를 지지한다. 그러나 595:500으로 아이젠하워는 후보로 지명되었고, 그 해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 후 맥아더는 한국전쟁 종식과 관련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하여 백악관으로 가서 의논하는 고문 대우를 받게 된다.

현역 당시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이후 맥아더는 레밍턴 랜드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육군 장교로서 2만 달러의 급여와 수당 이외의 6만 8천 달러(2016년 기준 61만 2천 달러 상당)의 급여를 받았다. 1960년 맥아더 탄생 80주년을 맞이한 축하 행사에서, 그의 친구들은 맥아더의 눈에 띌 정도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다음날, 그는 전립선이 심하게 부어올라 세인트 루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겨우 회복하게 된다.


맥아더는 회복 후 인생의 마지막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61년에 필리핀으로 그의 생 마지막 여행을 떠나 카를로스 P. 가르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또한 그는 회고록을 작성하기 시작하여 그가 세상을 떠나지 불과 몇 개월 전 완성했다.

 

그리고 196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미국을 방문 중이던 김종필을 만나 ”한국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이 통일될 때까지 죽을 수 없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61년 민간인 자격으로 자문을 요청받기도 했는데, 바로 피그스만 사건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피그스만 사건 실패에 변명 일관도로 오리발 내밀기에 급급했던 펜타곤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강력한 직접 개입을 주장했다. 또한 베트남에서도 더 이상의 개입을 중지하고 조속히 손을 떼야한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to avoid a U.S. military build-up in Vietnam, or any other part of the Asian mainland, Anyone wanting to commit ground troops to Asia should have his head examined”

“베트남을 비롯해서 아시아 지역에 더 이상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면 안 됩니다. 지상군 전력을 파병하려는 자의 머리통을 확인해야 할 짓입니다.”


도미노 이론에 대해서도 ‘핵(무기) 시대에 이 이론은 무의미하다.’라며 회의적인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피력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도 비슷한 충고를 했다. 후일 베트남에 대한 지적과 조언은 미군이 처참한 패배로 전쟁을 마치게 되면서 결국 맥아더의 시각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가 정작 한국전쟁 당시 전장에서 일본에서 처박혀 있으며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판단 미스로 역사적 실수를 했던 것에 비해, 정작 퇴역하고 난 뒤의 견해들이 매우 정확하고 현실적으로 적확했다는 것이다.


당시 베트남에 대해 맥아더가 케네디에게 한 발언들을 보면, 앞에서 살펴보았던 전장에서 그가 여러 가지 독선으로 인해 수많은 실책을 저지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미래를 예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f you do, you will be repeating the same mistake the Japanese made in World War II—deploying millions of soldiers in a futile attempt to win a conflict that cannot be won.

“(베트남에 개입하는 것은) 수백만 명의 장병을 도탄에 빠뜨리는, 결코 이길 수 없는 행위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자면, 맥아더가 은퇴 후 갑자기 개과천선하거나 뭔가 깨달음을 얻어 안목이 확 트인 것은 아니었다. 현역 시절이나 퇴역하고 난 민간인 시절이나 그는 여전히 일본이나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편협한 안목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정희와 함께

그저 그에게 있어 베트남은 듣보잡 수준의 전혀 투자가치가 없는 미개한 동남아의 땅덩어리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차라리 주변국의 연합체까지 동원해가면서 수호할 필요가 없는, 잃어도 큰 손해가 나지 않는 나라였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당시 미국 정계와 군계의 유력한 사람 중에 맥아더 정도의 인식 수준을 가진 이조차 거의 없었다는 점이 베트남전을 미국이 말아먹은 가장 큰 비극의 원인이었을 뿐이다. 즉 당시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던 정치인이나 군 장성들 대부분이 맥아더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는 안목을 가진 것뿐이었다.


실제로 미국이 패배를 인정한 최초의 전쟁이 되어버린 베트남전이 끝나고 나서 미국이 베트남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매카시즘 문서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지만, 사실 펜타곤의 베트남 정책도 베트남 자체에 대하여 중대한 이권이 걸려 있고 현지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참전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공산화된 중국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견제 심리만으로 무조건 도미노 이론과 연관된 ‘대중 포위망 형성’이란 피상적인 대국 전략만 생각하고 밀어붙인 것뿐이었다.


아시아 역사나 정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아무리 표면적으로 같은 공산권이라 하더라도 베트남이 중국을 덜컥 신뢰하고 그 세력권에 자발적으로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상상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매카시즘 광풍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 미국의 정계와 지식인 사회는 냉정하게 학술적인 혹은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초보적인 현지 사정에 대한 파악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니, 혹시라도 있었을지 모를 관계자들의 조언이 있었음에도 위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그것을 과감하게(?) 묵살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에 대한 저런 잘못된 오해와 몰이해는 현대의 한국을 보는 미국 정치가나 학자들의 시각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공통점을 보인다. 예컨대, 90년대 후반에 출판되어 국내 번역된 미래학자, 경제학자들의 전망에는 일본은 독립 경제 문명권으로 남을 것이며 반면 한국은 19세기 이전으로 돌아가 거부감 없이 중국의 위성국으로 회귀할 것이라 예상했던 책들이 적지 않았다.(제대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고 예견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로 무려 10여 년 이후에야 수정된다.)


물론 미국의 지도자층이 전부 바보 멍청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당시 전략적, 전술적으로 베트남전을 비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매튜 B. 리지웨이이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비추어 제한전 상황에서의 공군력의 우위는 허상일 뿐이라는 이론으로 북폭을 비판했는데 그의 분석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1962년 맥아더가 교장으로 있던 웨스트포인트는 그에게 실바누스 세이어 상을 수여했다. 맥아더는 ‘의무, 명예, 국가’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한 듯 연설하였다.


“그림자는 나를 위해 길어집니다. 황혼이 여기에 있습니다. 옛날의 나의 시절은 사라지고, 색조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것들을 꿈꾸며 희미해졌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눈물로 씻겨지고, 어제의 웃음에 사로잡혀 애무하는 이상한 아름다움 중 하나입니다. 내 꿈에서, 나는 총기가 요란하게 충돌하고 소총 세례가 퍼부어지고 이상하고 슬픈 전장의 음울한 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의 저녁에서, 나는 항상 웨스트포인트로 돌아옵니다. 의무, 명예, 국가가 항상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당신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합니다. 강을 건널 때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은 (군사) 부대와, 부대와, 부대(The corps, and the corps, and the corps)가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그렇게 1964년 4월, 맥아더는 담즙 경변증으로 윌터 리드 육군 의료센터에서 세상을 떠난다. 향년 84세.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암살되기 전에 그의 국가 장례식을 승인한 바 있는데, 존슨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이 모든 국민이 떠나간 영웅에게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영예와 감사를 베풀며 묻히도록 명령했다. 그의 시신은 뉴욕시로 이송되어 제7연대장에서 12시간 동안 공개되었고 그날 밤 유니언 스테이션 장례식장에서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졌다.

이때 15만 명의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가했다. 맥아더는 버지니아주 노퍽에 묻혔고 4월 11일에 그의 장례식이 노퍽의 세인트폴 성공회 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시신은 마지막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기념관 원형 홀에 안장되었다.

 



무려 5일에 걸쳐 당신이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맥아더의 인생을 아주 촘촘하게 돋보기를 대고 보여주었다. 자신이 군인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글의 소제목이 의미하는 것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저 대제목만 보고 들어와 재미있게 맥아더의 역사를 읽으며 라이킷을 찍었다.


맥아더 이야기의 연재를 시작하게 전에 내가 왜 이렇게 길게 연재하면서 그의 삶을 다루는지에 대해서 썼지만 그들은 그런 내용은 머리에 담지 않고 그저 타성에 젖어 재미있는 읽을거리 정도로 읽어 내려가며 라이킷을 찍었다.

마지막이라 정리해준다. 맥아더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다뤘던 대가들의 이야기와 소개하는 의도에서부터 편집 의도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소위 태어날 때부터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누릴 수 있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다 누린 요즘에 문제가 되는 대물림 황금 수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맥아더였다.


무엇보다 그저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으로 막연히 기억하며 군바리 딸이 정부 차원에서 밀어주며 국뽕 영화까지 만든 인물로 추앙받을만한 인물이 아님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 머리를 깨부수고 진실을 들이부어주려고 쓴 글이다.


그의 오만함과 무식함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아니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역사는 새로운 장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과거의 아쉬움을 되뇌며 아 옛날이여를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상황을 보며, 당신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보인 미국의 저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실체를 다시 반복하여 보면서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


몇 번이나 여러 글에서 강조했지만, 미국은 우리의 절대적 우방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한반도의 정세를 활용하는 강대국에 불과하다.


광복절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빛을 우리의 힘으로 되찾지 못하였다. 쪽바리들을 한반도에서 내쫓은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니었단 말이다. 그 와중에 똑같은 이기심으로 자신들의 영욕을 채우고자 미국에 붙어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것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 역시 제대로 된 반성과 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굴러왔다.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그것이 반복되기 때문이고, 그 공부를 통해, 그것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그 이유이다. 그들에게 과거로 돌아갈 것이냐는 선택을 물으면 당연히 아무도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이권이나 사욕과 관련되어 있으면 그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역사고 나발이고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선택을 한다. 그들에게 역사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금덩어리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정치가나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것들만 비판한다고 생각하나? 그러면서 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나? 아니. 문제는 늘 소시민이랍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눈만 껌벅거리며 정작 그들과 똑같은 행태로 그들이 빵 조각을 쥐어주면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 표 던져주는 바로 당신들에게 있다.


미군이 던지는 ‘쪼꼬렛’에, 그 틈새에서 당신이 얻을 이익과 당신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보고 당신은 역사인식 따위는 개에게 던져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찾는 것에 그지없었다. 마치 오늘까지 장장 5일간을 살펴본 미국 역사상 최고의 군인이라 칭송받았던 저 맥아더와 다를 것 하나도 없단 말이다.

18일 전에 브런치파를 소집하며,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해, 바로 당신들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된 일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해 궐기하자고 사발통문을 게재했더랬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면서 드라마 본 이야기하고, 자기 겪었던 불행한 과거의 힘든 이야기들을 맞춤법이 엉망인 글로 꺼내놓으며 ‘아프니까 호~해줘.’라고 온갖 쌩쇼를 했던 이들이, 공무원이라며, 변호사라며, 의사라며 멋진 허세를 글에 덕지덕지 붙였던 이들이 갑자기 손절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돈을 기부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실명으로 연판장을 만들어 무슨 기관에 보내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에 잘못된 사실들을 알리고 공론화하여 모두가 함께 그것을 제대로 직시하고 고쳐나가자는 흐름을 만들어보자는 게 다였다.


당신이 아시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맥아더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그저 마이너의 삶을 살고 있는 소시민 찌질이기 때문에 그저 재미있는 글 찾아 읽고, 드라마 이야기에나 댓글 달며, ‘맞아 맞아’하는 정도가 딱이라고 생각하나?


만약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치 의식 있는 사람처럼 국정농단에 분노한다며 글을 올리거나 광화문에 나들이 나간 사람처럼 촛불 들고 SNS에 사진 올리는 짓을 하지 말 것이며, 정인이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기가 학대로 죽어나갔다고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고칠게’ 따위의 정의로운 척을 하지 말란 말이다.

아빠인 현역 목사가 아이를 던지려고 했던 것만으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며, 아이가 중상으로 병상에 있거나 그 장면이 찍힌 영상이 있거나 코마에 빠져 죽었거나 해야 임팩트가 있어 기사로 다룰 수 있다며, 취재가 어렵다고 당당히 말하는 공중파 사회부 기레기의 말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여기자가 당신의 딸이며, 당신의 조카이고, 친구이며, 바로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맥아더의 인생을 찬찬히 읽으며, 왜 그들 때문에 한국의 역사가 바뀌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틈에서 어떤 쓰레기 같은 것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뻔뻔하게 살아가며 그 자식들에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현재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여 행동에 옮기기를 기대해본다.


https://brunch.co.kr/@ahura/1095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인이라 인정받았어도 -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