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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4. 2022

참스승의 진정한 가치는 제자를 통해서 드러난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고 깨쳤던가?

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德行: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陳나라와 蔡나라에서 따르던 자들이 〈지금〉 모두 門下에 있지 않구나.” 德行에는 顔淵 · 閔子騫 · 冉伯牛 · 仲弓이고, 言語에는 宰我 · 子貢이고, 政事에는 冉有 · 季路이고, 文學에는 子游 · 子夏였다.

이 장은 말년의 공자가 그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제자들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덕행과 언어, 그리고 정사, 문학에 탁월했던 제자들을 분류하여 뛰어났던 부분을 칭찬하는 부분이다. 굳이 이 부분을 말년의 회상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공자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從我於陳·蔡者(종아어진·채자)’라는 특정 사건에 함께 했던 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역하자면, ‘진나라와 채 나라에서 나를 따라다니던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는 魯나라 애공(哀公) 6년 경에 초나라의 초빙에 응하기 위하여 채(蔡) 나라에서 진나라로 들어가는 도중에 환난을 당하여 급기야는 양식이 떨어지는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별도로 ‘진채 절량(陳蔡絶糧)’ 또는 ‘액어진채(厄於陳蔡)’이라고 하는데, 이 언급을 근거로, 공자가 그 당시 함께 환난을 겪었던 당시의 제자들을 추억하여 한 말이라 추정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주자가 이 부분에 대해 붙인 주석에서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공자께서 일찍이 진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곤액을 당하셨을 적에 제자 중에 따르는 자가 많았었는데, 이때에 모두 문하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들을 생각하신 것이니, 이는 환난 가운데 서로 따르던 것을 잊지 않으신 것이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 이번 장에 언급된 김에 조금 자세히 정리하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자의 천하 주유 경로

노(魯) 나라 애공(哀公) 6년, 공자가 63세가 되던 해의 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 중 와신(臥薪)으로 유명한 오(吳) 나라 왕 부차(夫差)가 묵은 원한을 갚겠다고 진(陳) 나라를 쳐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초(楚) 나라 소왕(昭王)은 선대에 진(陳) 나라와 맹약이 있었음을 기억하고는 그들을 돕기 위해 출병하여 진나라와의 접경지인 초읍(楚邑) 성보(城父)에 진을 치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하기 얼마 전 공자는 섭(葉) 나라와 채(蔡) 나라를 거쳐 진(陳)나라로 들어가 있었다. 초 소왕은 공자가 진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사자를 보내 공자를 초빙하였다. 공자는 그 초빙을 받아들여 소왕에게 가기 위해 진나라와 채 나라의 접경지대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진나라와 채 나라 두 나라의 대부들은 공자가 초나라에 가서 정치를 맡게 되면 자신들의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한 끝에 군사를 풀어 공자 일행을 호향(互鄕: 현재의 상수현 고창진)의 들판에서 완전히 포위한 채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었다. 공자 일행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식량이 떨어져 7일 동안이나 굶게 되자 따르던 제자들과 뭇사람들이 배를 주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앞서 설명했던 진채절량(陳蔡絶糧)의 전모이다. 이 절체절명의 수난은 공자가 평생 겪었던 고난 중에서도 가장 힘겨운 사건으로 꼽히는 일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자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의연하게 강송(講誦;글을 소리 내어 읽고 외우는 일)과 현가(絃歌; 거문고 등에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를 계속하였다. 이때의 상황은 뒤에서 공부할 위령공(衛靈公) 편의 첫 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그렇게 공자 일행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자공을 초나라로 보내 그 위급한 상황을 초 소왕이 군대를 동원하여 공자를 맞이하러 나오면서 비로소 그 곤욕을 면하게 되었다. 공자가 잠시 초나라에 머무는 동안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와 우연치않게 지나치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뒤에 배울 ‘미자편(微子篇)’ 5장에서 언급된다.

그렇게 가장 고생스러웠던 시기를 회상하며 이제는 곁에 없는 제자들 이른바 공문 사과(孔門四科)라고 일컫는 네 가지 분야에 걸쳐 열 명의 제자들을 언급한다. 이후 이른바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주자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따라 이 열 사람을 기록하고 아울러 그 所長(소장)을 지목해서 나누어 四科(사과)로 만들었으니, 공자께서 사람을 가르침에 각각 그 재질을 따르셨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자(明道(명도))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공식적인 등급이나 인정이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면서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四科(사과)는 바로 夫子(부자)를 진나라와 채 나라에서 따르던 자들일뿐이다. 문인 중에 어진 자가 진실로 여기에 그치지 않았으니, 증자는 도를 전수했는데도 여기에 참예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十哲(십철)은 세속의 말임을 알 수 있다.”


앞서 공부하면서 몇 번 설명한 적이 있으나 열명이 함께 언급된 장이니 간략하게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대해 순서대로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顔淵(안연) : 이름은 회(回), 공자의 30세 연하 제자로 공자의 총애를 받았으며, 공자가 자신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하여 후세 사람들로부터 亞聖으로 불리기도 함. 집안이 가난하나 그에 구애받지 않고 학문을 즐겼으나 36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음(41세에 사망한 것이 고증에 의하면 정확하다는 분석)

- 閔子騫(민자건) : 공자의 제자로 15세 연하로 덕이 높다고 알려짐, 이름은 손(損), 자건(子騫)은 字.

- 冉伯牛(염백우) : 주 문왕의 10번째 아들 冉季載의 후손으로 이름은 耕(경). 아버지 염리의 아들 3형제가 모두 공자의 제자인데 그중 첫째 아들, 둘째(雍)가 중궁, 셋째가 염유임, ‘옹야(雍也) 편’ 10장에서 염백우가 한센병을 앓자 공자가 문병한 내용이 나오며 젊은 나이에 요절함

- 仲弓(중궁) : 노나라 사람으로 성은 冉(염), 字는 仲弓, 이름이 雍, 노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주 문왕의 후예이며 그의 부친 염리의 세 아들이 모두 공자의 제자가 되었으며 공문십철에도 해당하여 ‘1문 3현’이라 일컬어졌음. ‘공야장(公冶長) 편’에 冉雍이 말재주가 없다는 언급이 나왔음.

- 宰我(재아) : 노(魯) 나라 출신 字는 자아(子​我). 이름은 예(豫), 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언변에 뛰어났음. 임치의 대부가 되었다가 난을 일으켜 멸족되었음.

- 子貢(자공) : 성은 端木, 이름은 賜, 字가 子貢, 공문 10 철의 하나. 이재에 뛰어나 孔門의 번성에 기여하였으며 성은 端木. 이름이 賜. 공문 10 철로 위나라 사람. 宰我와 더불어 언변이 뛰어나 吳, 越, 魯, 齊의 4 나라의 대립을 조정하여 제후국의 분쟁을 해결하는 등 현실적인 공이 많다.

冉有(염유) : 자는 子有, 성은 冉, 이름은 求, 주 문왕의 열 번째 아들 염계재(冉季載)의 후예 중 염리(冉離)에게 3명의 아들이 있는데 첫째가 冉耕, 둘째가 冉雍, 셋째가 冉求 3명이 모두 공자의 제자로 추앙을 받아 ‘1문 3현’으로 칭송을 받음. 冉求는 특히 이재에 능하여 노나라 재상 계강자 밑에서 벼슬을 하여 나라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공자를 노나라로 초빙하는데 기여하였음.

- 季路(계로) : 이름은 由, 노나라 변(卞) 사람으로 字가 子路, 혹은 계로(季路)라 했다. 산동성 사람으로 용맹하여 공자가 자신이 어려울 때 용기 있게 따를 유일한 제자가 子路라고 하였음. 자로는 스스로가 용맹하여 군사를 이끄는 것은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 듯함, 季路의 季는 50세가 되면 伯, 仲, 叔, 季의 항렬에 선생 子를 붙어 호칭하는 풍습에 따른 표현에서 나온 것.

- 子游(자유) : 오(吳) 나라 사람,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 공자보다 45살이나 어렸으며, 20여 살부터 관직에 올라 무성(武城)의 재상이 되어 예악(禮樂)으로 정치를 펼쳐 공자가 무성(武城)을 지날 때 현가(絃歌)를 듣고 기뻐했다는 고사가 있음.

- 子夏(자하) : 본명은 복상(卜商), 문학에 뛰어나 魏나라 임금의 스승이 되고 공자께서 편집한 <시경>과 <역경> 및 <춘추>를 후세에 전함.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공자의 삶이나 공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아마도 내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다른 친구들이 동화책을 꺼낼 때 겁 없이 처음 <논어(論語)>를 뽑아 들고 한자로 읽어보겠다고 했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공자에게 이끌렸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장에서 공자는 말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과 함께 했던 제자들을 회상한다. 결국 가르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던 큰 스승의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유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스승을 실망시키지 않고 다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스승의 이름을 더욱 높였다.


실제로 자신이 등용되어 세상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공자의 입장에서는 제자들의 활약이 곧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늘 그렇지만,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맘 같지 않은데,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을 제자라는 이름으로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가르친 것을 제대로 소화하는 이들은 고사하고 그나마 오독하고 오해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가르친 것을 다시 물었을 때 제대로 기억조차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 기억하고서는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신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우매한 제자들도 출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성적과 관련되어 있거나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추천서라던가 영향력을 얻을 필요가 있을 때는 비굴할 정도로 간도 쓸개도 다 내놓을 것처럼 굴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여기거나 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손절이라는 것을 하고서 보이는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더 우스운 것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손절각이라고 마구잡이로 굴었다가 다시 자신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 바로 다시 발연기를 하는 경우도 태연스럽게 벌어지고는 한다.


사람과 엮여서 실망하는 일만큼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일이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이와 그런 지저분한 꼴을 접하게 되면 그것만큼 불쾌한 일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시대에 진정한 ‘선생’이 어디 있으며, 어차피 스승에 대한 존경 따위는 모두 엿 바꿔 먹고 개념이라고는 어느 비밀금고에 두었는지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지방의 의료계에서 황제노릇을 하며 자기 자식을 두 명이나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던 의대에 편입시키고서도 끝까지 자신은 장관을 하기에 부족함에 없다며 버티고 있는 이도 명색이 대학교수란다. 억지로 집어넣은 자기 딸이 복수의 교수가 강의한 것이긴 했지만, 아버지의 강의 듣고 그 아버지는 성적 작성에도 관여하였다. 


경성제대의 수의대 교수였던 자는 자기 아들과 조카의 대학교 편입과 대학원 입학을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연구비를 부정하게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성제대 출신에 대학교수였음에도 부모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던 아들과 딸을 위해 스펙을 만들어주다가 국민적인 이슈로까지 떠오르며 대학교수들의 품앗이 행태에 대해 만천하에 브리핑을 했던 사례까지 있으니 그들에게 ‘선생님’이라고 존경의 뜻을 보이지 않겠다는 학생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논어>를 읽으며 공자의 가르침을 새기고 진정한 이 시대의 스승을 찾는 것은, 그 스승이 올바른 배우는 자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금 쓰레기로 가득한 난지도라고 그곳에 계속 쓰레기만 버릴 것인가? 그 쓰레기들을 일소하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갖춰 쓰레기와 인간을 구분하고 인간이 더 많아지도록 자식들을 이후 세대들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굳이 던질 필요가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부터 바뀌는 것이다. 

마음만으로 입만으로 스스로를 바꿀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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