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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6. 2022

왜 효성이 지극한 이중에 악인이 없는 것인가?

사람됨의 기본을 구성하는 근간은 무엇인가?

子曰: “孝哉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효성스럽구나, 민자건(閔子騫)이여! 사람들이 그 父母와 兄弟의 (칭찬하는) 말에 흠잡지 못하는구나.”

이 장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효성스러움에 대해서 공자가 칭찬을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공자가 그가 가정에서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서 평가한 것이 아닌 독특한 방식으로 칭찬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방식이 다시 한번 배우는 이들을 향해 숙제를 건네주고 있다.


민자건(閔子騫)이 <논어>에 언급되는 것은 총 다섯 번이다. 덕행에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많은 횟수는 아니다. 물론 공자의 말씀을 담은 <논어>라는 점에서 다섯 번도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가에 의한 질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절대적인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 다섯 번 중에 한 번이 ‘옹야(雍也) 편’의 7장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 ‘선진(先進) 편’에서 언급되는 것이다.


민자건(閔子騫)은 앞서 등장했던 안연보다 15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평상시에는 점잖고 온화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옳은 것을 지키는 데는 의연했으며,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비판을 내린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증자(曾子)의 효행에 대해서는 이미 ‘태백(泰伯) 편’의 3장에서 언급되며 워낙 널리 알려졌지만 민자건(閔子騫)도 그에 못지않은 효자로 명성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순자(荀子)>에는 ‘증(曾), 건(騫)’이라고 하여 두 사람을 효자의 표본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효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韓詩外傳(한시 외전)>과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의하면, 민자건(閔子騫)의 어머니가 일찍 죽은 뒤 아버지가 再娶(재취)하였는데, 繼母(계모)는 아들 둘을 낳았다고 한다. 하루는 민자건(閔子騫)이 아버지를 위해 수레를 몰다가 말고삐를 놓치자 아버지가 그의 손을 살펴보니 손이 얼음처럼 차갑고 무척이나 얇은 홑옷을 입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 후처 소생의 두 아들을 불렀다.


그들은 두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에 아버지는 분노하여 후처와 離絶(이절)하려고 했다. 그때 민자건(閔子騫)이 아버지를 말리면서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홑옷을 입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세 아들이 추위에 떨게 됩니다(母在一子單, 母去三子寒)”라고 눈물로 諫(간)하여 아버지를 말렸다. 이에 아버지가 감동하여 離絶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들은 계모는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자상한 어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후 중국에서 유명한 고사로 전해져오고 있다.


물론 繼母(계모)를 폄하하는 뜻이 다분히(?) 담겨 있어서 사실 그대로는 아닌 듯하지만 그만큼 효성이 지극했다는 예화로 중국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화이기는 하다. 앞에서 공부하면서 한번 이야기했던 것을 굳이 다시 이야기해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장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논란을 잠재우는데 필요한 논리적인 근거를 위의 이야기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자건(閔子騫)이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 장에 대한 해석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학자들에 따라 무려 세 가지의 의견으로 갈린다. 그저 효자라고 이야기하는 표현을 묘하게 꼬는 바람에 발생한 세 가지 해석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其父母昆弟之言’의 주체를 민자건(閔子騫)으로 보고 ‘민자건(閔子騫)이 부모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트집 잡지 못한다.’라고 해석하는 경우이다. 이는 민자건(閔子騫)이 워낙 지극한 효자였기 때문에 그가 부모형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아무도 트집 잡지 못했다는 해석인데, 직접적인 효도에 대한 부분과 연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해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그 구절의 주체를 부모형제로 봐서 ‘민자건(閔子騫)의 부모형제가 그의 효성과 우애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이다. 민자건(閔子騫)이 워낙 효자였기 때문에 그 부모형제가 민자건(閔子騫)을 칭찬하는 것을 아무도 뭐라고 비방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그냥 자기 자식의 자랑을 하는 정도가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민자건(閔子騫)이 워낙 효자이기 때문에 그 일가 모두까지 욕을 먹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렇게까지 한다면 정말로 대단한 효자가 아니겠는가 하는 조금은 더 나아간 해석의 방식이다.


설명을 읽으면서 대강 느꼈겠지만, 나는 두 번째의 해석에 의거하여 원문을 해석하였는데 주자가 인용한 호씨(胡寅(호인))의 주석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로 나의 선택에 대해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부모와 형제가 그의 효도와 우애를 칭찬함에 사람들이 모두 믿어서 딴 말이 없는 것은 효도와 우애의 실제가 안에 쌓여 밖에 드러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감탄하고 찬미하신 것이다.”


위의 일화를 설명한 이유와 그것이 두 번째 해석의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설명을 이해했는가? 맞다. 그에게 부모형제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친어머니도 아닌 계모이고, 형제들도 배다른 형제이다. 대개 계모의 편애를 받고 자란 본처의 자식은 후처의 자식과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모와 배다른 형제들이 그에게 孝誠이 깊다고 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평가를 내린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칭찬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그 평가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위 ‘자타공인’ 효자로 인증을 받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앞서 민자건이 언급되었던 <논어>의 다섯 번 등장 대목 중에서 유일하게 이 편이 아닌 ‘옹야(雍也) 편’의 7장에 나왔던 내용이 바로 노(魯) 나라의 세력가로 무례하고 오만방자하여 모든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던 ‘삼환(三桓)의 대부(大夫)’중 한 사람이었던 계손씨(季孫氏)가 심부름꾼을 보내 ‘비읍(費邑)의 읍장(邑長);태수)’자리를 줄 테니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 일하라고 제안하자 단칼에 거절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왜 공자가 효성과 덕행을 정치적인 능력이나 문학적인 능력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두었는지를 일생을 통해 증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민자건(閔子騫) 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가 효성이나 덕행과도 같은 인성을 가장 중시하고 강조했던 이유는 그것이 정치를 함에 있어서나 무엇을 행함에 있어서도 근간이 되는 힘이 되고 그 사람의 변하지 않는 기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제대로 그 공부를 해보지 않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체행(體行)해보지 못한 이들은 공자의 그러한 생각과 지향점을 고리타분한 유학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다르다. 내가 늘 엄격하게 비난을 죽비를 들고 폄하하는 조선의 성리학이 바로 그것을 이상하고 냄새나는 껍데기로 감싸 망쳐버린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의 선비라는 것들은 그 올바른 가르침을 정치적인 것으로 활용하면서 표리 부동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러한 잘못된 전공은 정치를 한다는 이들에게 아주 안 좋은 구정물로 이어지면서 현재에까지 썩은 내를 풍기며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당신이 보고 있는 고상한 척하며 사회지도층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사욕을 위해 자신의 가족만, 혹은 자신의 자식만 챙기겠다고 하다가 그 흉한 꼴이 발각되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 개망나니 짓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식이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고 착한 자식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 현장에서 잡힌 현행범의 어머니는 구치소에 면회를 달려가 변호사의 옆에서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눈물을 머금는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민자건(閔子騫)의 경우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계모에게서 태어난 두 동생이 있었고, 당연히 계모는 전처의 자식인 민자건(閔子騫) 에게 보다는 당연히 자신이 낳은 두 명의 자식에게 사랑을 쏟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편애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계모의 편애마저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자건(閔子騫)의 진정한 효성이었다.

사람의 삐뚤어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민자건(閔子騫)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보여주었다. 그는 평생 계모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못다 한 효성을 하려는 듯 최선을 다해 효를 다했고, 다른 두 동생들도 끔찍하게 챙겼기에 그 가족들은 물론이다.


나는 위에 선택한 두 번째 해석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해석을 택한다. 그의 마음은 결국 계모에게서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부모에게 홀대받았으니 사이가 좋을 리가 없으며 그 형제들에게는 더더욱 마음이 어긋나 사이가 좋을 리 없을 거라는 편견을 모두 허물어버려 주변 사람들의 그러한 일반적인 편견까지 움직여 그들이 차마 그 집에 대해서 뭐라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의 방식에서도 주목하여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또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하기에 설명을 덧붙인다. 그것은 바로 공자가 자신이 알 리가 없는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효성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전 장에서 안연(顏淵)의 행동에 대해서 공자는 그가 정말로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했는지를 보기 위해 공부하지 않을 때의 평상시 행동을 살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의 집을 직접 찾아가 함께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을 그 주변의 소문으로 판단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듣고서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특별할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르다. 공자 자신이 헛된 소문으로 비방을 워낙 많이 받아본 사람이라서인지 아니면 성인의 경지에 올라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라는 것에 대한 진위에 무게를 두지 않고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실증적인 성격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 장에서 보여주는 공자의 방식은 굉장히 객관적인 검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현대에 사용하는 이른바 크로스체크를 공자는 당시에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에게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기는 하겠으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만큼 객관성이 떨어지는 정보는 없다.


그런데 원문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가족의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의 칭찬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자신이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중삼중의 크로스체크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 진정 배운 자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확인하고 검증하는 방식임을 공자는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또 한 번의 가르침을 직접 구현해준다.


내가 앞서 안연을 검증하는 방식과 민자건(閔子騫)을 검증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하여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은, 이 ‘선진(先進) 편’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환기를 시켜주기 위함이다. 앞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몇 장을 공부하며 익혔다시피 ‘선진(先進) 편’은 공자가 제자들에 대해 덕행을 기준으로 그들의 성취를 평가하는 내용을 모은 가르침이다.

자칫 자신이 기른 제자들을 자랑하는 팔불출 선생님의 모습이지 않을까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늘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공자는 사소한 손가락질 하나만으로도 곁에서 보고 듣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성인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선진(先進) 편’에서 나오는 제자들에 대한 언급이나 그 평가에 주목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논어>의 참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본래의 공자가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 전체의 지극히 일부만을 맛보는 어리석을 저지르는 결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국정농단을 기준으로 죽어가던 케이블이 회생하기 시작한 계기를 맞듯이 정치계의 이슈들이 뉴스가 아닌 예능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그래서 이제 정치를 잘 모르는 이들도 민정수석이 뭐하는 자리인지 대강은 어렴풋이 아는 것 같다. 조금 정확하게 이해를 돕자면, 민정수석비서관은 그 밑에 민정비서관, 반부패 비서관, 공직기강 비서관, 법무비서관을 두고,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동향 점검 등 공직기강, 부패근절, 국민권익 증진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민정수석이란 밑에 어떤 사람들을 써야 하는지, 혹은 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인지를 검증 관리해야 할 책임자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이전의 민정수석을 한 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법비출신이라는 것과 대개 감옥을 갔다 왔거나 가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왜 효성이 지극한 민자건(閔子騫)의 이야기를 하다가 민정수석이 등장하느냐고 의아해할 학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한다.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좋아 경성제대 법학부를 들어간 자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효성이 지극하고 근간이 단단하여 자신의 뿌리를 다부지게 다져 민자건(閔子騫)처럼 자신을 학대했던 계모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공부는 좀 못하고 잘 나가지도 못하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늘 부모님을 챙기고 형제간에 화목하여 집안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소시민은 간혹 있는데, 그들이 비난받을 짓을 하여 감옥을 갔다거나 사욕을 부렸다는 이야기는 내 들어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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