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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30. 2022

공자는 왜 안연만을 허여 하였는가?

과연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안연뿐이었을까?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季康子가 묻기를 “弟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하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顔回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했었는데 불행히도 命이 짧아 죽었다. 지금은 없다.”

이 장에서는 계강자가 공자에게 직접 제자들 중에서 누가 배움을 가장 좋아했는지를 묻는 것에 공자가 안회에 대해 대답하며 아쉬워하는 문답을 담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발검 스쿨의 학도들 중에서 계강자가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은 애공이 앞서 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난 내용들을 까맣게 잊고 있을 더 많은 학도들을 위해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겠다.


맞다. 이 똑같은 질문을 앞서 ‘옹야(雍也) 편’ 2장에서 애공이 공자에게 했었다. 대답은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아래 범 씨가 주석을 통해 그 부분이 왜 다른지에 대해서 설명하니 궁금해할 학도들을 위해 ‘옹야(雍也) 편’ 2장의 그 부분 해석만 가지고 오면 다음과 같다.


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顔回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화난 것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命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배움을 좋아한다는 자를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역사적인 사실을 재조합해보면, 시간상으로는 계강자가 물어본 것이 먼저였다. 안회가 죽고 2년 뒤. 염유는 계강자와 공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그 자리에서 계강자가 바로 물은 내용을 언급한 것이 바로 이 장의 내용이다.


그렇게 공자가 계강자와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궁에서 군주 애공이 공자를 뵈었으면 하니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렀으면 한다는 연락이 온다. 공자가 애공의 궁으로 들어서기가 바로 애공이 물었던 것이 방금 전 만나고 왔던 실권자 계강자가 묻던 것과 똑같은 질문이다.


공자는 같은 질문에 단 한 번도 똑같은 대답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상세한 근거를 설명한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범씨(范祖禹(범조우))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애공과 강자의 물음이 같은데 공자의 대답에 상세하고 간략함이 있는 것은 신하가 임금에게 아뢸 적엔 다하지 않을 수 없고, 강자와 같은 자는 반드시 묻기를 기다려서 말씀해 주시니, 이것이 가르치는 방법이다.”


애공은 군주이고, 계강자는 대부이니 신분의 차이가 명백하여 공자가 군주였던 애공에게는 좀 더 상세하게 왜 안연이 배움을 좋아하는 자로 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명백하게 들어 상세하게 설명하였고, 대부인 계강자에게는 간략하게 대답하였다는 해설이다. 그 부분을 명확하게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원문에서 공자의 대답을 반말체로 번역한 것이니 유념 해두길 바란다.


배움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저 유명한, ‘자신의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 공부하면서 충분히 해설하였으니 생각나지 않는 이들은 다시 한번 앞의 내용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이 장과 연계하여 이해하는 좋은 공부 방법이 되겠다.

안연(顏淵)은 바로 뒤에 이어질 편명에 아예 등장할 정도로 다양하게 <논어>에서 언급되어 <논어>를 해설서로만 읽은 이들조차도 공자 제자인 안연(顏淵)의 이름과 어떤 존재였는지는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한다. 그런데 정작 뒤에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안연으로 시작해서 ‘안연(顏淵) 편’ 일뿐 다음 편에서 안연은 첫 장에만 한 번 등장할 뿐, 정작 언급은 이 ‘선진(先進) 편’에서 무려 9번이나 이어져 나온다.(<논어>에서는 통틀어 스무 번가량이 언급된다.)


앞서 애공이 똑같은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강자가 한 질문을, 그것도 요약된 형식으로 대답하는 것을 굳이 한 장으로 구성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졌던 학도들이 있기를 바란다.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더 파고들어가고 공자가 남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자세가 아닌, 그저 주는 것만 먹기도 버겁다는 식으로의 독해는 아무런 것도 남지 않는 공부가 되어버리고 많이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똑같은 내용으로 보이지만, 두 장은 지칭하는 바가 다르다. 앞서 ‘옹야(雍也) 편’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단순히 안연이 일찍 죽은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왜 안연이 공자의 캐치프레이즈라고도 할 수 있는 ‘호학(好學)’의 대명사임을 군주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이 앞에서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번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이유이다.


이번 ‘선진(先進) 편’에서의 언급은, ‘그 수많은 제자 중에서 왜 안연인가?’ 하는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다음 몇 장으로 쭉 이어질 진정한 안연에 대한 이야기의 표제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장으로 보인다.


두 편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공자가 안연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애석해했는지를 마지막 두 마디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애절함의 강조는 사실을 언급한 ‘불행히도 命이 짧아 죽었다.’가 아니라 지극히 덤덤하게 사실을 의미하는 ‘지금은 없다.’라는 부분이다. 앞서 이미 죽었다고 서술하였으니 당연히 지금은 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그 담담한 사실적인 서술이 바로 공자의 애절함을 농축해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안연(顔淵)은, 조금은 뒤늦은 시기인 원나라 문종 3년(至順 원년, 1330년)에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으로 추봉(追封)되었고,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 사당(孔門祠堂)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로 사용되는 인물이다.


추봉된 문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연(兗)’이라는 의미는, 스승 공자와 안회 본인의 고향인 노(魯) 나라가 고대 중국 9주 중 하나인 연주(兗州)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금의 산둥성 서쪽에 해당된다. 현재 중국에서도 ‘옌저우 구(兖州区)’로 남아있다. 또 ‘국(國)’이라 함은 앞의 ‘연’과 결합되어 ‘연나라’의 뜻을 갖는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다음 글자이다. ‘복(復)’이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충서(忠恕)와 더불어 공자 가르침의 양대 진리인, 저 유명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그 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자의 가르침이던 극기복례의 지극한 경지에까지 다다른 제자가 유일하게 안회였기에 이러한 글자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뒤에 바로 사용된 ‘성인(聖人)’의 의미를 담아 이후 안회를 ‘復聖’이라 부르게 된다. 굳이 풀어 해석하자면 ‘극기복례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신 성인’이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공(公)’이라 함은 제후의 작위를 의미한다. 이 칭호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도 쓰이지 못해 벼슬자리에 앉지 않았던 안회를 위해 앞에서 굳이 ‘연나라(兗國)’라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를 만들어내면서 그 나라의 제후의 작위를 내린 것이다.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위치를 수여해야 할 인물인데, 작위를 수여하려면 나라가 필요한데 그가 벼슬했던 나라가 없었으니 그것을 만들어내고 그에 맞는 작위를 죽은 이후에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와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는 사자성어로 대표되는 안회는 유독 가난했던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재능과 문재(文才)를 기반으로 오로지 학문과 덕을 수양하는 것에만 전념하여, 공자에게 인정받는 제자가 되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겸허한 구도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균관에 배향된 5성에서도 공자 다음의 위치에 있다. 나머지 셋은 증자, 자사, 맹자이다. 전형적인 백면서생 타입이라 초반에는 괄괄한 성격의 자로(子路)와 티격태격하기도 했으나 자로(子路)가 안회(顔回)의 덕행에 감격해 서로 돕고 돕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안회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스승 공자와의 이야기가 <여씨춘추> ‘審分覽편’에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앞에서 공부하며 설명했던 공자(孔子)가 진(陳), 채(蔡) 나라 사이에서 고통을 겪을 때의 일이었다. 명아주 국물조차 마실 수가 없었고, 이레 동안 쌀 한 톨 입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공자가) 누워 있는 동안, 안회(顔回)가 어디선가 쌀을 구해다가 밥을 지었다. 밥이 다 되어 상을 차릴 때 즈음에 공자가 멀리서 바라보니, 안회가 솥에서 밥을 집어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 후 안회가 상을 차려 공자에게 가져와 권하자, 공자는 이를 못 본체 하며 일어나 말하기를, “방금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뵈었다. 밥을 깨끗이 한 후에 제사로 밥을 올리고 싶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안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안됩니다. 아까 솥 안에 재티가 떨어졌는데, 밥을 버리는 것이 상서롭지 못한 일인지라, 그곳을 제가 걷어 먹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가 한숨을 내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눈도 믿을 수가 없고,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마음마저 의지할 수가 없다. 너희들은 명심하여라. 사람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임을.”


평소에 공자가 입을 대기 전엔 음식에 입을 대지 않던 안회가 먼저 밥을 집어먹은 것이 의아하여, 제사에 쓰일 밥을 먼저 먹어서는 안 되므로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로 안회를 떠본 것이다. 그래서 안회가 ‘스승께 드리기엔 더럽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지라 자기가 먼저 한 입 먹었다’며 이 밥을 제사에 쓸 순 없다고 털어놓자, 그제서야 자신이 제자를 믿지 못하고 그의 행동만을 보고 의심했던 것에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후회하며 한 말이다.


이것은 성인으로 존숭 받는 공자조차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보다는, 공자가 진정한 성인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바로 인정하고 그것을 후회하고 고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스승을 더 발전하게 만들어주었던 자가 바로 제자 안연이었던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장을 시작으로 총 4장에 이어 안연이 요절하고 난 뒤의 다양한 일화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안연이 살아있을 때의 일화가 아닌 요절하고 난 뒤의 일화를 통해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장을 공부하면서 하나씩 설명하기로 한다.




이틀 후면 지방선거를 치른다고 나라가 대선 이후 다시 시끄럽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선과는 다르게 뽑으려는 이들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뽑히려는 자들만 시끄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시작된 지방자치제라는 것이 과연 정말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직종을 확장시켰다는 의미를 지우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 시의원이니 구의원이니 나온 이들의 면면이 결국 ‘정치’를 ‘직업’으로 여기고 지자체의 의원이 정치에 입문하는 계단 정도로 여기거나 그것을 권력으로 여기는 행태가 너무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진짜 이렇게 되면야 무엇을 걱정한단 말인가?

'지방자치제', 말 그대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 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붕당정치를 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조직이라는 이름을 확장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탄이라는 자금을 싸들고 와서 정치라는 권력을 이용한 직업을 번호표로 받아 들고 공천을 받아 그 정당의 표로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한다. 유명 정치인의 보좌관 역할을 몇 년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다음 번호표로 받는 것이 시의원이고 구의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 호학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안연의 이야기를 하다 말고, 아무리 이틀 뒤에 지방선거라고는 하지만 또 정치 얘기를 하는가 싶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도 있겠다. 누차 말하지만 내가 언급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야기인 것이지 정치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며 역한 것으로 변질되어버린 그 정치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제대로 알지 않으면 이 상태로 썩은 물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넘어 구더기가 득실거리기 시작할 뿐이고 더 악화가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미 안연이 뛰어난 점을 언급했던 앞의 공부에서 설명했지만, 화를 옮기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호학(好學)의 근거가 된 것은 다 그만한 의미가 있기에 공자가 안연을 설명하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세상에는 빨간당과 파란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누리끼리한 정체성 모호한 애들에게 표를 던져주라는 말이 아니다.

조선시대,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붕당정치라는 것이 아주 뿌리 깊은 안 좋은 전통만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지금의 빨간당과 파란당으로 불리며 하는 행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을 부숴버리고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 말고는 없다.


화성에 가서 살겠다고 우주선을 띄우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그 잘못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히 호학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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